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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통제 첫 날, 화나지 않으셨나요
"또 촛불때문이여?"
버스안에는 오늘 붙인 듯한 에이포용지 반쪽만한 종이에 깨알같은 글씨로 '건국60주년행사로인해 교통이 통제된다'는 는 문구가 떡 하니 붙어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 마디 했지요.
"아, 건국60주년 행산지 뭔지 때문이 이 ㅈㄹ(죄송합니다.. 할머니들이 촛불 장난 운운들 하셔서 열 좀 받았거든요)이잖아요. 갑자기 무슨 건국이야. 미친 ㅅㄲ들."
그랬더니 할머니들이 '촛불이나 뭐나 하여간 막힌 건 막힌 거잖아... 그래도 오히려 나한텐 이렇게 가는 게 더 낫네.집에 빨리 가서'하고 말꼬리들을 휙 돌리시더군요. 제가 육두문자를 쓴 탓에 살짝 겁을 잡수신 듯-.-
엊그제까지도 못 봤고 불민한 탓인지 방송에서도 행사때문에 통제된다는 말은 못 봤기에, 그 더운 날에 허위허위 간 것이었건만. 안 그랬으면 집에서 찬물에 발이나 답그고 지냈을텐데.
하여간 그 덕에 독립문에서부터 사직터널을 지나 도서관까지 헉헉대며 걸었습니다. 그냥은 안 걸었지요. 마침 길에 사람도 없기에 육두문자를 고래고래 질러가며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 당연히 버스가 올 리 없지요.
120 다산콜센터에 전화했습니다. 여기 사직공원인데 여기를 벗어날 수 있는 버스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없다고 하더군요. 저도 없을 건 짐작하고 건 전화였으니..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교통통제되는 걸 언제 홍보했으며 상담원께서는 언제 알게 되었느냐-오늘 아침(통제 당일, 어제지요)에 '갑자기' 들었댑니다. 미안하다더군요. 상담원이 미안해할 일인가요. 누가 벌인 진칫상인데. 알겠다고 하고 전화끊었습니다.
시청 근처 여행사에 여권을 맡긴 걸 찾으러 가야 하는데 이 더운 날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3호선역(무슨 역이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워낙 화가 나있던 상황)에 걸어가서 종로3가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시청역에 내렸습니다. 평소같았으면, 날씨가 그리 덥지만 않았어도 즐겁게 걸어갈 수 있었겠지요. 버스만 다녔어도 그냥 휭 하니 몇 분 안 걸리는 거리였을텐데.
시청에 도착하니 잔디위에 무슨 고무판을 죽 깔았더군요. 휘황한 조명, 무슨 체육관과 같은 계단식 관중석, 정명훈이 지휘한다는 포스터가 펄럭거리는 그 잔디밭-사물놀이 소리, 무슨 소프라노의 아아아아~하는 소리.. 저는 문득 국풍 81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여의도에 살아서 불꽃은 정말 그때 숱하게 봤었지요. '81'이길래 82도 83도 나올 줄 알았는데, 그저 1회성의 행사였던.
그런데 그 황당하고도 갑작스런 교통통제와 축제의 한가운데에서 제가 느낀 건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옆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폭탄이 터져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감정이 다 소모된 모습.
이런 표정을 imf직전에-그때도 시청이었군요-본 적이 있지요. 아, 그때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는 좀더 분노가 있었죠. 아니 그때는 다른 표정은다 휘발한, 분노만이 남아있는 형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그 분노도 다 사라졌어요. 분노가 사라진 자리를 평상심이 채워주면 좋겠는데, 이제 사람들의 얼굴에는 체념만이 남은 듯합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서로 빈 자리를 차지하게 위해 눈을 희번득거리고 가끔 정신 나간 노인네들은 가끔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가장한 무기로 비노약자석에서 졸고 있는 사람의 정수리를 후려치기도 하던데(무지 아프죠), 왜 그러던 사람들이 분노해야 할 일에도 노여움이 다 사라져버린 꼴을 하고 힘없이 거리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는 걸까요.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한 걸까요. 물이 설설 끓어 곧 삶겨 죽임을 당할 거리는 사실을 알고도 저러는 걸까요. '아직 내 밥그릇은 안전하니까' 괜찮다는 걸까요.
사직공원 버스정류장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무표정하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그들의 목적지로 갔는지 새삼 궁금합니다. 나같은, 작은 일에 분노하는 소인배가 아니라 평정심, 평상심을 갖고 너그러이 교통통제를 받아들였을라나요.
1. 남미
'08.8.15 1:57 PM (116.126.xxx.85)사람들이 쏟아낸 그 순수한 열정을 국가가 이해하고 지원해주었다면,
사람들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진다 해도 국가가 처한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동참을 하겠지요.
남미 사람들의 전철을 밟는 것 같아 우울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인 건강권조차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충격입니다.2. 디오게네스
'08.8.15 1:58 PM (58.140.xxx.5)87년 6월 항쟁때도 차가 자주 못 지나갔었지요. 심지어 전철까지 그런 적도 있었지요.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데모가 늘 일상 생활이었기 때문에. 물론 나쁜 인간들을 또 데모질이야 하고 욕했지요. 나같은 보통 인간들은 그냥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었지요. 물론 그 당시도 깨었는 사람들은 명확히 알고 있었겠지요.
그 때 무임승차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지요. 그 빛진 심정에 요즈음 촛불집회에 자주 참석하는 것 같아요.3. 나만 열받았나
'08.8.15 2:56 PM (118.37.xxx.168)웃기는 건, '그놈의 촛불때문에' 교통통제 되는 건 게거품을 물면서 되도 않은 '행사로 인하여' 교통통제 되는 건 또 그러려니 한다는 겁니다. 어제 만난 버스 안의 할머니들처럼요(늙어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다 우리 할머니 같은 줄로만 알았는데.. 아연실색). 아~위정자들에게는 너무 다스리기 쉬운 나랍니다. 이렇게 말 잘 듣는 국민같으니...
4. 아름다운촛불
'08.8.15 4:47 PM (222.234.xxx.88)약한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회가 되어가고있습니다.
이 정권이 거기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구요.
아...열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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