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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봉사단-어느 외과의사의 후기

어찌될지 몰라서.. 조회수 : 541
작성일 : 2008-06-02 21:32:46
31일 저녁과 1일 새벽 의료봉사단으로 활동한 외과의사입니다.



글을 쓰고 싶은데 마음 어디선가의 울분이 기억도 손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31일 저녁과 6월 1일 새벽 전 다시 의료봉사단으로 활동했습니다.  총 7개 조 중에서 6조 조장으로 흰 까운을 입고 구급약이 든 배낭을 메고 제 집사람과 같이 활동했습니다.

  

시위대가 산발적으로 여기저기로 돌아다니고 결국 그 많은 인원을 막을 길이 없어 전경들이 물러난 세종로의 그 거대한 길에서 깃발들을 앞세운 시위대가 세종로를 행진할 때 전 감격에 눈물을 흘릴뻔 했습니다.

  

경복궁역 청와대 진입로에서 전경과 대치할 때 최전방에서 갑자기 밀려든 전경들에 의해 옆 골목으로 고립이 되었을 때에도 긴장을 하면서도 "그래 오늘은 무언가 되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나 봅니다.  살수차가 물을 직선으로 쏘아대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전경을 뚫고 시위대로 들어가 최전방을 둘러보고 뒤로 나와 피워진 모닥불 하나를 잡아 진료대기를 할 때 그때부터 물에 맞아 발생한 저체온증 환자들이 여기저기서 실려나왔습니다..

  

술한잔 하시고 분에 겨워 소리치다가 물맞고 저체온증에 빠진 할아버지부터 거식증에 식사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물에 맞고 저혈당 증세까지 보이는 여대생..  여기저기 손이 찟기고 전경에 맞아 옆구리가 아프다는 분들까지..

  

사실 전 그때부터 약간의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내가 서있는 이 시간이 정말 2008년 맞나?, 내가 이 사람들을 정말 잘 치료하고 있나?, 왜 이런 일들이 벌어져야 하나? 하는 생각에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더군요..

  

더더욱 절 분하게 만든 것은 전경들의 작태였습니다.

  

우리는 시청 대기 중에도 전경들이 보낸 후임들의 대일밴드와 두통약등의 부탁을 들어주며 "오늘은 살살합시다"라는 농담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대기중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한 천식이 있는 전경을 진료하고 후송보냈습니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것으로 보이는 전경도 응급처치 후 후송시켰고, 최전방에 있어 물에 온몸이 젖은 전경도 저체온증에 대한 조치 후 안정시킨 후에 후송을 보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우리 의료봉사팀에 전경을 치료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다른 부상자들에 대한 소식은 아고라 등을 통해 다들 더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같지 않았습니다.

  

시청집회시 대기중에 받은 청운동의 기습시위 중 환자발생이란 문자에 우리는 바로 달려갔지만 전경들은 우리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부탁에도 뒤에 있던 상관은 "개무시"로 일관했습니다.

  

새벽 한창의 시위 중 전경뒤쪽에서 응급심폐소생술이 요구되는 환자가 있다는 말에 들어가려 했지만 역시나 우리의 부탁은 묵살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쟁터에서도 환자를 위해서는 적군아군 할것없이 돌아다니며 치료할 수 있다는 적십자사의 기본윤리강령도 모르는 듯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진압만이 목표였고 우리는 단지 그들의 "적"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도 물대포를 쏘았습니다.

  

의료봉사단 일부가 이 물대포를 맞고 온몸이 젖었음에도 계속 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물대포에 귀가 찢어지고 안구기능이 상실되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놀라 실신한 환자들이 동이 튼 이후에도 계속 발생하였습니다.

  

물대포를 정통으로 맞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실신에 공황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공황상태는 점점 더 깊어갔구요..  무슨 생각으로 환자들을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마음으로는 의료봉사단의 중립정신이고 뭐고 입고 있던 가운 벗어던지고 전경 한놈이라도 데려다가 두들겨 패고 싶었습니다.

  

아침녘 정리되고 의봉단이 모여 쉬고 있는 광화문공원에 가는 동안 앉아서 서로 노닥거리는 전경간부들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누르고 지나가며 "x새끼들"이라는 욕을 날려주고 왔습니다.

  

1일 일요일에는 수백명이 시청광장에서 다음 시위를 기다리며 쉬고 의봉단도 쉬면서 활동을 계속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피곤도 그렇고 그 공황상태가 계속되면 몸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고 상황발생시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일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낮에 잠시 자고 일어나 11개월 아기도 있고 집안 일도 있고 해서 이것저것 하다보니 밤이었습니다만, 마음의 분은 가라앉지 않더군요.  피곤하지만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생중계 계속 보면서 지켜보다가 결국 오늘 아침 출근은 했지만 마음은 계속 시위현장에 있고 울분은 가라앉지가 않네요..그나마 기억을 정리해서 올린 것이 이정도입니다..

  

같이 사시는 장인 장모님의 눈치도 요즘 안좋고 11개월 아이의 양육도 문제고 병원일도 걸리고.. 가장으로서 행동을 실천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네요.. 아무래도 시간날때마다 수시로 달려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울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이 정권의 타도밖에는 방법이 없을 듯 하네요..

  

그리고 네티즌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무언가가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바로 지원이 되었습니다.  저체온증 환자들에 대한 이불이나 옷가지가 그렇고 따뜻한 음료가 필요했는데 누군가가 버너와 주전자를 주시고 먹을 것들과 음료는 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분은 저희에게 직접 오셔서 이거 두르면 따뜻해진다고 옷감을 크게크게 잘라서 직접 주시더군요.. 감사했습니다.  이번 시위는 네티즌님들의 힘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수고하시는 의료봉사단 님들의 열정에 그 열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개 의사로서 항상 죄송하고 감동을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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