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구 북구 칠성동에서 태어났습니다.
87년도가 되어 저는 그시절의 국민학교 3학년생이었습니다.
시민회관이라는, 대구역 바로 옆에 있는 영화관으로 자주 쓰이던 건물에서
주로 상영되었던 '우뢰매' 를 보겠다고 엄마한테 떼쓰던 넘이었습니다.
동성로 입구의 '한일극장' 도 자주 갔구요.
그해 내내 최루탄 연기가 뒤덮었지요.
나는 그저 맵기만 한 최루탄연기를 고스란히 맡으며
"대학생 형들 와 저래 데모하노? 맵아 죽겠네!" 라며 버스 안에서 코를 틀어막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매캐해져 오는 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지요... 문지르는 순간 죽음이었으니....
하지만 저는 그 대학생 형들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듣지 못했습니다.
아니 설령 들었다고 했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해하려 들지 않았을 겁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학생회 애들이 학교안이나 시내에서 집회하는 것을 보면...
쟈들 맨날 시위해가지고는 시내 맨날 차막힌다 아이가... 이랬습니다.
그게 저였습니다.
옛날 중구청 자리 근처에 있던 미쿡 문화원 앞에 전경들이 도열해 있는 이유를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말도 안되는 살인마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서글픈 현실 자체에,
그리고 그런 대통령에 의해 친구들이 언제인지 모르게 하나씩 둘씩 흔적도없이 사라져서
죽어서 돌아오고, 프락치로 돌아오고, 반병신이 되어서 돌아오고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다른 거창한 사상이나 이런 것이 아닌,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것입니다.
'정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살고싶다' 라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것도 자유롭게.
그런 생각 앞에서 최루탄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살인마가 대통령이 되는 대한민국... 그 현실에 비하면
동지들과 같이 어깨걸고 싸우며 최루탄 맞는 시간들이 차라리 행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나이 조금 더 많은 선영님들은 87년,
저보다 나이 조금 더 적은 선영님들은 최근까지.
시위하고 데모하고 싸우고 하는 대학생들이나 시민사회단체 분들 보며 무슨 생각들을 하셨나요...
차 막힌다고 짜증을 한번이라도 내신 적이 있습니까?
87년을 성인이 되어 맞이하신 분들은 혹시 그때 최루탄이 맵다고만 생각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나가다가 전단지를 내미는 학생들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으셨습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들 집회장소를 지나치다가 마이크소리가 시끄럽다며 귀를 막은적은 없으셨는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분들때문에 이 제대로 된거 하나 없는 대한민국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숨구멍 하나 내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지금까지나마 근근히 버텨올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혹시나 투표를 걸러 보시지는 않으셨는지요.
혹시나 TV에 나오는 정치 이야기를 보면서 그놈이그놈이라며 양비론을 펼치지는 않으셨는지요.
혹시나 길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는 대학 학생회 학생들에게 무심한 눈빛을 들키지는 않으셨는지요.
어쩜 우리 모두는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가슴 울렁거림, 잠 못잠, 분노, 눈물, 울분, 좌절..
그 모든것이 지난 날 위에서 설명한 죄들을 지은 죄값을 치르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올바른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헌신하시던 모든 분들에게
냉소의 눈빛을 보내고, 공부 안하냐고 핀잔주고, 전단지 받아 얼마안가 버려버리고 등등등...
그 모든 죄값을 한번에 몰아서 지금 받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분들에게 따뜻한 눈길과 손길 한번 보내지 않은 죄를 말입니다....
그것이 죄라면, 그것이 죄의 값이라면
우리 .... 광화문으로 나서보지 않겠습니까....청계천으로 외출을 나서보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우리가 무심하고 냉소하고 관심없었던 '정치' 라는 것에 그렇게도 목마르게 갈구했던,
최루탄 억세게 맞으면서 싸웠던 우리 '정치적 사회적 선배들' 에게 용서를 빌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우리... 청계천 돌바닥에서 그분들에게 마음으로 무릎꿇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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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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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럽 펌
일어납시다 조회수 : 378
작성일 : 2008-05-02 09:10:13
IP : 211.235.xxx.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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