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새벽편지에서 온 메일을 퍼왔어요

어느 수기 조회수 : 510
작성일 : 2007-01-13 19:48:23
10년 전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 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엄마..., 나 합격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 새벽편지 가족(정우진) -


새벽편지에서 오는 메일은 정말 감동적이 글들이 너무 많은것 같아요.
글 받기를 원하시는 님들은 메일을 남겨 주시면 추천해드릴께요

IP : 211.200.xxx.157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386
    '07.1.13 11:21 PM (125.184.xxx.134)

    세대인데 꼭 제 공부하던 그 때 얘기 같아요. 요즘 아이들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런 환경들...저또한 이만큼 힘든 고생은 하지 않앗지만 너무 대견한 아들이네요. 앞으로 멋진 인생 살길 바라고 형, 엄마의 고생 절대 잊지 말앗으면 좋겠어요. 읽다가 눈물이 주루룩 .... 나태한 생활에 각성하게 해주는 좋은 글이네요. 감사^^*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99625 논술학원 어디가??? 논술 2007/01/13 197
99624 목동...살고는 싶은데 무리는 어떨지? 6 집사기 2007/01/13 1,260
99623 제차가 95년식 엑센트인데요^^ 12 외제차 2007/01/13 1,325
99622 폴로 포니 가방 3 123 2007/01/13 742
99621 시누의 말 7 짜증 2007/01/13 1,978
99620 급하게 구해요-수영장기저귀 3 급해요 2007/01/13 341
99619 지금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오는 박화요비 7 ... 2007/01/13 2,110
99618 2000만원에 2부 5리? 9 꼼질맘 2007/01/13 1,919
99617 효소다이어트? 야채스프 다이어트? 3 건강 2007/01/13 1,022
99616 씽크대 상판 문의 입니다. 4 써보신분 2007/01/13 611
99615 혼자서 영어공부하는거 잘안되는데 영어학원 다니는게 나을까요? 4 .. 2007/01/13 1,124
99614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 12 배불러 2007/01/13 735
99613 폭스바겐 타보신분.. 10 자동차 2007/01/13 1,392
99612 넘 화가나서... 8 ... 2007/01/13 2,385
99611 급>3주된 약도라지 지금이라도 달여 먹을까요? 불쌍한 아들.. 2 도라지 2007/01/13 341
99610 컴퓨터 어디꺼 쓰세요??? 11 컴퓨터 2007/01/13 707
99609 시가 식구들 집들이 메뉴 좀 봐 주세요.. 7 걱정새댁 2007/01/12 794
99608 쿵쿵쿵 너무 괴로워요... 16 킹콩가족아랫.. 2007/01/12 1,301
99607 코스트코 서울 사는데.. 대구에 가서 가입해도 되는건가요?? ^^;; 6 콜라베어 2007/01/12 716
99606 (급해요 )임신중인데 수박이 너무 먹고 싶어요 ㅠㅠ 10 ㅠㅠ 2007/01/12 995
99605 돈이 2억 정도 있으면 어디다 3 은행 2007/01/12 1,611
99604 새로산 차 실내의 냄새가 너무 심해요.. 7 ... 2007/01/12 519
99603 울 남편 몰인정 한거 맞죠? 4 몰인정남편 2007/01/12 1,540
99602 백화점에서 철퍼덕 넘어지고 창피하고 다치고 아프고 앙앙 속상타요.. 15 잠오나공주 2007/01/12 1,206
99601 G마켓 판매 시스템을 알수가 없어요. 흑흑 3 나만그런가ㅡ.. 2007/01/12 611
99600 혹시 신내동 시영9단지 사시는분 계세요? 13 신내동 2007/01/12 715
99599 서울 아산병원 주변에 모텔이나 어디 묵을 곳 좀 추천부탁드립니다. 12 아가맘 2007/01/12 1,886
99598 요즘 떡 한말 , 가래떡 떡집에서 썰어주는데 얼마나 하나요? 5 . 2007/01/12 1,535
99597 초밥먹고싶단 애들땜에.. 17 울남편.. 2007/01/12 2,105
99596 아기 코막힐때 9 초보엄마 2007/01/12 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