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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이셔도 살아계셔야 할 이유 (펌)

마마헬렌 조회수 : 834
작성일 : 2005-11-29 14:57:16
이 글은 나의 여고 동창 모임 daum cafe에서 퍼온글입니다.

2005년 수필문학 3월호에도 기재되었던 글이랍니다.

지금도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이든지 치매어른을 모시고 계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되길 바랍니다.  


< 커피 한 잔도 >

                                                                   최 선 남

여느 때처럼 커피, 설탕을 넣고 프림에 찻숟갈이 가는 순간,
조용한, 그러나 매우 강한 어조의 음성이 내 온 몸을 울리고 있었다.

“이 커피를 마실 사람이 너를 나무랄 수 있고 유산이라도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네가 커피를 그렇게 타겠니?“
찻숟갈을 손에 든 채로 나는 굳어졌고 음성은 이어졌다.
“먼저 깨끗한 몸차림으로 물을 끓이겠고,
정갈한 찻잔을 골라 뜨거운 물에 한 번 헹구어 커피를 적당량 넣고
팔팔 끓여 한 소쿰 김을 뺀 물을 부어 설탕을 넣고 잘 저은 후
연유를 넣거나 식물성 프림을 넣겠지? 이것은 전문가가 일러주는 방법이 아니라
평소 네가 가지고 있는 커피 타는 습관이다.  비록 한 마디 말도 영향력을 줄 수 없고 너희들이 보기에 짐스럽고 차라리 없기를 바라는 치매 노인이라 할지라도 그는 내가 한 생명과 바꾼 아들이다. 마시는 이야 네가 어떤 순서로 커피를 탔는지 알리도 없고
그저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리라.
그러나 나는 네 마음을 읽었고, 네 손을 보았다“

건강하셨던 어머님이 입원 12일 만에 하늘나라로 가시고 무던히도 다투시던 아버님이셨건만 어머님이 보이시지 않자 가벼웠던 치매가 아주 심해지셨다.
영화나 드라마, 말로만 듣던 치매 -  형제들이 모여 의논을 했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었고
우리 집에 그대로 계시되 형제들이 할 수 있는 대로 서로 돕기로 했다.
아버님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셨고 거동이 불편한 탓에 앉아서 몸을 끌고 다니셨다.
식사는 틀니 사용을 귀찮아 하셔서 우유와 야구르트, 그린비아(수술환자를 위한 고단백 유동식)를 드셨지만 배설은 수시로 하셨다. 기저귀를 채우기만 해도 빼버리시므로 대소변을 본 채 그대로 온 방을 끌고 다니셨고 어느 때는 2층 계단을 내려와 l층 의자에까지 오물을 묻히셨다. 집안 여기저기 꽃이 많아 아버님이 담배를 태우셨어도 공기가 맑던 집은 현관문을 열면 오물 냄새로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출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요며 이불 빨래는 늘어만 갔고 속옷과 바지를 어린 아이 키울 때처럼 준비해야 했다.
일할 분을 두기도 여러 가지 형편상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네 안에 있단다
                                          

이런 생활을 3개월가량 했을 때였다. 그 날은 세 번째 요와 이불을 빨고 있었다. 몸은 물먹은 빨래보다 더 늘어졌고 뱃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은 곧 목을 넘어 올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예수를 몰랐다면... )

가까스로 속을 다스릴 때였다.
“네 안에 있는 것을 다 끄집어내어 냄새로 만든다면 어떻겠니?”
갑자기 어디서?
놀란 몸은 구역질을 멈추었고 냄새는 여전히 진동을 했다.
몸을 감싸는 듯한 부드럽고 인자한 음성은 내 입을 열게 했다.
“이 냄새보다 더하겠지요.”
“그래, 더 하지.
아마 10미터도 가까이 하기 어려울지 몰라. 그래도 나는 네 안에 있단다.”
나는 똥이 묻어있는 장갑을 그대로 낀 채 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님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죄송했다.
나를 다듬으려고 고생을 하시는 것 같았다. 이런 날들이 언제 끝날까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3일후부터 아버님은 기저귀를 차시게 되어 모든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아버님은 4남매 중 큰 아들만 알아 볼뿐 두 딸도, 막내아들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심지어 오직 하나뿐인 여동생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런데 큰 며느리인 나는 정확하게 아셔서 기저귀를 갈아 드리기가 민망해
남편과 집에서 10분 거리에 사는 작은 시누이가 맡았고, 나는 아침에 성경책 한 장을 읽어 드리고 아버님 손을 잡고 기도한 후 커피를 타 드리는 일을 계속했다.
출근을 해야 하는 탓에 시간을 1,2분으로 계산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모습 그대로 일을 끝내고 그 후에야 맵시를 냈다.
물론 아버님 커피를 타서 가져가는 일도 일의 연속이었을 뿐이었다. 너무도 커피를 좋아하시는 아버님이신지라 드리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커피, 설탕, 프림 한꺼번에 넣고 때로 물이 제대로 끓지 않아 뿌연 거품이 생기기도 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커피 잔은 커피물이 밴 아버님 전용 커피 잔.
커피를 나르는 모습은 오물 빨래를 위해 앞치마를 두른 흐트러진 매무새였다.

그날도 10시가 가까운 조바심 나는 시간인지라 서둘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채찍의 소리에 나는 프림을 넣기 전에 눈물을 먼저 넣고 말았다.
건강하신 아버님이셨다면 세수도 안한 얼굴로 커피를 드릴 수 있었을까?
진지보다 좋아하시는 커피맛에 예민할 감각을 무시했을까?
되는대로 해도 괜찮은 치매 노인이 아니라 한 잔의 커피도 공손하게 드려야 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셨고 사랑하는 남편의 아버님이셨다.

치매 아버님을 모시는 며느리라는 말이 못내 부끄럽고 싫어 쉽사리 아버님 얘기를 꺼내지 못했던 나, 두 번의 내면의 소리를 들은 후로는 아버님이 치매이셔도 살아계셔야 할 이유를 떳떳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버님께 대한 미움이 마음속에 있던 작은시누이도 아버님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면서 아버님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었으며, 아침마다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출근하던 남편도 아버님 가시는 날 기껍게 보내드렸다. 우리형제들을 하나 되게 하시고 며느리를 보다 성숙시키고 서둘러 어머님 곁으로 가신 아버님,
오늘도 내 커피 잔 속에서 “그래, 고마워 ” 하며 좋아 하신다.





IP : 222.101.xxx.75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일산댁
    '05.11.29 5:20 PM (60.196.xxx.81)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 2. 아휴...
    '05.11.29 7:44 PM (58.140.xxx.220)

    제목만 읽었을때에도 눈두덩이가 찡~한체로 들어왔는데...
    다읽고... 결국은 눈물이 나네요....

  • 3. 까메하에
    '05.11.29 11:41 PM (218.52.xxx.174)

    치매..........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간병하시는 분에게는 그 어떤 병보다도 힘들지요.........네 저도 시어머님과 친정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곁에 계셔주셨으면 하는 ........사실 계실때는 힘들죠..안계시고 난후 빈자리에 계실때 못해드린 아쉬움과 .........오늘 두분이 너무나 간절히 생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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