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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녀 할머니

쉐어그린 조회수 : 883
작성일 : 2004-04-17 10:18:13
(귀하다는 흰 제비꽃)



벗꽃, 복사꽃, 배꽃 앵두나무 꽃 등등 초봄에 피는 화사한 꽃들이  
지고 있답니다. 요즘 바람이 유난히 휘휘 부는데, 바람결에
그 화사한 꽃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져 그야말로 꽃비랍니다.
이제 화사한 모습은 조금씩 벗고, 이파리와 나무줄기와 나무둥치를
키우는 계절이 서서히 오고 있습니다.

화사한 꽃들이 지고 있는 그제 저희 부부는 밤 밭에 거름을 주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거름을 뿌려주다 보면 밭의 땅들을 보게 되는데,
온갖 야생화들이 발치에서 피어나, 환한 얼굴로 웃고 있습니다.  

"어마! 이 하얀 꽃 좀 봐! 이름이 뭐더라. 아!
산자고다.  이 꽃도! 근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

절로 그 조그만 꽃들과 이런 식으로 얘기를 나누는데, 사실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꽃들이 많네요. 지난 봄에는 야생화 관련 책들을 보며
익혀두었던 꽃들인데, 일년이 지나고 보니, 머리 속에서 이름만 맴돌다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지금 산에는 야생화 세상입니다.
작은 붓꽃, 제비꽃, 산자고, 별꽃, 구슬붕이, 할미꽃, 미나리 아제비와
제가 이름을 잊어버린 여러 꽃들.....

이런 꽃들은 허리를 굽혀 세세히 보지 않으면 잘 안 보이는 꽃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꽃을 보려면 허리를 굽히게 되는데, 한참을 그러다 보면
허리가 좀 아파 오지요.  밤 밭에 거름을 주며, 허리를 굽혀서 이들
야생화를 보다, 아 글쎄 어느새 고사리 순이 올라온 것을 알았습니다.
고사리 순이 올라오면 이젠 시골은 나물 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밤 밭에 거름을 다 주고 산에서 내려오다 보니
마을 할머님 한 분께서 커다란 앞치마용 자루에 나물을 그득 캐서
내려가시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마당에서 화단을 가꾸다, 밭을 갈다, 차 한잔을 하다 어슬렁거리다 보면
이런 할머님들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우리 마을 할머님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마을의 낯선 할머님들 모습도 보이지요. 그러면 저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집니다. 산에 가면 나물이 널린 이 나물 철에 나물을 해다
삶아 말려두는 일. 흥겨운 일이기에 어서 동참하고프죠. 또 나물을 캐러
산으로 다니다 산과 친해질 수도 있고, 산에 사는 꽃과 나무들도 좀더 알게 됩니다.
작년엔 밤 산을  돌보고, 밤을 거두면서도 보이지 않던 나무들이 올 해는
이 자리에 이런 나무가 있었나 싶게 눈에 띄는 겁니다.
배나무, 엄나무, 두릅나무.....  

지금 산에는 두릅순, 머구(머위), 고사리, 취(아직은 조금 작지만)등이
많이 있답니다. 이들이 어른거려 그간 미루어두고 있던 밭갈이를 모두
서둘러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덤으로 주어진 휴일을 맞아 아이들과,
고사리를 한 움큼 따왔답니다. 머구는 한 자루. 두릅은 반 자루. 취는 한 움큼.
그 향에 취할 것만 같은 취나물은 삶아 양념하여 어제 점심 찬으로 먹고,
두릅순은 삶아서 초장과 함께 집 짓는  아저씨들(민박을 할 요량으로 방을 늘리고 있거든요.
다 되면 사진 한번 올릴게요.  혹, 지리산 놀러오실 때 이용해 주세요.
김선생님! 광고가 되어버렸네요. 에구~~용서해주세요.)에게 참으로 내고,
오늘 오전 내내 남은 나물들을 갈무리하고 씻어서 말리는 작업을 하고 나니,
봄의 나른한 피곤이 몰려옵니다.

장독 옆에 나물 말리는 채반을 놓고 앉아 있으려니, 할머님 한 분이
나물을 그득 캔 자루를 허리춤에 달고 마을로 총총히 내려가십니다.
시골에서 처녀는 눈 씻고 찾아봐야 하지만, 나물 캐는 봄 할머님들이
지금은 마치 봄처녀 같답니다. 저는 나물 캐는 봄 새색시(?)이구요.
왜냐구요? 할머님들께선 산에서 나물 캐기만큼은  더 펄펄 나십니다.
저는 그러고 보니 새색시 축에도 못끼이겠네요. 나물 캐는 아줌마정도이지요.
그래도 이 나물 철이 좀 천천히 지났으면 싶네요.
복사꽃 지듯, 후딱 지나가지  안았으면.....

IP : 61.83.xxx.201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칼라(구경아)
    '04.4.17 10:39 AM (211.215.xxx.168)

    이세상에서 가장행복한 할머니~~~~~~
    봄날 따스한 햇살 받아가며 나물케시는 할머니........

  • 2. 천사초이
    '04.4.17 1:02 PM (211.192.xxx.111)

    흰색 제비꽃은 처음보네요.. 지금까지 살면서..그렇다고 나이가 많은건 아닌데.. 예전살던동네뒷산에 제비꽃이 많이 피고 봤는데...흰색은 처음이네요... 흰색도 이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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