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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쓸쓸한 당신
가장 선호하는 작가는 박완서님과 헤세입니다.
최근 몇 년간 읽은 중, 단편을 통틀어 가장 심금을 울린 건.....
박완서님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입니다.
단편 모음으로. 그 중 한 이야기죠.
시골교장의 부인인 그녀는
고리타분하고, 촌스런 남편에게 치를 떱니다.
그녀가,
그에게서 탈출을 결심하고 내민 카드는 아이들 교육,
아이들을 위해 합법적인 별거에 들어갑니다.
서울 생활에 적응하며, 아이들을 명문대 졸업시키고, 유학까지.....
남편은 최소한의 식비를 제외한 월급을 고스란히 보냈고,
퇴임 후엔, 삼팔선 근처에서 농사를 짓지만, 그녀는 그에게 가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작은 아이의 졸업식,
몇년만에 만난 남편,
여전히, 초라하고, 작고, 소심한....
서울 생활에 익숙한 그녀는 창피해 아는척도 하기 싫을 정도.
식을 마치고 나서,
어찌어찌해, 둘이 같이 나왔는데......
남편이 사는 곳에 한 번 가보자고 하죠.
전철에서 국철로 갈아타고 들어간
시골의 냄새나는 돼지갈비집....
그녀는 호기를 부려봅니다.
눈 앞에 보이는 러브호텔에 들어가자고,
남편은 아무렇지않게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그녀가 본 건....
넓적다리에 남은 살은 물주머니처럼 쳐졌고, 정강이는 몽둥이처럼 깡마른........혐오스러운.....
그녀는 도망을 칩니다.
그와는 도저히 다시 살을 대고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절망감에.....
한참을 돌아다니다,
다시, 모텔에 들어가보니,
남편은 팬티만 입은 채 자고 있었습니다.
이불을 덮어주려고,
가까이 다가서니, 온통 모기 물린 자국이....
그리고.......
때가 낀 손톱과 함께 초라하고 고달펐을 삶이 한꺼번에 보이는 홀아비의 몸뚱이.......
그녀는 갑자기
가부장의 의무에 얽매여 살았을 남편에 대한 연민이 목구멍으로 뜨겁게 치받치며,
모기 불린 자국을 가만가만 어루만기지 시작합니다.......
요즘,
본의 아니게 남편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오늘은 일이 꼬여, 아침부터 스트레스 많이 받았죠.
정신없이 힘든 중에,
뜬금없이
그의 모습이 처음으로 내눈에 들어왔습니다.
얼굴도 쳐지고,
어깨도, 몸도,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양이랑 전혀 다른......
당연히, 나이가 들어서겠지만,
십수년의 가장노릇이 그의 어깨를 내리누른건 아닌지....
물론,
내 모습도 많이 망가졌겠지만.......ㅠㅠ
그 팔팔하고 몸 좋던 사람이
저 사람이었나 싶더군요,........
오늘, 사고로
그는 지금도 머리 터지게 수습 중일 겁니다.
결혼 13년만에
처음 가져보는 연민이랄까.....
집에 오는 내내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 생각나며,
나도 혹시,
그 글의 화자같이 살아온 건 아닌지.....생각해봤습니다.
요리에, 책에, 음악에,
각종 문화생활을 영위하면서.....
나의 수준을 높이며,
너의 삶은 나랑 무관해,
너는 가장이니까 우리를 먹여살려야지 하면서.........
남편의 모습을 한 번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
사랑보다는 연민이 생길 겁니다.......
1. 귀차니
'04.3.26 9:14 PM (218.145.xxx.92)요즘 제맘이 좀 안좋았었는데 자스민님 글 한편이 절 부끄럽게 하네요...
감사합니다.2. 우렁각시
'04.3.26 9:15 PM (64.231.xxx.45)결혼 6개월후, 남편이 불쌍해 보이는 겁니다.
어쩌다 나같은 여잘 만나서....쯔쯧.
그 이후론 정말 남편이 내 핏줄같습니다....오히려 연애땐 웬수였는데요(ㅠ.ㅠ)
친구한테 그 얘길 했더니 "결혼 30년한 부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던데요?3. 귀차니
'04.3.26 9:24 PM (218.145.xxx.92)참... 자스민님댁의 사고가 빠르고 평안하게 잘 마무리되길 빌께요. 부디 큰 일이 아니길..
4. 아테나
'04.3.26 9:29 PM (61.75.xxx.60)자스민님 일이 잘 해결 되길바랍니다
5. 치즈
'04.3.26 9:31 PM (211.194.xxx.183)아름답게 나이들어가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시죠..박완서님.
좋아하는 작가 에요.
그 책을 저도 처음 출판 되었을 때 보고는
나이들어가는데 있어 내게 한권의 교과서가 또 생겼구나 했어요.
같이 살아가는 부부간의 얘기들 한번쯤 생각 해 볼만 해요.6. 아라레
'04.3.26 9:34 PM (210.221.xxx.250)오늘 그렇지 않아도 (징그럽게 미운 ㅋㅋ) 남푠의 얼굴을 보니 눈가에 주름이 많이 잡혔더라구요.
안쓰럽기도 하고 참 너도(동갑내기) 많이 늙었구나.. 싶어서 짠했지만
"그러게 왜 주는 아이크림 좀 바르고 다니지 안바르고 다녀?!"하고 또 버럭 소리만 질렀네요...7. 키세스
'04.3.26 9:38 PM (211.176.xxx.151)일이 잘 해결되겠죠?
집에서만 볼 때하고 직장에서 마주치는 거하고 많이 다른가봐요.
사실 애 어려서 한참 씨름할 땐 신랑이 회사에서 놀다오는 것처럼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구요.
^^;;;
지금 느끼시는 연민이라는 거... 아주아주 사랑해서 그런 감정이 생기는 거지요? ^^8. 국진이마누라
'04.3.26 10:19 PM (210.207.xxx.156)자스민님의 글을 읽으며 눈물이 좀 나네요.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울신랑도
힘없고 초라한 늙은이가 되겠지.. 생각하니 얼마나 가여운지..
평생의 내친구..
우리 신랑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9. 김새봄
'04.3.26 10:22 PM (211.212.xxx.99)아...전 이글 안 읽은걸로 할랍니다.
자스민님...오늘 사고가 어떤건지는 몰라도 잘 조용히 수습됐으면 좋겠네요.10. 푸우
'04.3.26 10:39 PM (219.241.xxx.59)저도 오늘 우리 신랑이 불쌍해 보였는데,,,
11. 이론의 여왕
'04.3.26 11:07 PM (203.246.xxx.183)돈으로는 살 수 없는 이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이네요~
선생님께 너무 잘 어울리는 예쁜 구두예요.
서로 마음을 주고 받은 예쁜 선배 후배 사이가 부러워요.12. 김애영
'04.3.27 12:23 AM (211.221.xxx.243)저도 여자작가중에는 박완서를 제일 좋아하는데
당장 사봐야겠어요.
힘내세요. 저는 결혼10년차인 요즘 남편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연애이후로, 없으면 나혼자 못살것처럼 말예요.13. 레아맘
'04.3.27 12:29 AM (82.224.xxx.49)참.... 마음이 싸해지는 군요ㅡㅡ
부부라는것이 특히 우리나라 부부들은 참 사랑보다 더 끈근한 그 무엇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많이 해요.
다들 '정'이라고 하죠.
프랑스에는 '정' 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우리나라 부부간의 그 징글징글한 '정'을 설명할 수가 없어서 많이 답답하죠.
특히 가족을 위해 남자 혼자 외국에서 장기간 있다온다는건 여기 여자들은 이해 못해요.
여기 부부들 삶이 단순하고 풍요로워서인지 사회가 굉장히 부부 중심이고 같이 있는 시간이 엄청 많음에도 부부간에 그 '연민'이란거 별로 없는것 같아요.
전 우리 실랑하구 징글징글해도 정 많이 쌓으면서 서로 불쌍해하면서 그러면서 보듬어주면서 살고 싶어요.....한국적으로...프랑스식은 싫어요.
에고 글이 쓸데옶이 길어졌네요.
자스민님...사고가 잘 수습이 되기를 기도할께요.
그리고 자스민님의 남편을 향한 그 '사랑' ......영원하기를 바래요.14. 아보카도
'04.3.27 12:56 AM (68.55.xxx.80)자스민님.. 저도 박완서님 참 좋아해요. 그 소설 읽으면서 여자주인공.. 얄밉다고 생각하다가도 내 모습이 많이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하고 그랬어요..
사고 ,, 잘 수습되실 거예요.
전 우리남편.. 참 부드럽고 좋은데.. 알수 없는 냉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거든요. 뭐랄까.. 외국사람이랑 사는듯한.. 한국사람들이 가지고있는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정서가 없다고 누구나 다 이렇게 생각할 부분에서 정말 개인적이고 합리적인 생각만 한다고.. 그래서 감정적인 저하고는 엄청 .. 다르죠.. 그런데 자스민님 글 읽으니까.. 정이 넘쳐서 ..부럽네요.15. orange
'04.3.27 1:34 AM (221.142.xxx.206)저도 가끔은 남편 직장에 가서 돕기도 하고 그러는데
정말 집에서 보는 모습과 밖에서 보는 모습은 많이 다르더군요....
워낙 자기 건강을 알아서 잘 챙기는 사람이라 젊을 땐 얄미울 때도 많았는데
나이 드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기도 하구요.....
오래 전에 읽었던 휘청거리는 오후에서도 주인공 아버지가 참 불쌍했었는데......16. 깜찌기 펭
'04.3.27 1:36 AM (220.81.xxx.212)음.. 우리 신랑도.. --;
17. La Cucina
'04.3.27 2:04 AM (172.134.xxx.72)어느 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여자는 원하는 걸 말만 하면 되지만..남자는 자기 여자가 원하는 걸 들어주려고 한데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포함 된 것이고..어떤 사물을 원해서 무리해서라도 사주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항상 매일 고맙다고 말하고 살아요. 이런 마음 계속 오래 갔음 좋겠어요.18. 현석마미
'04.3.27 2:55 AM (132.194.xxx.207)맘이 짠~해지는 기분이네요...
울랑 지금 봐도 안쓰러운데...나중에 늙으면 더 그러겠죠??
오늘 울랑에게 메일이라도 한 통 써야겠어요...
공부하는데 힘들겠지만...힘내라고...!!19. 경빈마마
'04.3.27 3:31 AM (211.36.xxx.98)작아 보이고 불쌍해 보이는 이름이 바로 남편입니다..
현재의 남편...20. 무우꽃
'04.3.27 3:31 AM (210.118.xxx.196)이상하죠. 잘 나갈 때는 자신이나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없다가, 뭔가 막히거나 힘들 때면 - 물론 그 때는 그럴 경황이 없고 조금 지난 후에야 - 그 존재들의 가치를 느끼게 되니 말예요.
회사를 정리한 후, 작년 가을을 그러면서 지냈습니다.
어머니, 친구, 여자, 아들 ... 모두가 소중하더군요.21. 헤스티아
'04.3.27 7:51 AM (218.152.xxx.230)앙~~ 눈물나올려구 해요~~
요새 제가 임신하고 남편 혼자 버니까 남편이 더 고마워지네요...
잘 해줘야 겠당...22. tiranoss
'04.3.27 8:12 AM (220.70.xxx.36)마음이 싸아~~한 글이네요 쟈스민님
울남편이랑은 말그대루 즐거울때나 슬플때나 힘들때에
항상 서루얘기하며 지낸답니다
그래두 다 이해 하지는 못하지만요 노력은 하는편이죠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고 살다보면서 더정이들구 그런게
부부간의 사랑인가 봅니다23. 풀내음
'04.3.27 9:03 AM (210.204.xxx.4)저도 박완서 정말 정말 좋아해요. 늦은감이 있지만... 박완서 이야기여서.. 해산바가지에서 박완서의 글이라면 거의 다 읽었죠. 정말 푸근하면서 날카롭고 신랄하면서도 감싸안고... 너무너무 좋아요. 너무 쓸쓸한 당신도 좋았구요. 수필집도 좋답니다. 나는 왜 작은일에 분개하는가도 좋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요. 박완서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할때 친정 오빠가 죽었을때 집안이 망하려고 딸이 안죽고 아들이 죽었다는 말에 자신의 가슴에 대못이 박혔는데... 살면서 그 말이 수긍이 되면서 못이 서서이 녹았다는 구절.. 정말 눈물났습니다. 못이 한번에 빠지면 그 못빠진 자리가 흉터가 되고 상처가 되는데 서서이 녹아서 빠졌다는 그 구절에 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그 때 상처를 받은 일이 있었거든요. 지금도 녹고 있는 중입니다. ^^: 많은 충고와 위로가 담겨있어서 우울할때 읽지요. 즐거울때도 일고..
24. 그래도
'04.3.27 9:37 AM (211.203.xxx.9)남편이 미워여~ 우띠...
25. 꽃게
'04.3.27 9:46 AM (211.252.xxx.1)가슴이 싸아 하네요.
요즘들어....26. shalom
'04.3.27 1:59 PM (218.232.xxx.77)내인생에서 남자는 결혼전에도 지금에서도 남푠뿐인것을....그런데두 가끔은 왜그렇게 미워지는건지...그래두 함께 산다는건 미움보단 사랑이 더 크기때문이 아니겠어여?!
가장의 무게에 눌리는 모든 남편들이 아버지들이 힘냈으면 좋겠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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