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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잡지에 올린 '일하며서 밥해먹기'북리뷰입니다.
뜬금없이 웬 요리책이냐고 하겠지만 이 책은 여느 요리책과는 좀 다르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요
리연구가 모모씨가 전수하는 우리 요리 100선이나 호텔요리 당신도 해봐라 같은 책들과는 다르다. 위의
요리책들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전업주부들에게나 적합한 책이다.
본 책 일하면서 밥해먹기는 그야말로 일을 하면서 ‘요리’가 아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밥 해먹기에 관한
책이다.
나 역시 일을 하면서 밥을 해 먹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혼자 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 벌써 8
년차나 되었으니 그럭저럭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제대로 배운 적 없이 내 멋대로 대강대강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했기 때문에 찌게는 종류를 불문하고 한 가지 맛이 나고 볶음은 뭐를 넣건 거기서 거
기라는 치명적인 오점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요리책도 사 보았고 (이현우의 이지쿠킹이었던 것으로 생
각되는데 생각보다 이지하지 않았다.) 케이블TV 푸드 채널도 드문드문 봐왔건만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았
다.
요리책이나 요리프로를 따라하는데 있어 가장 큰 난점은 몇 그람 몇 티스푼 하는 단위와 좀처럼 집에 갖
춰놓기 힘든 재료들이라고 생각한다. 뭐 하나를 해먹기 위해서 저렇게나 많이 필요할까 싶은 재료들을
가지고 요리를 하는 것을 보면 간장, 설탕, 고춧가루, 소금, 다시다가 양념의 전부인 나는 그냥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겠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거기다 요리프로에서 쓰는 도구들은 역시 도마와 칼이 주방도구의
전부인 이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다운 요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요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하루에 8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까지 일을 하면서 몇 시간이나 투자해야 하는 요리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청소도 빨래도 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김혜경의 ‘일하면서 밥해먹기’는 정답은 아닐망정 해답을 주기는 한다. 우선 주방에 필요한 기본
부터 갖추라고 말 하므로써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재료와 도구들이 넘쳐흘러서 이걸 다 사다가는
살림 거덜나겠군 싶은 요리책과는 다르다. 처음부터 무엇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해놓고 그 기본을 가지고
만든 요리들을 소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만 갖추어 놓으면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 요리들이 많다. 그
리고 저자 역시 기자생활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서인지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요리들이 많다. 물론 중간에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는 것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쉬는 날 충분하게 준비가 가능한 정도이고 만약 시
간이 없다면 맛은 조금 덜하더라도 단시간에 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적혀있다.
또 하나. 무슨 소스이건 양념이건 직접 다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여타 요리책 혹은 요리 프로그램들과
는 달리 시중에 파는 소스와 드레싱등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있다. 웰빙족이라 유기농 이외
에는 절대 먹을 수 없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인스턴트나 레토르트, 통조림을 이용한 요리도 많아서 시간
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잘 읽힌다는 것에 있다. 흔히 요리의 그림아래 재료. 만드
는 법으로 땡인 요리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허나 기자출신 답게 여러 가지 에피
소드와 정감 가는 문체로 저녁거리를 걱정하는 옆집 새댁에게 일러주는 듯한 이 책은 주방에서 식칼 들
고 심호흡한번 하고 나서야 들춰보게 되는 요리책과는 다르다. 한번에 죽 읽어두면 머릿속에 남기 때문
에 요리를 할 때가 되어서 찾아보는 레시피북들 보다 훨씬 더 와 닿는다.
이 책에는 여러 주방도구들과 그보다는 조금 더 급이 높아 가전제품이라 불리울 만한 물건들이 많이 소개
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단 한 가지 목적에 귀결된다. 일하면서 밥해먹기. 즉 시간이 별로 많지 않
는 상황에서 보다 손쉽고 빠르게 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소개되는 것 마다 모두 갖출 필
요는 없겠지만 식구들이 밥을 먹고도 쉬는 동안 소화시킬 틈도 없이 설거지통에 손을 담글 바에는 차라
리 설거지 기계를 사는 것을 권하는 그녀의 말에 속 시원함마저 느껴진다. 혼자 살면서 밥을 해먹는 나
도 설거지가 끔찍한데 최소 3인이상의 가족과 함께 살면서 일까지 하는 주부라면 잠자리에 드는 그 시간
까지 부엌에서 동동거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김혜경씨가 추천하는 모든 요리도구와 재료를 갖춰도 단 하나 갖추지 못할 것이 있는데 바로
친정어머니의 요리 솜씨이다. (기회가 닿으면 우리 엄마가 얼마나 요리를 끔찍하게 못하시는지 에세이라
도 쓰고 싶을 지경이다.) 그녀가 그 바쁘다는 월급쟁이 기자를 하면서도 밥해먹는 것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친정어머니가 요리를 잘 했기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
이 맛을 안다고, 잘 만든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은 어깨너머로 배워도 벌써 나 같은 사람보다 100m는 앞
서 출발하는 셈이다.
책에는 장을 보는 곳이 인터넷 사이트뿐 아니라 각종 시장과 마트에 대해서도 나와 있는데 수도권 지역에
만 한정되어 있어 지방 사람들은 인터넷 사이트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
서 회사건물에 있는 모 마트만 이용하던 나도 저자처럼 여러 마트와 시장을 고루 섭렵하며 장을 보게 되
었다. (풍부한 재료가 풍성한 식탁을 만듦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여유를 부려가며 읽었는데도 이틀 만에 다 읽을 만큼 재미도 있고 실용적인 책으로 일을 하면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권장 도서이며 앞으로 시집 장가갈 처녀 총각들도 봐두면 손해는 안볼 책
이다.
1. jasmine
'03.10.25 6:45 PM (211.204.xxx.230)촌철살인의 문체이시군요....ㅎㅎ
1) 요리가 아닌 끼니를 떼울수 있는 밥해먹기....음음...
1) 찌게는 종류를 불문하고 한가지 맛이 나고.....푸하하....
2) 우리 엄마가 얼마나 요리를 끔찍하게 못하시는지 에세이라도 쓰고 싶을 지경.....헛헛...
기절하는 줄 알았슴다.....이거 코미디 대본 같아요....정말 글 잘 쓰시네요.
간결하고, 빠르고, 핵심 콕 찌르고....대성하시겠어요. 잘 읽었습니다.........^^2. 궁금이
'03.10.25 9:40 PM (220.73.xxx.76)진진님 독후감 넘넘 잘쓰시네요...근데 잡지는 뭔지...궁금해요.
3. 박진진
'03.10.26 10:28 AM (218.54.xxx.244)먼저 Jasmine님. 감사합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 역시 칭찬에 무척 약하답니다. 별말씀을 요 무슨 하는 겸손따위는 떨지 않겠습니다. 대성하겠다는 그 말 콱 믿고 함 전진 해 보겠습니다. 으흐..
그리고 궁금이님. 저는 현재 두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사는 지역의 잡지인데 이놀자라는 잡지구요. 하나는 임프레스사의 월간 그래픽 디자인 입니다. 두 곳 다 북리뷰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임프레스의 월간 그래픽 디자인은 곧 사라진다고 해서 아쉽습니다. 으흑...
아무튼 칭찬들을 해 주시니 너무 좋으네요. 대부분 제 글들은 잡지에 실리고 한달이면 생명이 다 하기 때문에 사람들 반응을 도통 알수가 없거든요. 이래서 인터넷이 좋은가봅니다. 반응이 바로바로 보이니깐... 혹시 이 원고중에 미흡한점이나 제가 잘못 알고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시면 지적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신분들 감사합니다.4. sunset
'03.10.26 6:13 PM (211.204.xxx.105)본 책--> 이 책
가장 큰 난점은 ---> 가장 어려운 점은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쓰기란 책 읽어보시면 글 쓰시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5. 톱밥
'03.10.26 7:21 PM (218.53.xxx.249)박진진님은 자기한테 필요한 문장만 쏘옥 빼보시는 능력도 뛰어나신 것 같네요.. -_-
6. 박진진
'03.10.26 9:54 PM (218.54.xxx.244)톱밥님. 어떤 글이나 자기가 원하는 부분한 추려서 빼보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일종의 개인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육식을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껏해야 돈가스와 줄줄이 비엔나 정도가 저의 육식의 다 입니다. 그나마 저것들도 먹기 시작한지 얼마 되질 않았구요. 체질상의 문제인지 아님 다른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만..) 김혜경님이 육식에 대해 써 두었던 부분은 그냥 책장을 넘겼습니다. 어차피 해먹을 일도 없을 것이고 고기는 상상만 해도 별로 유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톱밥님께서는 마음에 안드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일하면서 밥을 해 먹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물론 식기 세척기나 기타 비싼 주방기구들을 볼때는 저는 아직 살 계획이 없기 때문에 저게 필요할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자녀와 남편이 있는 주부가 일까지 하면서 밥을 해 먹으려면 필요하다 싶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혼자 살거든요.) 지금 제가 다니는 회사에도 마흔 가까이 된 주부이신 직원이 한분 계시는데요. 그분이 그러시더라구요. 똑 같이 일하는데도 부엌일 만큼은 온전하게 자신의 몫이라고.. 남편이 도와줘야 청소와 빨래 정도이고 어쩌다 한두번 정도 요리솜씨를 발휘하긴 하지만 매 끼니를 해결하는 것은 역시 그분의 몫이라면서 저보고는 결혼을 하면 처음부터 주방일은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 도맡아서 하지말고 나눠서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분 말씀을 들으니까 혼자 사는 저도 가끔 설거지도 밥도 하기싫고 낮에 하루종일 일하고 들어와서 차려준 밥상이 아닌 내가 차린 밥상을 먹어야 함에 서글픔도 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책을 좋게 본 것입니다.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어떤 사람은 좋게 평가를 하고 어떤 사람은 나쁘게 평가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평소에 맘맞는 친구와 같이 영화를 봐도 평이 엇갈리는데 모르는 사람들과는 오죽하겠습니까.
제가 저 책을 좋게 본 것에 대해 너무 나쁘게 생각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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