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김신영
내 마음 하나 비우지 못해 길을 걸었다 유쾌한 아낙네들 거리에 쏟아져 있고, 남 모르는 햇살을 간직한 채 미쳐 우는 바람은 아직도 내 곁에. 시계는 갔다 그저 제가 가르치고 싶은 지침은 하나도 못 가르치고 내 시계는 갔다 사랑이 찬란한 빛을 잃었듯이 마음은 흘러가고 있었다 누구든 머무는 바람을 안다면 내게도 좀 가르쳐다오 나아 그를 만나 떠다니지도 않을 곳에서 내 마음의 꽃들을 걷어내고 싶어 파리의 보헤미안처럼 파가니니의 협주곡 하나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같은 저음의 고요를 하나쯤 간직하고 아무도 없는 섬에서 조금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내 그리움 사무치는 파도에 휩싸이는 여름을 보내고 나면 비바람이 그칠는지 골목길에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내 그리움 훌훌 털어낼 수 있다면 더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면 끝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없어도 된다면 나아 그 길에 있고 싶어 그 길에 내 노래 하나 무덤을 만들어놓고 무심하게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김신영,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문학과 지성사
길을 걸으면
그러다 석양이라도 만나면
얼른 갚아야 할 빚을 기억 해 낸다
갚고 나서 모을 돈도 생각 해 낸다
숫자를 복리로 셈하고
햇수를 물쓰듯 흘리고
종국에 훌훌 늙어 버릴 나를 떠올리면
일몰이 던지고 간 그림자도
자꾸 뺨을 만지던 익숙한 바람도
그립지 않아
그립지 않다고
나는 해 냈다고
* 사진 위는 시인의 시
* 사진은 쑥언늬 일상컷
* 사진 밑은 쑥언늬 생활의 지혜를 담은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