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
손택수
멀리 여행을 갈 처지는 못 되고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을 때
나무 그늘 흔들리는 걸 보겠네
병가라도 내고 싶지만 아플 틈이 어디 어딨나
서둘러 약국을 찾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병을 앓는 것도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 되어 버렸을 때
오다가다 안면을 트고 지낸 은목서라도 있어
그 그늘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겠네
마흔 몇 해동안 나무 그늘 흔들리는 데 마음 준 적이 없다는 건
누군가의 눈망울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는 얘기처럼 쓸쓸한 이야기
어떤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다 지워졌는데 그 눈빛만은 기억나지
눈빛 하나로 한 생을 함께 하다 가지
나뭇잎 흔들릴때마다 살아나는 빛이 그 눈빛만 같을 때
어디 먼 섬에라도 찾듯, 나는 지금 병가를 내고 있는 거라
여가 같은 병가를 쓰고 있는 거라
나무 그늘 이저리 흔들리는 데 넋을 놓겠네
병에게 정중히 병문안이라도 청하고 싶지만
무슨 인연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살펴보고 싶지만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멀쩡하게 겨울이 지나갈 때
-[문예연구] 2019 봄호, 문예연구사, 2019, 119-120
사람만이 인연이고
사람하고만 인사트고
사람만을 기다리며 살지 않지
오고 가는
남의 집 화단에 핀 꽃
공원 담벼락의 이러쿵저러쿵 덩쿨
지하철 입구에 쩔은 나무
하다하다
오래 묵은 가게
하다하다
늘 고대로 그 자리 세월 비켜 나 간판
그 익숙함이 주는 의지됨을
높고 높아 얻기 힘든
사람 마음이 아시겠냐만은
잠시 잠깐
나를 놓아 주는 건
어쩌다 마주친
아주 오래된 그대
* 첫 사진 밑의 글은 시인의 시
*그거 빼고는 다 쑥언늬 사설과 사진
*오월은 아까비..못 봐주는 꽃이 많은데, 우린 너무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