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미
선운사 절문 앞에 늦도록 앉아 있었네
꽃들은 모두 한 곳을 바라다보고 있었네
죽음이 이미 와 있는 방문 앞보다
더 깊고 짙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꽃들
동백을 홀로 바라본다는 일은
,
큰 산 하나 허물어져 내릴 만큼 고독한 일
어쩌면 기억도 아득한 전생에서부터
늑골 웅숭깊도록 나는 외로웠네
꽃핀 숲보다 숲 그늘이 더 커 외로웠네
하여 봄볕에 흰 낯을 그을리며 나는
선운사 절문 앞에 한 오백 년 죽은 듯이 앉아
동백이 피고 지는 소리를 다 듣고 말았네
큰일 치룬 뒤의 동백숲이
어떻게 마음을 정리하는지를 다 알고 말았네
이제 붉은 피가 돌았던 내 청춘은
이끼 낀 돌담 속에나 묻어둘 테지만
고난이 더할수록 가슴은 설레어
선운사 동백숲에 작은 위안이 지나가네
-오동꽃 피기전, 시인동네-
오래된 절 앞에는
오래된 절만큼이나 붉은 꽃들이
나무가 씹다 버린 껌처럼 따닥따닥 붙어 있다
오기 반 집착 반
한 오백년 버티고 앉아
공기 반 호흡 반
씹고 또 씹으면
붉다 붉어서
불고 불어버린 세월들이
저리 피어 나겠지
이빨 자국 대신
묻은 향기가
바람에 흩어 지겠지
* 사진 위는 시인의 시
* 사진 아래는 쑥언늬 사설
* 사진은 네이버 이미지 통합검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