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바람의 지문

| 조회수 : 792 | 추천수 : 0
작성일 : 2018-09-30 06:40:57

바람의 지문

                 - 이 은규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 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힌다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어진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당신의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 어떤 지문은 기억의 나이테

  그 사이사이에 숨어든 바람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 책장을 넘기던

  당신의 손길과 허공에 이는

  바람의 습기가 만나 새겨졌을 지문


  그 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

  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

  지문에 새겨진

  그 바람의 뜻을 읽어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멀리 있을까

  멀리 와 있을까


   - 문학동네, 『다정한 호칭』중에서




신문물로 이북을 하나 장만하였다


바람이 책장을 넘기지도

또 다른 바람이 책을 덮지도 못한다


다만, 

그사이 

나처럼 묵어 간

내 손가락만이 귀신 들린듯

안 읽은 페이지에서

읽은 페이지로,

다시 첫 장을 찍었다가

종국에는 막장으로 내 달린다


이북도

아침드라마도

사는 것도

결국 다정히 모두 만나는 곳


우리들의 막장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산이좋아^^
    '18.10.1 8:59 AM

    오가며
    가끔은 쉽지않는 고운시
    되새김질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쑥과마눌
    '18.10.2 12:14 AM

    저도 감사^^

  • 2. 공주
    '18.10.1 7:30 PM

    쑥과 마눌님 덕에 줌인줌아웃에 처음 댓글 써 보네요
    요즘 님 시 기다리며 82 엽니다.
    늘 님이 패러디한 아래의 시가 원시보다 더 통찰력있고 촌철살인... 좋아요
    등단해도 되겠습니다. 다수를 위하여....&

  • 쑥과마눌
    '18.10.2 12:23 AM

    좋은 시에 묻어 가서 그런겁니다 ㅎㅎ
    격려 감사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2847 차 안에서 보는 시네마 1 도도/道導 2024.11.24 113 0
22846 아기손 만큼이나 예쁜 2 도도/道導 2024.11.23 320 0
22845 3천원으로 찜기뚜껑이요! 7 오마이캐빈 2024.11.23 1,051 0
22844 대상 무말랭이 8 메이그린 2024.11.21 856 0
22843 금방석 은방석 흙방석 보시고 가실게요 5 토토즐 2024.11.21 914 0
22842 보이는 것은 희망이 아니다 2 도도/道導 2024.11.21 266 0
22841 시장옷 ㅡ마넌 27 호후 2024.11.20 8,006 0
22840 섬이 열리면 2 도도/道導 2024.11.19 499 0
22839 ..... 3 꽃놀이만땅 2024.11.18 1,303 0
22838 머그컵요 4 july 2024.11.18 907 0
22837 민들레 국수와 톡 내용입니다 김장 관련 2 유지니맘 2024.11.17 900 4
22836 사람이 참 대단합니다. 4 도도/道導 2024.11.16 661 0
22835 11월 꽃자랑해요 2 마음 2024.11.16 560 0
22834 목걸이좀 봐주세요.. ㅜㅜ 1 olive。 2024.11.15 1,064 0
22833 은행 자산이 이정도는 6 도도/道導 2024.11.14 1,064 0
22832 특검 거부한 자가 범인이다 2 아이루77 2024.11.14 269 2
22831 새로산 바지주머니에 이런게 들어있는데 뭘까요? 4 스폰지밥 2024.11.13 3,176 0
22830 최종 단계 활성화: EBS 경보! 군대가 대량 체포, 전 세계 .. 허연시인 2024.11.13 318 0
22829 비관은 없다 2 도도/道導 2024.11.13 329 0
22828 현미 벌레 의심 사진 거기 2024.11.13 731 0
22827 레슬레 압력솥 라몬 2024.11.12 348 0
22826 확인된 새로운 인텔 - JulianAssange 허연시인 2024.11.12 257 0
22825 이 브랜드 뭘까요 에코백 2 쏘럭키 2024.11.12 1,191 0
22824 돌아서면 쌓이는 것 2 도도/道導 2024.11.11 417 0
22823 어떤 동행 2 도도/道導 2024.11.10 467 0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