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는 날이었습니다.
너나 없이 잘 모르는 분야를 읽는 바람에
서로 모르는 이야기를 해야 하니
(더구나 성당다니는 골수분자?가 결석한 바람에 )
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이렇게 읽고 나면
다음에 어딘가에서 만나면 좀 더 이해가 되겠지싶은 마음으로
끝까지 읽고 나서
오늘 따라 빵과 떡이 풍성한 자리에서 점심으로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천천히 집까지 걸어왔습니다.
요즘 거의 개그맨 수준으로 놀고 있는 아들이
뒤에서 중얼거리면서 수학 숙제를 하는 바람에
저는 첼로 곡 하나 틀어놓고
(아들이 있는 곳에서 소설을 읽거나 집중하는 일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서)
조선 중기 그림을 보고 있는 중이지요.
지난 번에는 방각본 살인 사건덕분에 조선 후기 그림을 보았는데
그저께 부터는 허균 최후의 19일을 보는 중
두 명의 화가가 나오네요.
이정과 이징인데
이정은 허균과 깊은 우정을 나눈
그림의 천재이자 요절한 화가로 나오고
이징은 이정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이정이 죽고 나서는
당대의 화가로 주목받았지만
이정의 그림자에 시달리는 인물로 나옵니다.

이 그림은 이정의 문월(달에게 묻는다)이란 그림입니다.
그는 조선 최고의 묵죽화가라고 칭송받았다고 하더군요.
우리 그림을 찾을 때마다 아쉬운 것은 서양화를 찾을 때처럼
제대로 화가에 대한 그림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인데요
누군가가 이 작업을 하면 일반인들이 우리 그림에 대한
애정을 조금이라도 더 키울 수 있는 바탕이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묵죽화를 검색하니 조선 시대 삼대 묵죽화가라고
이정외에도 신위와 유덕장이 소개가 되네요.

이 그림은 신위의 묵죽화입니다.


이 두 묵죽도 역시 신위의 작품인데요
위의 그림은 조선시대의 색상이라고 보기엔 상당한
파격이지요?


이 두 그림은 이정의 작품입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상좌이고
아버지,작은 아버지도 화가이며 그 자신도 화가이니
3대가 화가집안인 셈이로군요.

이 그림은 이징의 작품입니다.
그는 보수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지키면서
작품 활동을 했고
무시무시한 노력을 그림에 쏟은 화가라고도 합니다.

이 그림은 이정의 작은 아버지인 이흥효의 그림이네요.
그는 형이 일찍 죽자 조카를 데려다가 키우면서
그림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황집중의 포도 그림입니다.

어몽룡의 매화,황집중의 포도
그리고 이정의 대나무
이렇게 세 사람의 그림을 묶어서 소개하는 글이 많고
그래서 세 사람이 조선중기의 3절이라고 불렸다고 하는군요.

이징의 이금산수도입니다.

이상좌의 송하보월도를 찾았습니다.
이 그림은 미술책에도 자주 나오는 작품이지요.
수학숙제를 끝낸 아들이
이제는 티브이를 크게 틀어놓고
취미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산만하여 더 이상 그림 보는 일을 하기가 어렵네요.
외부상황에 관계없이 마음이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날이 가능할까 한숨이 나오는군요.
인터넷을 닫기 전에 유적장의 묵죽을 찾아보려고
검색을 하니 유덕장의 그림은 못 찾았지만
다른 그림을 상당히 많이 확보해서 올려놓은 싸이트를 만났습니다.

정선의 탁족도로군요.

드디어 찾았습니다.
유적장의 설죽도인데요 느낌이 사뭇 강렬한 그림이네요.

이경윤의 송하취면도입니다.
그림속으로 빨려들어가 저도 한잠 자고 싶군요.
여유 있을 때 이 곳에 다시 들어와
한 점 한 점 구경을 해야 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