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산골편지 -- 까마귀야, 까마귀야~~

| 조회수 : 1,675 | 추천수 : 21
작성일 : 2004-06-15 06:05:48
비가 온다.
여느 곳이나 비가 오면 습하고 끈적 끈적하여 군불을 지피고 싶어진다.

우리 '전설의 고향 세트장'에는 군불때는 방이 하나 있다.
4식구 오밀 조밀 누우면 다른 것은 끼어들 공간이 없는 작은 흙방
군불땔 수 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도록 고마워 이사와서 어찌나 애용을 했는지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구들이 다 내려 앉은 것. 아직껏 수리를 못하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다.

*****************************************

작년에는 못본 것 같은데 올해는 까마귀가 무척 많아졌다. 성대로 존재를 알리려 하더니 이제는 시선까지 끌려고 기를 쓴다. 관심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옛부터 까마귀는 기분좋은 새가 아니었다기에 나의 고정관념도 같은 맥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텃밭에 있는 새로 산 파쇄기(퇴비용 나무 파쇄하는 기계) 위에 앉아 고함을 질러대기에 오늘은 돌을 던졌다.

날아가는 까마귀 입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가까이 가보았더니 퇴비장의 음식물쓰레기를 입에 물고가다 떨어뜨린 거였다. 이내 돌 휘두른 걸 후회했다.

지도 먹고 살려고 물고가는 것을 쓸데없는 선입견이 생명의 먹이를 빼앗았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에 있는 어린 새끼에게 줄 것은 아니었는지, 늙은 어머니께 드리려고 했는데 부랴 부랴 먹이던지고 빈 손으로 간 것은 아닌지......

다음에 까마귀를 만났을 때 큰 소리로 말했다.
"까마귀야, 어서 와 먹이가져가. 오늘은 물고 가기 쉽게 잘 펴두었어"
"오늘은 왜 그리 슬피우니? 새끼라도 아프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아니고?"
그런 후로는 까마귀가 싫지 않다. 마음 하나 돌려먹기는 어려운 게 아닌 듯하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마음을 다시 돌려 먹을 일이 생겼다.
닭사료와 개사료 올려 놓는 곳에 자꾸 사료가 쏟아져 있기에 주어담기를 며칠 했다. 그러더니 강도가 심해져 아예 새사료 봉투 3개를 다 갈기 갈기...............
그 때까지도 주범이 '까씨'라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서씨'만 의심했다.
급기야 오늘 현장을 목격했다. 사료통, 봉투가 땅에 엎드려 있고 까씨는 갈길로 가고........

종자 봉투도 다 뜯어 모래알만한 각종 종자 등이 땅에 드러누워 서로 섞여 놀고 있었다.
사료담고, 흙고물 묻은 종자 주워 담는데 반나절을 반납해야 했다.

화를 삭히려 장독대에 가려니 작물에 병나면 쓰려고 계란껍질을 겨우내 모았는데 온통 땅에 조각을 내 못쓰게 만들었다.
일이 이쯤되고 보면 자연사랑이고 생명사랑이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동네 어르신께 사정얘기를 했더니 덫을 놓으란다.

덫?!
그럼 잡은 놈은?
그래도 생명이 있는 것을 어찌!

결국 다 포기하고 '기습품(?)'을 단속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퇴비장도 흙으로 대충 덮었다.
그래도 몇 날을 와서 울고 일을 저지르더니 요즘은 통 보이질 않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어디서 비를 피하는지 마음이 쓰인다.

*************************************

잠자리, 나비, 매미, 새 등 제 자리에서 산골을 지키는 것들이 비가 쏟아지면 어디로 가는지 나보다 먼저 비를 피해 산골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비오는 소리만이 땅 위에 엎어질 뿐
그러다 반짝 비가 개이고 해님이 대지를 덮으면 그것들이 나보다 먼저 나타나 비설거지를 한다.
산골에서는 내가 제일 게으름뱅이다.



2001년 7월 8일 일요일 불영계곡따라 마음을 흔들며 성당다녀와서
배동분 소피아
(사진은 어느 겨울 산골아가들이 군불을 지피는 모습)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싱아
    '04.6.15 9:01 AM

    지난주 불영계곡을 지나 울진을 다녀왔답니다.
    어디쯤 하늘마음이 있을까 생각했지요.
    태풍피해가 너무 심하던데 농장엔 아무 피해가 없으셨는지요?
    불영계곡의 아름다운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황토아궁이가 넘 마음에 드네요.

  • 2. 하늘마음
    '04.6.16 9:17 AM

    그러셨군요.
    태풍피해가 대단했어요.
    올해는 더 심하다고 하여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군불때는 방이 자꾸 흙이 무너져 보수를 했는데 너무 오래된 집이라 한계가 있나봅니다.

    올해 다시 보수를 해서라도 복구를 하려구요.

    날이 아주 덥습니다.
    건강하시구요.

    평화를 빕니다.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530 멸치 맘껏 퍼 가세요 4 갯마을농장 2004.06.11 2,148 35
529 요새가 밴댕이 철이라네요..... 19 orange 2004.06.11 4,079 25
528 수박 구경들 하세요~ 12 파랑비-♡ 2004.06.11 2,256 16
527 올드보이 2(펌) 15 프림커피 2004.06.11 3,313 370
526 [펌] 이런 거 하나쯤 있음 얼마나 좋을까요? 4 딸기향기 2004.06.11 2,443 40
525 시간이....자꾸 흘러갑니다. 5 때찌때찌 2004.06.11 2,111 46
524 엔지니어님의 노랠 들으며 .. 3 나니요 2004.06.11 1,737 14
523 숯을 담은 그릇? 10 아모로소215 2004.06.11 2,605 27
522 안녕하세요... 12 카이머 2004.06.11 2,184 18
521 여름이 올 무렵 10 강금희 2004.06.11 1,977 17
520 아이들 중고 옷가게At Toronto 16 tazo 2004.06.11 3,983 16
519 봄날이 지나갈 무렵에... 6 숲속 2004.06.11 1,704 15
518 Can't take eyes off you- 11 푸우 2004.06.11 2,122 19
517 요즘 내 얘기.....ㅠㅠ 25 jasmine 2004.06.11 3,005 22
516 82cook 없는게 없네요..정말 좋아요.. 3 수빈마미 2004.06.11 1,839 24
515 돌 한복 좀 골라주세요. 12 애기똥풀 2004.06.11 1,953 19
514 촌놈집의 매실 액기스 5 갯마을농장 2004.06.10 2,093 18
513 지난여름 빠리에서 6 이윤정 2004.06.10 2,418 58
512 가입인사로 비싼 백일사진공개합니다 7 아지매 2004.06.10 2,246 15
511 남편의 아가 재우기...(기저귀소년) 26 쑥쑥맘 2004.06.10 2,528 20
510 [뮤비] 김혜경 선생님 74 분홍줌마 2004.06.10 5,132 202
509 울천사덜이에요, 이쁘게 봐주세요^^ 8 커피앤드 2004.06.10 2,224 45
508 앵두와 함께 첫인사... 16 숲속 2004.06.10 2,057 49
507 82쿡 여름호,,,, 드뎌 나왔어요..^.^ 41 꾸득꾸득 2004.06.10 2,664 29
506 잡지꽂이 18 아모로소215 2004.06.10 2,34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