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벼르고 별러왔던 땅끝 일출을 잡기 위해
어둠이 가시지 않은 미명에 집을 나서
땅끝 가까이 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송호리해수욕장을 지나 땅끝관광호텔을 지나는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부터
차들이 길 양쪽으로 뻑뻑이 주차해
겨우 중앙선을 밟으면서 땅끝관광호벨 입구까지는 간신히 지나갔습니다.
아직은 땅끝이 한참 남은
관광호텔 고개를 넘어 10여m 내려가니
아예 왕복 2차선 도로게 3줄로 늘어서 주차한 차들로
더 이상 나갈 수 없어
중간에 돌아가는 차가 빠진 곳에 차를 주차하고서는
땅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어어...
어렵게 차를 주차하고
땅끝을 향해 내라막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저 아래 보이는 바다 멀리 해가 새해 첫 인사를 하느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어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뜨지 못하게
바닷물속으로 눌러 나오지 못하게 할 수도 없고...
서둘러 조금 내려가니 마침 전망대가 있어
조금은 늦었지만 방긋거리는 해를 잡으 수 있었습니다.
혹시 땅끝 관광을 가시려거든
절대 년 먈-년 시를 피해
2월과 11월 22~26일로 날을 잡으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오늘 아침 땅끝은 수km의 도로가 길다란 주차장으로 변해
돌아가는 차들은 몆 시간씩을 기다려야 하는 고생들을 하셨습니다.
수 십 명의 경찰이 나와 교통정리를 하는데도 교통이 마비되어
결국에는 경찰들도 손을 드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땅끝관광의 백미는
돌섬 사이로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으로
2월과 11월 20~27일 사이
일 면에 두 번 있는 기회를 찾으시면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 때는 찾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교통이나 숙박도 어렵지 않으며
카메라에 일출광경을 담으신다면
전국 최고의 명작을 얻으시게 됩니다.
또 년 말 년시에 땅끝을 찾으시더라도
절대 절대 전망대 오르는 도로에 차를 주차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보니
전망대에서 나오는 차들을 가장 늦게 빼주어
다른 도로와 지역의 차를 우선적으로 빼고
가장 늦게 빼주어
기다림의 지루함으로 속 깨나 상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농부의 여정은
땅끝을 거쳐
달마산 미황사를 두루 셥렵한 후에
16년 만인가?
17년 만인가?
다시 고정희시인의 생가를 찾아
에전가 조금 달라진 실내를 두루 살펴 본 후
시인이 잠들어 있는 묘역을 돌아도는 것으로 마쳤습니다.
오늘
오랫만에 다시 찾은 시인의 생가는
실내 전시가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눈에 띄었으며
전시가 세밀하고 짜임이 있었으며
작품이 늘고 다향해졌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고정희시인의 생가를 가다**
농부가 처음 고정희시인의 생가를 찾았던 때가
2008년 5월 3일 이었습니다.
시인의 생가가 있는 마을 근처 논에
자운영 붉은 꽃이 서럽도록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2014년 첫 날인 1월 1일
다시 찾은 시인의 생가는 예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토방에 서서 마루의 밀창문을 열고 들여다 본 실내 전시실은
어딘지 모르게 예전과 달라져 있었습니다.
사진에서 왼쪽 입구
시인이 사용하던 침실로 들어가는 문은 폐쇄되었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바닥의 액자들이 새롭게 방문객을 맞았습니다.
책이 가득한 책장들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장식장도 예전에는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시인의 사진들도 많이 는 것 같습니다.
시를 사랑하고
시와 결혼한 여인
우리시대를 시인만큼 아름답고 멋지게 살다 간 여인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나이로는 농부의 선배가 되는 시인
시인과는 일면식이 없는 농부지만
언제부턴가 고인이 된 시인을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한창 정열적인 삶을 살아갈 나이에
문제의 등반과
등반에서 실족하 않았더라면 더욱 커다란 족적을 남겼을 시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고 애석한 것은
타고난 끼와 능력을 미쳐 다 보여주지 못한 채 떠난 아쉬움 때문입니다.
시인이 영원히 잠든 유택을 마무리하고 심었던 동백나무는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저 자리에 보이지 않습니다.
시인의 오른편에 계신분 누구신지 다 아시죠?
시인이 생전 사용하던 책상의 전시도 예전과 달라진 것 같고
시인의 육필원고도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 글을 보시는 분들 가운데는
혹시 시인의 지인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의 생가를 찾는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펼쳐진 방명록 가장 웃부분은
2013. 12. 23일 이었습니다.
그만큼 시인을 추억하며 그리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책장에 놓여진 달러화도 예전에는 없었는데
전시실 한켠에는 생전에 시인의 손길을 탔던 악기가 케이스에서 혼자 잠이 들고
언제 누군가의 손길에 다시 울음을 울 날이 있을까요?
생전에 시인이 사용하던 전축은 소리를 멈춘 채 침묵을 지키는데
턴테이블에는 16인치 L.P레코드가 주인을 잃은 채 잠들어 있습니다.
시인이 즐겨 듣던 레코드가 들어 줄 사람을 잃은 채 멈추어 있습니다.
시인이 애용하던 모자를 지금은 자기가 애용하고
전시실 바닥에는 액자가 가득합니다.
시인의 좌우명
전시실에는 시인의 좌우명이 세 곳에 있어
생전 시인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이 잠들어 있는 유택은
적송림 아래 해가 지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묘를 둘러싸고 있는 화강암 돌판 앞부분 3 개가
틈이 벌어지고 앞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습니다.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시인의 묘지 앞에는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너머 멀리 보이는 산자락 아래에
시인과 같은 시대를 살다가 일찌기 요절한
저항시인 김남주시인의 생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