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이런글 저런질문

즐거운 수다,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

저 살아 있어요

| 조회수 : 2,289 | 추천수 : 3
작성일 : 2005-10-02 09:30:01
지난주에 시어머님께서 척추수술하시느라 우리들병원에 입원하셨어요.
딸년 아들놈들은 여적지 한두 번 정도 다녀갔는데
외며느리인 저는 매일 수원에서 청담동을 오가고 있답니다.
오늘은 남편 성묘 보내고
지하실에 양수기 걸어놓고 잠시 시간이 나길래
정말 오랜만에 출근했더니 너무 달라져서 놀랐어요.

좀 아까 시어머님께 좀 늦겠다고 전화를 걸면서 내심,
그럼 오늘은 오지 말아라, 하셨으면 하고 기대했는데
늦게 와도 괜찮다고 하시는군요. ㅠ.ㅠ
모시고 살지도 않으니 이럴 때라도 충성해야지 싶어서
며칠간 사생활 접고 부지런히 오가고 있는 중입니다.

덕분에 전철 안에서 자주 만나는 친구들에게 실없는 문자를 날리기도 하고,
그동안 돌아보지도 않은 시집을 몇 권씩 읽으니 오히려 좋으네요.
심금을 울리는 시는 따로 접어두었다가
예쁜 시첩에 따로 정리해두고 있는데 정말 좋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는데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를 읽으며
나이가 들수록 달리 해석되어지는 그 시심의 깊이에 경탄을 금치 못하기도 하고,
십여 년 전에 어느 시인이 "강금희 도반"이라고 사인을 해서 보내주신 시집을 읽다가
보잘것없는 나에게 도반으라 대우해주신 그분에게
나는 과연 안부를 여쭌 지 얼마나 되었는가 화들짝 놀라 전화를 드려보기도 했답니다.

어머님 퇴원하시면 당분간 거동이 불편하셔서
침대 안 쓰는 며느리집에는 못 오시고
장가 못 간 노총각 둘째아들 집에 계시기도 힘들고 하여
어머니 친구분 아들이 하는 정형외과병원으로 가신다 합니다.
다른 친구분도 현재 그 병원에 장기입원중이시고
병원비는 나중에 간단하게 사례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누만요.

어느 아들 집으로 가시든 제 손길이 필요하실 터이니,
아마 이번 주말, 모임 때문에 이틀간 집을 비워야 하는 며느리를 배려해서 내린 결정일 겁니다.
한 20여 년 섬기고 살았으니
뭐라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분 속내를 알 수 있게 되었지요.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은
때로 주책 때문에 젊은이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도 하지만
타인을 위한 배려나 희생정신은
우리 젊은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서 무수히 많이 봅니다.

그동안 저는 보지도 못한 쪽지에 답이 없다고 투정하시는 분도 계시고
벌써 여러 날 전에 온 질문쪽지도 있고
하도 여러 페이지가 넘어가는 바람에 다 읽는 건 아예 포기...

제게 쪽지 보내셨다가 답 없어서 속상하신 분 계시면
양해해 달라는 간단한 인사를 하러 들왔다가 또 이리 길어졌습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느느니 수다뿐....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수국
    '05.10.2 9:49 AM

    정말 애 많이 쓰시고 계셨네요

    "때로 주책 때문에 젊은이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도 하지만"
    이 부분은 제가 나이들면 제발 하지 말아야지 하는 부분이구요

    "타인을 위한 배려나 희생정신은
    우리 젊은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이 부분은 내가 인생 마칠때까지 가지고 갔으면 하는 맘입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2. kAriNsA
    '05.10.2 11:26 AM

    고생많으세요..에고공...

  • 3. 김혜경
    '05.10.2 11:17 AM

    어르신이 편찮으시면...가족들이 힘들죠?
    그래도 강금희님은 참 잘하시네요..좋은 며느리세요...

  • 4. 달고나
    '05.10.2 2:28 PM

    애정이 넘치는 분 같아요.수고 많으시네요.

  • 5. 청파댁
    '05.10.2 2:39 PM

    님께 박수 보내요....

  • 6. 은하수
    '05.10.2 3:51 PM

    님! 애 많이 쓰셨어요. 앞으로 행복한 날들만 있으면 좋겠네요.

  • 7. 6층맘
    '05.10.2 4:26 PM

    강금희님!
    우리집 베란다의 목화를 볼 때마다 생각나던 님이었는데 오랫만에 소식나눕니다.
    어머님 병간호에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힘내시고 어머님께서 잘 회복되시길 빕니다.

  • 8. 예술이
    '05.10.2 6:16 PM

    반가워요. 애쓰시네요.
    간호하는 사람이 더 힘드는건데 금희님 건강도 잘 챙기시고 어머님도 빨리 회복되시기 바래요 .

  • 9. 카라
    '05.10.2 10:22 PM

    저의 친정어머님도 척추수술을 크게 하셨어요 8월에...
    그래서 10일간의 여름휴가도 반납하며 충성...이후에도 퇴근후 충성..
    우리집 며느리들은 직장다닌다고 주말에 잠깐 얼굴도장만 찍고 가는데...
    강금희님..
    좋은 며느리시네요
    무척 힘드실텐데...힘내세요...전화 목소리만큼 씩씩하게만 하시면 힘든거 잊어가며 가슴으로
    어머님을 간병하시게 될거예요
    날씨가 낮에는 엄청 덥던데 저녁되니 무척 쌀쌀해지네요
    건강도 챙겨 가면서 ..., 화이팅

  • 10. 갯바람
    '05.10.3 1:20 AM

    애독자입니다. 마음 씀씀이에 흐뭇한 미소를 번지게 하군요

  • 11. 빠끄미
    '05.10.3 12:43 AM

    저희집에서 친정집가는길에 우리들병원을 항상 지나가거든요..
    갈때마다 한번씩 더 쳐다보고 갈거같네요...혹시 강금희님이 계실까..하는마음에....^^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12843 코스트코 이용해 보고 싶어요 (상품권구매요청~) 단풍 2005.10.03 751 4
12842 밤에 별구경할수있는 여행지 추천좀 해주세요 2 쌍둥맘 2005.10.03 2,308 12
12841 시댁식구들끼리 여행가려고 하는데 자두공주 2005.10.03 818 5
12840 분당에서 토마스 관련제품은 어디 팔죠? 3 웃음의 여왕 2005.10.02 877 27
12839 좀 갈켜주세요 .. 1 핑핑이 2005.10.02 736 10
12838 파워콤?컴? 이 뭐..예요? 6 보노보노=3 2005.10.02 1,069 1
12837 혹시 메가패스 사용하시는분...전화받으셨나요 7 물빛 2005.10.02 1,413 5
12836 영어로 번역좀 해주세요....꼭부탁드릴께요 1 한시월 2005.10.02 912 2
12835 집에서 어떤 운동기구 많이 쓰세요? 1 행복한 가을 2005.10.02 928 9
12834 족탕기와 각탕기 어느쪽이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좋을가요 3 honey yoon 2005.10.02 999 12
12833 저 살아 있어요 11 강금희 2005.10.02 2,289 3
12832 가을에 읽을 만한 책.(추천해주세요) 6 초록잎 2005.10.02 1,243 14
12831 영혼의 동반자 추천해주신분 1 이인선 2005.10.02 758 5
12830 자동 로그인.. 2 텔~ 2005.10.02 656 2
12829 왼쪽 겨드랑이 밑이 아파요 2 기적 2005.10.01 4,121 2
12828 홈피가 바뀌었네요... 1 애교짱 2005.10.01 1,056 25
12827 저한테 코스트코 상품권 요청하신 분들이요...^^ 5 또이엄마 2005.10.01 4,699 63
12826 한 달을 기다려서 소아치과에 가야할까요? 5 커피러버 2005.10.01 1,646 5
12825 부산...부담없이 오래앉아 식사할수있는곳이요...추천바래요. 1 초록잎 2005.10.01 835 21
12824 초고속 인터넷 파워콤으로 바꿨어요. 2 watchers 2005.10.01 1,180 2
12823 코스트코 양재점 오늘 가시는분~~~ 도와주세요~~ 2 최지연 2005.10.01 1,057 5
12822 아까운 택배비.. 라일락 2005.10.01 1,112 1
12821 82가 저절로 로그아웃되요... 1 영맘 2005.10.01 1,238 80
12820 스폰지밥 극장판 상영하는 곳 아세요? 2 김수열 2005.10.01 759 3
12819 목화솜 이불과 요 재활용 방법 6 완두콩 2005.10.01 14,85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