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와 주말마다 집안일을 취미 삼아 '연구'하고 있는 엔지니어 남편의 살림기를 자랑 반, 하소연 반으로 올려봐요.
본업인 엔지니어 마인드를 집안일에 고스란히 쏟아붓는데 이 정도면 '살림 고수' 인정해줘도 될까요?
남편에게 주방은 조리실이 아니라 '실험실'인것 같아요. 처음엔 백종원 유튜브 레시피로 입문하더니, 어느새 82쿡을 섭렵하며 어간장, 연두, 홍게간장 같은 핫한 아이템들을 귀신같이 찾아내더군요.
매년 테마를 정해 '아이템'을 공략합니다. 작년엔 파스타, 올해는 스테이크와 생선 굽기예요. 최적의 마이아르 반응을 찾겠다며 온도와 수분 값을 체크하고 맛을 분석합니다. 한때 요리 장비병에 빠진 적도 있어요. 스테이크엔 스텐 팬이 찰떡이라며 냄비를 싹 바꾸고, 칼도 중식도부터 용도별로 수집하네요.한때 취미가 칼갈이인적도 있었구요.
맛집에 가면 단순히 즐기는 게 아니라, 성분을 분석해 집에서 맛을 재현(리버스 엔지니어링)해내는 게 주된 재미래요.
호캉스 여행을 가도 남편의 레이더는 쉬지 않네요. 호텔 침구나 세정제를 유심히 봐뒀다가 꼭 집에서 써봅니다. 신혼여행 당시 방콕 페닌슐라 호텔 토퍼에 꽂히더니, 결국 직구로 똑같은 환경을 구축하고 테스트까지 끝냈어요. 덕분에 저희 집 침실은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안락함을 자랑해요. 청소와 빨래도 그냥 닦고 너는 게 아닙니다.
가장 효율적인 이동 동선을 설계하고, 오염도에 따른 세제 조합을 연구하며 본인이 만족하는 결과값이 나올 때까지 파고드네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이 사람, 전업주부로 맡겨도 되겠다" 는 확신이 드는 한편, 나는 나중에 은퇴하면 가정에서 무슨 일을 해야하나 생각도 들구요. 엔지니어가 살림에 꽂히면 생기는 이 현상, 저희 집만 이런 걸까요?
다른 분들 집엔 어떤 '전문가'가 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