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어린시절 보내신분들이요
태어나길 응팔 정봉이네 집 이상되는
동네에서 제일부자집이었거나
아예 평창동 성북동같은 부자동네에서
자랐는데 성인되면서 가세가 기울거나
결혼 이후 내리막길 경험하신분들이요
내삶에서 그런 유년기라도 있어서 다행이고
그게 살면서 힘의 원천이 되시나요
그리고 그런 삶의 굴곡이 사주에도 나오나요
7080년대 어린시절 보내신분들이요
태어나길 응팔 정봉이네 집 이상되는
동네에서 제일부자집이었거나
아예 평창동 성북동같은 부자동네에서
자랐는데 성인되면서 가세가 기울거나
결혼 이후 내리막길 경험하신분들이요
내삶에서 그런 유년기라도 있어서 다행이고
그게 살면서 힘의 원천이 되시나요
그리고 그런 삶의 굴곡이 사주에도 나오나요
젊었을 때 옷 철철이 사고, 외식 펑펑하던
엄마 지인들
집을 완전 작은 집으로 가거나 돈 아까와서 뭐 못하세요.
씀씀이의 끝은 있거든요.
결혼후 경제력 문제로 이혼. 나름 취업해서 경제력 독립, 상속 받아 잘 살고 있ㅅ습니다
똥 밟은 거죠
결혼후 경제력 문제로 이혼. 나름 취업해서 경제력 독립, 상속 받아 잘 살고 있ㅅ습니다
부럽습니다
초등때 반에서 제일 잘 사는 정도였는데
집에 피아노, 소니 티비 비디오, 일해주는 이모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생일엔 반아이들 전부 초대함
그러다 내세울거 하나 없는 중소기업 다니는 가난한 사람과 연애해서 친구들도 많이 못부르고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알뜰살뜰 살다가 친정 도움 좀 받아 서울에 집 사고
남편도 서울로 이직을 잘하더니 대기업에서 승승장구
50대인 지금은 어릴때만큼은 풍족히 살아지네요
이런게 팔자인가 생각해요
딱, 정봉이네 같은 집에서
나름 거버이유식, 허쉬코코아 먹고
기사 딸린 자가용 타다
초6때 아빠 사업 망하고 엄마 도망가고
망한 아빠랑 단칸방에서 3남매 자랐어요
망한집 코스대로
못사는동네로 이사가니 당연히 전학가서 적응하느라 무지 고생했고
중학교 학비 못내 맨날 방송으로 서무과로 불려 다녔죠
대학이고 나발이고 아빠가 실업계 가라해서
실업계 수석입학하고 장학금 받아 등록금 다 해결하고
담임이 안쓰럽게 생각해 시에서주는 장학금까지 받게 해 줘서 제 생활비로 썼어요.
짱짱한데 취업해 사내결혼하고 아이둘 낳고 잘 삽니다
소비패턴 질문하셨는데
원래 물욕이 없는 사람이라 차이는 모르겠고
없어서 못사는것과 안사고 싶어 안사는 차이는 있겠죠
어차피 경제력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우선순위를정해 소비할뿐입니다
어릴적 기억은 그냥 에피소드 일뿐
그이상 그이하도 없어요
호롱불 켜고 자란 가난했던 남편의 어린시절의 기억도
그냥 동화속 같아요
둘이 얘기하면서 깔깔깔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
제가 살면서 느낀 진리는요? (아이들에게 엄청 강조합니다 )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젊은친구에게는
도와주려는 좋은 어른이 붙는다는겁니다
과거에 붙잡히면 앞으로 못 나가잖아요
꼭 70년대 80년대는 아니더라도
부자였다 가정이 기울면 다 그 형편대로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게 되는것 같네요
옛날에 문중이 형성된 마을의 양반들 자손들이나 후손들이 지금도 다 잘먹고 잘사는것도 아니고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시골 촌부 아낙네들이 되어서 그곳에서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농사짓고 사는 6시 내고향에 나오는 그런 모습들이에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때는 조상들이 다 한자리 한 사람들이 많아요. 세월따라 가세가 기울면 그 형편내에서 살아가는것이라 생각되네요.
직접적으로 몸으로 부자에서 가난을(가난도 각자가 생각하는 가난은 다르지만)체험했다면 처음엔 정신이 아찔해질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은 몸의 적응이 빨라서...금방 또 적응하지용
60년대부터 기사 두고 자가용 끌던 집에서 자라
결혼했는데 남편 하는 일이 계속 잘 안되어
가세가 기운 집이 되었어요. ㅎㅎ
남편이나 저나 어릴때, 젊을때 아빠들 덕분에 잘 지내봤으니
지금 이렇게 살아도 별로 아쉽지않아요.
나도 해봤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남들도 안부럽고요.
그냥 지금 하는 일 열심히 하다가 가면 된다 하고 삽니다.
70년대 80년대는 아니더라도
부자였다 가정이 기울면 다 그 형편대로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게 되는것 같네요
옛날에 문중이 형성된 마을의 양반들 자손들이나 후손들이 지금도 다 잘먹고 잘사는것도 아니고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시골 촌부 아낙네들이 되어서 그곳에서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농사짓고 사는 6시 내고향에 나오는 그런 모습들이에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때는 조상들이 무과나 문과로 작은 직이라고 한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세월따라 가세가 기울면 기우는대로 그 형편내에서 살아가는것이라 생각되네요.
전쟁으로 가장이 기울면 현타가 오겠지만 또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게 되고요
직접적으로 몸으로 부자에서 가난을(가난도 각자가 생각하는 가난은 다르지만)체험했다면 처음엔 정신이 아찔해질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은 몸의 적응이 빨라서...금방 또 적응하지용
기름보일러 아무리 돌려도 추웠고 에어컨 없어 덥게 살던 시절이라 지금이 삶의질이 올라갔어요
경제적으로 좀 힘들지만 뭔가 모르는 여유가 있고 독서와 클래식으로 치유받고 있어요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대신 자유와 마음의 평화로 그럭저럭 만족합니다 뭐 어쩌겠어요 타의와 자의 반반으로 주저앉아서 남탓할 것도 없어요
저불렀나요. 성북동 부촌살다 빈촌이사갔네요 가장 예민했던 중2에. 그래서 돈에대한 상처가 있어요. 집이나 차를사도 다음엔 더 나은걸 구매할 능력이 안되어서 급을 낮춰야할 위험이 있는 선택을 안해요. 그게 너무 뼈저리게 아픈기억이어서. 그런데 정말 생애초기 경험이 어디 안가는 사람들이 친해지고 나중에 하는 얘기가 되게부잔줄 알았대요. 명품도 안들고 안꾸미도 가성비 좋아하는데 있는집앤줄알았단 소리 많이 들었어요. 빈촌 이사갔던 기억이 각인되어서 뭔가 가난을 상징하는 행동이나 꾸미기 같은걸 무의식적으로 안하려고 하는거 같아요. 지금은 보통으로 살아서 부유했던 유년기가 감사해요.
지방유지였고 장남이라고 재산 독차지했지지만 일평생 사치와 방탕으로 가세가 기운 친척집
며느리들이 요양보호사랑 간호조무사하세요
형편에 맞게 눈 낮춰야지 어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