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사라져 가는 게 너무 아쉽네요. 24시간의 훌륭한 설비가 있는 컴컴한 요즘 목욕탕 저에게는 다 별로예요. 새벽부터 열고 초저녁에 일찍 닫는 환하고 한적한 수십년된 목욕탕이 좋아요. 여기저기 맞춤법 살짝 옛스러운 주인장의 안전 경고장이 붙어 있는 곳 말이죠.
동네에 있던 옛날 목욕탕이 모두 재개발로 문을 닫고 없어진 후 옆 동네에 하나 있다는 걸 알고 부지런히 갔어요. 머리 하얀 여주인께서 장식은 낡았지만 관리를 잘 하시고 계시더군요. 세신사분들도 아주 베테랑이세요.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 몰랐다 하니 이제 규모가 작은 목욕탕은 다 없어지는 추세라고 여기도 50년이 좀 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옛날엔 지하수가 나와 운영할 수 있는 곳만 목욕탕이 허가가 됐다네요. 지금도 냉탕은 지하수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제 나이 드신 분들 외에는 잘 찾지 않는 곳이라 사람이 많아도 7,8명이 넘지 않아요. 어떤 때에는 2,3명이 할 때도 있지요. 지금은 주로 사우나와 세신 서비스를 받으러 가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목욕탕이 정말 바글바글 했던 기억이 있어요. 곳곳에 세숫대야에 아이들을 앉혀 놓고 목욕을 시키는 어머니들, 때를 벅벅 미는 탓에 아프다는 어린아이들의 울음 소리, 다 큰 7,8세 남자 어린이를 여탕에 데리고 오는 분도 계셨고요. 자리를 잡기 위해 거의 이전투구를 해야했던 상황이었을 때도 있었죠. 처음 보는 옆 사람들과 서로 등을 밀어주는 일도 다반사였어요. 아마도 아파트 보다는 거의 우풍이 센 주택이 대세였던 시절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적은 탓도 있었고 샤워시설이 있다 해도 모두가 때를 불려서 밀어내야 한다는 인식도 강했던 것 같아요. 목욕을 하고 나면 엄마가 바나나 우유를 사 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추운 겨울 목욕탕을 나서면 머리카락이 고드름처럼 얼던 기억도 있고요. 친구와 목욕탕을 나오면서 구멍가게에서 크라운 산도를 사 먹는 데 텔레비전에서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방송을 하고 있던 순간이 떠 올라요.
요즘엔 세신사님에게 맡길 이태리 타울과 샤워타울 한장만 달랑 들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위해 가지만 어릴 때는 샴푸, 린스, 오일, 로션 빗, 수건 모든 장비를 다 챙겨서 전투 나가듯이 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 때는 하고 나면 개운했던 치열한 삶의 일부였던 그 곳이 지금은 주관적으로는 매우 힐링이 되는 럭셔리한 장소가 되었어요.
한국 사람 별로 없는 외국에서 살 때 가장 그리운 것 중 하나가 찌뿌둥할 때 가고 싶은 이 목욕탕과 담이 결릴 때 침 한방이었답니다. 오랜만에 정겨운 목욕탕을 알아내고서는 주절주절 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