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강릉에 다녀왔어요.
저는 신자가 아니지만 초당성당에 가고 싶어서 미사시간에 맞춰 갔어요.
초당성당은 원형으로 지어졌고,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설계 되어 환하더라구요.
제대 오른쪽으로 성가대가 자리했고, 그 맞은편에 앉아서 미사를 드렸어요.
공간이 원형이라 그런건지 성가의 울림이 온 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어요.
신부님 강론도 굉장히 좋았고요.
미사를 드리고 근처 텐동집에서 맛난 점심 먹고, 명주동으로 갔어요.
명주동은 그라피티가 있다는 기사를 어디서 봤기에 그걸 보러 간거였는데 못 찾고, 그냥 골목길을 어슬렁 걸었죠. 걷다가 대도호부관아 관아 구경도 잠시 하고, 길 건너 임당동 성당이 보이길래 갔지요. 성당 문이 닫혀 있는데 안에서 아름다운 성가가 흘러나오길래 문 앞에서서 들었어요.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 따라 들어갔는데, 성당 2층에서 성가대가 연습을 하고 있는것 같더라구요. 자리에 앉아서 잠시 들었지요.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신자는 아니지만 은총이라고 해야할지 커다란 사랑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커피가 필요한 시간이 되어 다시 이동을 했지요.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하다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에 가기로 했어요.
대기가 꽤 있더라구요. 어쩔까 저쩔까 다시 고민하다 기다리기로 했어요.
4,50분은 기다린것 같아요. 벽에 박이추 선생 신문 인터뷰 기사가 있길래 유심히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기사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인생의 커피’가 뭐냐고 묻자 박 대표는 활짝 웃더니 ‘보헤미안 믹스’라고 했다. 자신이 만든 커피다. 콜롬비아, 브라질, 과테말라, 케냐 네가지를 섞어 만든 이 커피는 진하면서 부드럽다. “화려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고 할까요. 참 불쌍한 커피야 진짜. 하지만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어버릴 수가 없는 커피죠.”
인생의 커피가 불쌍한 커피라니, 그런 커피는 대체 어떤 커피일까 상상하게 했죠.
그 때 마침 카페 문이 열리고 한무리의 일행이 나오고 있었어요. 그 중 중년의 남자가 "에잇, 초심을 잃었네."라며 카페에 자리가 나오길 기다리는 손님들이 다 들리게끔 큰 소리로 말하며 계단을 내려가는거예요. 도대체 저 남자는 어떤 커피를 마신걸까 생각했지요.
우리는 그날 마지막 손님이었어요. 우리는 메뉴판을 정독하고 남편은 보헤미안 커피를, 저는 예전에 82에서 읽은 기억을 되살려 게이샤를, 고3이 되는 아들은 고흐가 즐겨마셨다는 마타리를, 초등 딸래미는 메론소다를 시켰어요.
주문을 하고 카페 안을 구경하는데 박이추 선생이 나오시더라구요. 운이 좋게 그분이 내려주신 커피를 마시게 됐지요.
사실 고3아이는 커피를 마시진 않는데 그 날은 여기까지 왔으니 커피를 마셔보라고 했던 거였거든요. 앞으로 언제 우리가 함께 박이추 선생이 내린 커피를 또 마실 수 있겠냐, 정말 기쁜일이다 되뇌이며 커피를 마셨지요. 실은 저는 에디오피아 커피를 좋아합니다. 과일향이 잔향으로 퍼지는 그 맛을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커피를 맛으로만 먹는건 아니니까요.
마감 시간까지 잘 머물렀지요. 박이추 선생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큰 애한테 신문 인터뷰 내용을 이야기 해주었더니 카페를 나서면서 벽에 붙어서 기사를 찬찬히 읽더라구요.
그렇게 강릉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