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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법대 홍성수 교수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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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재판관 정도의 인물이 담당하는 재판도 그 공정성을 의심받아야 하다니 정말 통탄할 일이다. 그는 진보성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법관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었다. 인사청문회 때도,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문형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이미선 후보자에 대해서는 주식 투자 문제 등을 들어 반대).
그의 판결문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문형배 재판관의 판결문을 법사회학 수업 시간에 판례자료로 수년째 사용하고 있다. 사법이 정치적/정책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다룰 때 아주 유용한 자료라고 생각되어, 학생들에게 수십페이지 짜리 판결문 전문을 읽히고 토론을 한다.
간단히 개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에 대해 1천819명의 국민소송단이 30여명의 변호인단을 구성해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소송단은 4대강 사업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고, 피고는 사업 허가를 내준 국토해양부장관이었다. 원고 측은 절차상으로 위법하며, 수질 개선, 용수 확보, 홍수 예방 등 사업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위법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소송단은 서울행정법원 판결에서 패소하였으나 부산지법 행정2부의 판결에는 특별한 기대를 걸었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진보 성향의 문형배 부장판사가 재판장이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1년 넘게 신중하게 심리했고 원과와 피고의 입장을 충분히 검토했다. 낙동감 공사현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검증도 했고, 공사 관계자, 피해대책위 관계자, 주민 등의 의견도 청취했다.
하지만 결국 국민소송단은 패소했다. 민변에서는 “사법부가 입법·행정부에 대한 살아 있는 견제장치가 되어 줄 것이라는 최소한의 기대에서 이 소송에 임하였으나, 재판부의 판단을 살펴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에게는 재판의 결과보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밝힌 사법의 '고뇌'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원고들이 제출하는 증거들만으로는 피고들이 대운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한 이 사건에서, 홍수예방과 수자원확보라는 사업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이를 위한 사업수단의 유용성이 인정되는 만큼, 사업시행에 따른 문제점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사업시행의 계속 여부, 그 범위를 판단하는 문제는 사법부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사법부는 적법성 여부를 심사하는 데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판례와 경험의 축적으로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적절성 여부를 심사하는 데는 구조적· 경험적 한계를 가지고 있고, 설령 사업시행의 적절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 및 행정의 영역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대안을 찾는 것이 사법의 영역에서 일도양단 식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피고들이 행정계획을 입안·결정할 때 비교적 광범위한 형성의 자유를 갖고 있고 행정계획에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는 점은 원고들에게 입증책임이 있음을 전제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사업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사업시행으로 예상되는 피해의 규모, 예상 피해에 대한 대책을 종합할 때 피고들의 이 사건 각 처분에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판결문의 '행간'에서는 '도대체 이런 사업을 왜 하나?"라는 비판적 관점을 읽어볼 수 있었다. 아마 문 재판관 개인의 입장은 4대강 사업에 반대일 것 같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문제가 사법부가 판단하기에 버거운 주제고 정치와 행정이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판단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민변에서는 재판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방기하고, "그 책임을 다시 정치의 영역으로 돌린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지만, 나는 사법과 정치(정책)의 역할을 구분하려는 재판부의 고뇌에 더 공감이 갔다.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 일을 사법에 떠넘기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에 사법부가 나름의 방식으로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가 만약 정파의 이익에 복무하기 위해서 또는 진보적 성향에 따라서만 재판을 하는 법관이었다면, 과연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까? 더욱이 이렇게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건에서 말이다. 문 재판관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헌재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나면 나의 강의실에 한 번 초대하고 싶다. 그리고 4대강 사건 기각 결정을 할 때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물어보고 싶다. 판결문 행간에 담겨 있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고, 법과 정치가 어떻게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지 함께 토론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