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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 가집시다. 만민공동회 집회는 최초의 촛불집회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린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DNA가 있나봐요)
이번 12.3 내란 사태 국면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선결제 응원' 문화죠.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을 위해 커피나 핫팩, 간단한 식사류 등 다양한 물품을 대량으로 선결제해서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나눔 문화였죠.
이걸 두고 2024년에 등장한 새로운 시위 트렌드, 라고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도 했죠. 오죽하면 보수우파에서도 이런 현상을 보고 부러웠는지 선결제 비슷한 걸 시도했다고도 합니다. 컵라면 1천명 분을 선결제했다고 하던가요, 뭐 결제 직후 10분 만에 도로 취소했더라는 이야기도 들려오지만요.
그런데 사실 이게 갑자기 나타난 최신의 트렌드 같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잊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주 유구한 나눔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조차 생소하던 시절, 공화국은커녕 아직 '황제'라는 존재가 버젓이 통치하고 있던 시절부터 형성되었던 전통이죠.
바로 1898년 11월, 만민공동회의 대규모 집회때부터입니다.
간단하게 배경만 짚고 넘어갑시다. 같은 해 10월의 관민공동회를 통해서 헌의 6조가 나오고, 이걸 바탕으로 최초의 의회인 '중추원'을 설립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당시 수구 관료들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크게 경계했고, 결국 고종을 부추겨서 "독립협회가 황제를 폐하고 공화정을 세우려 한다"는 참언으로 독립협회 주요간부 17인을 전격 체포, 구속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만민공동회는 이런 정변에 대응해서 간부들을 즉시 석방하고 약속했던 헌의 6조를 하루속히 시행하라는 요구안을 들고서 대규모 집회를 벌이게 되죠. 이 집회는 여러 날에 걸쳐서 철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걸 해산하려고 군대나 경찰을 동원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이에 대응하는 당시 '시민'들의 발언이 예술입니다.
"너희는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고 우리가 낸 세금으로 고용한 자들인데 어찌하여 인민에게 총칼을 들이대느냐?“
이런 시위의 와중에 탄생한 것이 바로 선결제 문화였습니다. 비록 만민공동회의 집회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이들의 '충군애국'하는 마음에 감화되어 다양한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시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이죠.
"내 이름은 말할 것도 없지만, 협회원들이 충애하는 마음으로 밤을 새는 것을 보노라니 내 마음이 아프다. 장국밥 300그릇을 보내니 이걸로 추위라도 달래달라.“
황성신문 11월 8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바로 이 날 각 외국어학교 및 배재학당 학도들도 시위 대열에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시위대를 대상으로 발포 명령을 받은 병사들 가운데 몇몇이 명령을 거부하고 군복을 벗어던진 채 도주해버리는 일까지도 벌어집니다.
그 뒤로도 '선결제'는 이어집니다. 어느 노파가 돈 2원을 내면서 말하기를, 자기 수중에 지금 3원이 있는데 이 중 1원은 협회원들이 마실 만한 신선한 물을 사 왔고 나머지 2원을 드리니 국가를 위해 충성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당부합니다. 영남 지방 유생들이 돈을 모아서 기부하기도 하고, 콩나물 장사 하던 여인이 하루 동안 콩나물 판 돈을 협회에 기부하기도 하죠. 장작을 파는 장수는 자신이 갖고 있던 10원어치의 장작을 기부해서 철야로 시위하는 만민공동회원들이 밤새 찬 기운이라도 덥힐 수 있도록 모닥불을 지피라고 당부합니다.
이런 식으로 각종 물품을 사서 후원하거나, 혹은 돈을 직접 보내거나 하는 등의 도움은 농성 기간 내내 이어집니다. 황성신문이나 독립신문, 제국신문과 같은 당시 언론들은 이런 상황을 매일 보도하면서 사람들이 시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력에 더욱 불을 지폈고요.
이와 같은 일련의 노력들이 빛을 보게 되어 결국 고종은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고 독립협회 간부 전원을 석방하면서 헌의 6조 시행을 약속하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은 그저 평화적이지만은 않았고,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황국협회와의 무력 충돌도 거쳐야 했었죠. 이 과정에서 한 사람이 사망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무명의 의인이었던 그는 훗날 신기료장수 김덕구임이 뒤늦게 밝혀졌고, 모든 사태가 정리된 12월 초에는 그를 기리는 노제가 한성 시내에서 대단위로 벌어지게 됩니다. 한국 역사 최초의 '민주열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죠.
이처럼 선결제 문화는 사실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 속 가장 깊숙한 곳에 뿌리박혀 있는 전통입니다. 오랜 기간 우리가 그걸 잊고 지냈을 뿐이죠. 올바른 일을 하는 이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나 또한 그걸 통해서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이처럼 뜻이 모이는 곳에 길이 생기는 법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발전해온 겁니다. 1960년의 4.19, 1980년의 5.18, 1987년의 6.10, 2024년 12.3, 그 이전에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면 1898년 11월의 그 날들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많은 분들이 잊은 채 살고 있지만요.
기억에서는 잊었지만 마음은 기억하고 있는 그것, 그게 바로 100년을 넘는 역사 속에 뿌리를 둔 선결제 응원 문화였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