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이 아니죠.
알코올 중독이라 그런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했다고 말하는 건, 이성의 끈을 꼭 붙들고 성실하게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수많은 음주인들을 모독하는 발언입니다. 술을 마셔도, 자기 할 일 똑바로 잘 해내는 high functioning alcoholic 우리 주위에 상당히 많이 있어요. 저 포함. 술은 인류 역사상 사회적으로 용인된 몇 안 되는 일탈 행위잖아요. 선을 지키며 마시고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기 일 하는데 지장 없으면 뭐라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전 10년 전쯤 불안장애가 생겼어요. 그 때는 불안장애라는 말도 몰랐는데 술을 마신 게 셀프 약 처방을 한 거였다고 정신과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세상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고 낙천적이고 걱정 없는 성격이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는 동시에 남편이 명퇴 당하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면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어요. 술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고 일 마치고 아기 재우고 한 잔 하던 혼술이 습관이 되었어요. 매일 마시지만 적당량을 지키고요. 이러다 언젠가 내 몸에 해가 되겠지만 음주 운전을 한다거나 그런 사회에 해가 되는 일은 맹세코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요.
잘못된 판단을 하는 건 술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아롱이 다롱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듯이 지속적으로 음주를 하는 사람들도 다양하고 그 이유도 사연도 다 다르겠지만요. 술 마셨다고 군대를 동원하고 싹 쓸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술 마셔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나쁜 사람이죠.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무엇보다 이 나라의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 술 때문에 그랬다고 하면 음주 감경 심신 미약자라고 처벌도 약하게 할 건가요.
이 논의에서 술은 빼자고요. 성괴, 탈모, 가발, 그런 거 내란의 원인으로 삼는 거 치사하다는 건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은데요. 유시민 작가님, 술 때문이야, 이건 신경생리학적 사건이라고 하셨는데, 여기 반대 의견 있네요. 미친자가 미친 행동을 한 거지 수많은 음주인들 걸고 들어가지 맙시다요. 팬으로서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