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사람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ㅁㅁㅁ 조회수 : 2,293
작성일 : 2024-09-24 13:16:57

돌아보면 고등학교때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몰랐을 거에요.

 

외양적인 것은 강남 8학군의 모 여고 다니면서

성적 상위권에, 

늘 까불기 좋아하고,

친구들 몰고 매점 다니기 좋아하는 

발랄 명랑한 소녀였죠. 

하교 후에는 친구들과 돈모아서 매일매일

즉석떡볶기를 먹고, 후식으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친구들 웃기는게 취미였고,

매일 저녁 친구에게 갬성+개그로 편지를 썼고요.

 

그런데 저는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긴장되고 무서웠어요.

새엄마가 

소파에 눈 내리깔고 앉아 계실것이 상상되었거든요.

마치 냉장고에서 막 나와서 허연김을 뿜어내는 얼음 덩어리처럼요.

그 표면에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움츠려들듯,

새어머니의 차가운 시선에 부딪히는 일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매일 야자 끝나고 신나게 수다떨고 헤어진 후,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숨을 딱 멈추고

아파트 베란다를 올려다보며 세었어요.

1,2,3,4,5,6층..아! 다행이다 오늘은 불이 꺼졌다. 

주무시나보다. 휴. 

 

남들은 고2, 고3이라고 엄마아빠가 늦은밤 데리러 오고,

피곤하지, 어화둥둥 해주고 간식주고 했겠지만

저는 존재를 감추는게 가장 큰 미덕이었어요.

아파트 철문 열쇠를 찾아서 최대한 소리 안나게 ,,

열쇠 끝을  열쇠구멍의 벽에 밀착시켜 천천~~~히 돌리면

마지막 딸깍 소리에 다시 심장이 쿵.

문을 사알....짝 열고 발끝으로 들어갑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도시락 두개 싸던 시절이니 다 꺼내요.

씻어놓지 않으면 안되니 잔반....남기면 혼나는데,

쓰레기통(그땐 음쓰 따로 분리안할 때)의

다른 쓰레기 밑에 마지막 한입 남은 쉰내 나는 밥덩이를 감추어 버려요.

물을 최대한 소리나지 않도록 

하나의 실뱀처럼 주르륵 흐르게 작게 틀고는

가만가만 오래오래 두개의 도시락을 씻어 엎어놓습니다.

 

출출하여 먹을 것 있나 찾아보니

세탁실 세탁기 위에 뭔가 반찬이 올려져있어요.

아마 식히느라 거기 있나봐요.

선채로 한 두어입 주워 먹어요.

 

아침엔 여지없이 그 감춰버린 밥덩이에 대해 혼나죠.

쉬는 시간에 먹었는데, 선생님 들어오시는 통에

마지막 한 입은 못먹었다고 사실.을 말했는데,

저 한 입을 못먹을리는 없다고 단정하는 새어머니 말에

저는 항거할 힘을 잃어요.

길게 말해봐야 길게 혼날 뿐.

고개를 푹 숙이고 꼬리를 내립니다. 

더불어 '쥐새끼처럼' 세탁실에서 반찬을 주워먹었다고

또 한소리를 들어요.

쥐새끼 눈이 어두워 세탁기 위에 몇방울 흘리고도 몰랐나봐요

쥐새끼.가 내 몸에 찍찍...새겨집니다.

그렇게 들으니, 밤늦게 불도 안켜고

누가 나오기 전에 허겁지겁 입에 뭘 몰아넣는 내 모습이

쥐새끼랑 꼭 닮은 것 같아요. 

 

새엄마가 무서웠지만,

그래도 나에게 밥해주고,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는데

무서워하고 피하는 내 자신을 보며 죄책감도 들어요

은혜도 모르는 사람같고요.

 

그렇게 어둑어둑한 가정생활을 하고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있고, 

거의 혼날일이 없었던 안전한 학교와교실이 있었어요.

운동장에서 뛰어 놀아도 되고

소리를 지르고 호들갑을 떨어도

'유난떤다'는 소리도 안들어도 되고요.

 

저는 낮과 밤을 오가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까불쟁이 오락부장 여고생을 보며

밤을 상상하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저의 밤은 참 외롭고 길었는데도요. 

혼자서 등불없는 외딴 길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새엄마는 좋은 분이었어요. 

저 몇 워딩이 비인간적이었지만,

저도 마음 속에서 그분을 비난하고 싫어하고 두려워했고

철없는 짓도 엄청 많이 했기 때문에 비겼어요

불편한 관계로 만난 운명 탓을 해야죠

그 시간을 그래도 잘 지나온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수많은 인생 터널 중 하나였다고..

 

겉으로 아무 생각없이 무뇌로 보이는 까불쟁이도

각자 마음 속에서는 어둠과 전쟁을 치루고 있을지 몰라요.

 

그래서 사람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친절하게 대해주려고요.

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요.

 

좋은 오후 되시기 바랍니다.

일 하기 싫어 잠시 82에서 놀다갑니다.

 

 

 

 

IP : 222.100.xxx.51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24.9.24 1:22 PM (118.235.xxx.76)

    82에 들어오는 이유?
    원글님 같은 분 때문이에요.
    우리 조금만 더 친절해지도록 노력해봐요.

  • 2. ooooo
    '24.9.24 1:31 PM (223.38.xxx.147)

    82에 들어오는 이유2222
    이제는 낮에도 밤에도 행복하신거죠?

  • 3. 어머
    '24.9.24 1:32 PM (128.134.xxx.33)

    필력이 좋으셔서 무슨 소설 한 페이지 읽듯 빨려들어갔네요. 어떤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시간 나실때마다 꼭꼭 글을 쓰시는 취미를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뵙지는 못했으나 훌륭하게 잘 커주신 원글님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82에 종종 글 남겨주세요~

  • 4.
    '24.9.24 1:39 PM (118.235.xxx.87)

    그래도 힘든 시절 잘보내셨어요
    멋진님

  • 5. 대단하세요
    '24.9.24 1:42 PM (61.77.xxx.109)

    그 시절의 어려움으로 지금은 많이 단단해지셨죠. 내공의 멋이 느껴져요. 지금도 새엄마는 살아계신가요? 친엄마는요?가끔 이야기해주세요

  • 6. 지금은
    '24.9.24 1:44 PM (115.21.xxx.164)

    안녕하신거죠?

  • 7. ㅇㅇ
    '24.9.24 1:58 PM (106.101.xxx.33)

    에휴 어린 나이에 힘드셨겠어요
    그 당시 어린 소녀를
    꼬옥 안아주고 싶어요

  • 8.
    '24.9.24 2:03 PM (106.101.xxx.200)

    8학군 여고 매점,
    즉석떡볶이먹고 소프트 아이스크림....혹시 저랑 같은 여고 다니신거 아닌가? 했네요 넘 똑같은 일상의 모습이라서요 ㅋ
    저도 지옥같은 집을 벗어나는 숨구멍이 그나마 학교였던것같은데 원글님처럼 활달하진 않았어요
    글을 참 잘쓰시네요

  • 9. .....
    '24.9.24 2:17 PM (119.149.xxx.248)

    뭔가 아련해지는 글이네요

  • 10.
    '24.9.24 2:47 PM (211.234.xxx.145)

    아무리 새엄마라지만 그렇게 눈치를 봤디는건 이유가 있는거에요
    봐야하는 날만 얼굴 보고 딱 기본만하고 말아요
    누가 시집 가라고 등 떠민것도 아니고 자기도 애 있는거 알고 감안하고 결혼한건데 밥해준걸로 은혜 모르네 어쩌네 소리하면 안되죠
    그렇게 눈치밥 먹게하고선요

  • 11. 호로로
    '24.9.24 3:40 PM (211.104.xxx.141)

    82에 들어오는 이유?
    원글님 같은 분 때문이에요.
    우리 조금만 더 친절해지도록 노력해봐요222222222222222222

    그런 아픔이 있었어도 잘 성장하신듯해요.
    저도 인간에 대한 편견이 많은데
    원글님 글보고 반성도 하고
    달라져야겠어요.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 12. 토닥토닥
    '24.9.24 4:11 PM (112.161.xxx.224)

    고생했어요~
    내 식구들과
    행복하게 사세요!

  • 13. ...
    '24.9.24 5:04 PM (106.101.xxx.218)

    토닥토닥...

    남은 날들은 늘 밝고 따스하시기를...

  • 14. ㅇㅇ
    '24.9.24 10:45 PM (211.234.xxx.240)

    앞서 어떤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원글님 이제는 낮에도 밤에도 똑같이 마음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15. 감사합니다.
    '24.9.24 11:28 PM (222.100.xxx.51)

    마음에 가끔 어둠이 깃들지만, 그러다가도 또 늘 아침이 옵니다*^^*
    어둠이 와도 또 새벽이 오는 걸 믿으니까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잘 지나와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16. ...
    '24.9.25 12:47 PM (39.7.xxx.90)

    그 새어머니와 지금 관계는 아떠신가요?
    이젠 같이 나이먹었으니 덤덤한 관계일까요?
    어린시절의 그 기억들이 상처와 분노로 남을수도 있을텐데
    성숙한 태도가 인상적이여서 본받고 싶네요.
    밝게 발 지내준 그 시절의 아이에게도 스스로 칭찬많이 해주세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33371 나도 60대에 저리될까나 15 ㅇㅇ 2024/09/24 5,761
1633370 저 파프리카랑 새송이버섯 왜 샀을까요? 7 2024/09/24 1,286
1633369 옛날 분식 먹고 싶네요.. 5 ㄷㄴ 2024/09/24 999
1633368 혈당측정기 추천해주세요 4 ... 2024/09/24 704
1633367 자매끼리 여행비얘기 아파트값6억 받아간얘기 6 ㅡㅡㅡ 2024/09/24 3,839
1633366 출산후에 외모변화가 어떠셨어요? 6 출산 2024/09/24 1,267
1633365 한달도 안남은 전세만기 8 .. 2024/09/24 1,469
1633364 김완선이면 20대남자 만날수있나요? 25 ㅇㅇ 2024/09/24 3,786
1633363 두식구 25평 사는데요 11 111 2024/09/24 3,929
1633362 신한기프트 옵션 중에 골라야 하는데요 (호텔부페알려주세요) 5 ... 2024/09/24 636
1633361 50평집 살아보고싶어요 21 큰집 2024/09/24 4,525
1633360 삼성페이만 믿고 택시타고 나왔는데... 휴대폰 전원이 꺼졌어요 17 2024/09/24 3,653
1633359 아메리카노 흘린 티셔츠 ㅠ 3 2024/09/24 1,072
1633358 동네맘들 심리를 진짜 몰라서 물어봅니다. 35 진짜궁금 2024/09/24 6,952
1633357 주식 코리아 밸류업지수 발표 했습니다. 좋아 2024/09/24 771
1633356 요즘 넷플 뭐 봄? 8 무어 2024/09/24 1,774
1633355 금반지 가격 11 . . 2024/09/24 2,857
1633354 걷기운동 후 두통 7 2024/09/24 1,454
1633353 탄소매트 전력 소비량이 80 정도인 제품소개해주세요 1 가을 2024/09/24 217
1633352 당근으로 35만원 벌었네요.. 13 대청소힘들다.. 2024/09/24 5,653
1633351 네이버 카페 되세요? 12 지금 2024/09/24 1,235
1633350 웃음기가 사라진 초6 사춘기 아이 13 ..... 2024/09/24 2,683
1633349 미싱 하시는분~ 얇은 폴리에스테르도 박아지나요? 7 바느질 2024/09/24 500
1633348 원할머니보쌈 향수 나온거 아세요? 8 ㅇㅇㅇ 2024/09/24 3,095
1633347 이렇게 성형중독되나요? ㅎ 9 ... 2024/09/24 2,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