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물 한 잔으로 생긴 트라우마 (일부 펑합니다)

ㆍㆍ 조회수 : 2,196
작성일 : 2024-09-16 14:37:16

사적인 부분이 드러나는 일부 내용은 삭제할게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졸업후 각자 다른 지역에 살면서도 

종종 연락이 와서 통화도 하고 가끔 만났어요

제가 대학을 타지역으로 가서 방학때 집에가면

고향에서 학교 다니던 그 애를 한번씩 만났구요.

원래 물질에 인색하다는건 알고 있었어요

..................

반복되는 제가 돈을 내는 상황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1년에 한두번 만나는 거였고 저의 고등학교 시절 추억의 일부분이라 생각해서 돈에 대한 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각자 타지역에 살다가 30대일때 그 친구가 사는 지역에 일이 있어 가게 됐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더군요

친구가 혼자 살고 있었어요.

(중략)

집에 가서 목이 말라 물을 좀 달라하니 '없어'라고 

딱 한마디 하길래

얼굴을 쳐다봤는데 다른 곳을 보며 시선을 피하고 물을 끓여주거나 대체할 어떤 음료를 줄 생각이 없다는

표정이었어요

저는 목이 마른채로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에 나가니 그 애가

소파에 앉아서 유리컵에 든 물을 천천히 마시고 있더군요

그 물은 냉장고에서 갓 꺼낸것처럼 차가워서 컵에 이슬이 맺혀 있었고 약초를 다린 물인지 차를 끓인 물인지 보리차와는 다른 색깔이었어요, 분명한 건 아침에 끓인 물은 아니었다는 거죠

저는 그 순간 그 친구에게 물 없다며? 라고 물어보는 게 의미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친구는 태연하게 천천히 그 물을 한 컵 다 마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물론 저에게 물을 권하지도 않았어요

빨리 가야 한다고 하고 그 집을 나왔고 그 이후로 저는 그 친구에게 연락을 먼저 하지는 않았어요

.................

제가 먼저 결혼을했고

그 친구가 와서 축의금을 했고 저는 차비를 챙겨주었어요.  나중에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연락을 했고 제 결혼식에 왔었기에 저도 3시간 거리의 그 친구 결혼식에 갔어요.

그 뜨거웠던 한여름 8월 지하철에서 15분을 걸어, 예식장이 아닌 어떤 회관에서 하는 결혼식에 갔어요. 그 회관 지하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식사로 뜨거운 갈비탕이 나오더군요.

당시 예식 식사는 거의 다 뷔페였는데 의외였고  새벽부터 빈속에 나가서 땡볕에 길 찾느라 헤매고 허기도 지고 배도 고팠지만 너무 지치고 더워서 뜨거운 갈비탕을 먹을 수가 없더군요. 심지어 그 지하식당 안이 냉방이  잘  되지 않아 얼마나 덥고 지하 특유의 냄새가 나던지요. 축하 한다고 인사하고 헤어지는데 역시 차비 따위는 주지 않더군요. 

가끔 그 친구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저한테 전화를 했고 저는 무덤덤하게 그 친구의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는 친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냥 고등때 같은 반 아이 정도의 존재였죠

그러다 그 친구가 임신을 했다고 연락을 해왔고 출산이 다가올 즈음에는 저희 아이가 쓰던 유모차를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이와 관련해 받은게 없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저도 당당하게 거절을 했어요

아니 나 이 유모차 비싼 거라서 중고거래로 판매할 거야

라구요

그 이후로도 드문드문 연락은 왔지만 제가 잘 받지 않았고 지금은 번호를 바꾸면서 연락이 끊겼어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연락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

가끔 아침에 일어나서 갈증이 심하게 나는 날

그 아이가 생각이 나요

 그 아이가 소파에 앉아

태연하게 유리컵에 그 정체 모를 물을 마시던 모습이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는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이런 게 트라우마일까요

죽고 못사는 친구도 아니었는데

전 그날의 일이 너무 충격이었던 거 같아요

그깟 물 하나가 뭐라고

끓인 물 주는 게 아까웠으면 그 물의 정체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수돗물이라도 좀 끓여주지....

앞으로 살면서 아침에 눈 떠서 목마른 날

더 이상 그 아이가 생각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아이의 물 마시던 모습이 제 기억에서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한 두 번 그런 날이 있어요

오늘 아침 늦잠을 자고 심하게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면서 그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았네요

제 절친들은 모두 자기껄 아낌없이 퍼주는 친구들이라서 우리끼리는 늘 계산이 없었어요

누가 돈을 쓰던 중요하지 않았고

받으면 그 배로 더 해주려고 하는 사이예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베푸는 스타일이구요

그 애가 저에게 중요한 존재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문득 그 물 사건이 생각이 나는 건

 순수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했던

 존재였기 때문이겠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가끔 생각이 나요

특히나 갈증이 나는 아침에 생각이 나면 기분이 별로네요

어떻게 하면 그 물 사건을 잊을 수 있을까요 

 

 

 

 

IP : 114.207.xxx.92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답답합니다
    '24.9.16 2:44 PM (223.62.xxx.99) - 삭제된댓글

    자발적 호구. 혹시 지금 그 친구 형편이 원글님보다 더 낫나요? 오래전 일인데 아직까지 그게 뭐라고 곱씹고 괴로워하면서 사나요? 한마디도 못하고. 너 그때 왜 그랬어?

  • 2.
    '24.9.16 2:53 PM (210.126.xxx.33)

    글 읽고나니 저도 기분이 안 좋아지고 찝찝해요.
    그 동창은 쏘패쪽 아닐까요?
    하루빨리 기억에서 지워지기를 바래요.

    손에 무언가 지저분한게 묻었을때
    계속 냄새를 맡아보게 되잖아요?ㅋㅋ
    얼른 깨끗한 물과 비누로 손 씻듯 씻어버리셈.

  • 3. 생기가득한방
    '24.9.16 2:54 PM (59.10.xxx.5) - 삭제된댓글

    원글님은 참 순수했지만, 친구는 순수는 커녕 아주 이기적이고 못돼쳐먹었네요. 전 얻어먹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상대 안 해요. 뻔뻔해서 싫더군요,

  • 4. oo
    '24.9.16 3:17 PM (118.220.xxx.220)

    비누로 깨끗이 씻어 버리라는 말씀 너무 와닿네요
    씻어버릴게요
    젊을때는 순수했던것같아요
    지금이라면 세파에 시달려 저런 부류는 단칼에 잘라버렸을 텐데요

    댓글 감사합니다 편안한 휴일 되세요^^

  • 5. ditto
    '24.9.16 3:45 PM (118.41.xxx.78)

    그런 기억을 발판 삼아 나는 그러지 않는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은 양분인가요 그 친구는 이 사실 알면 킹 받을 거예요 본인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그로 인해 본인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니.

  • 6. oo
    '24.9.16 3:52 PM (118.220.xxx.220)

    너무 긍정적인 말씀 힘이됩니다. 감사드려요

  • 7. ㅇㅇ
    '24.9.16 4:12 PM (210.98.xxx.66)

    지지리 가난하고 힘든 집에서 고생하고 자라서 어딘가 망가진 아이였나보다 딱하게 생각하고 입어버리셔요.
    친구 하나 없는 삶이겠네요

  • 8. 기억의 속성
    '24.9.16 4:29 PM (180.69.xxx.63) - 삭제된댓글

    강렬하고 인상적인 기억은 전두엽이 아닌 해마에 저정된다고 해요.
    그 장면이나 그때 입업던 옷, 주변 집기까지 각인이 돼서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고 또렷하게 남는다고 해요.
    일반적인 기억은 전두엽에 저장되고 이틀이 지나면 20%, 일주일이 지나면 80% 소실된대요.
    이 기억을 연장하려면 매일 그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리면 된다고 해요.
    비슷한 상황을 만나 기억이 저절로 떠오를 수 있지만, 소상히 복기하는 것은 잃고 싶은 기억을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아서 저장 기간을 연장하는 것과 같아요.
    기억을 떠올리는 자신이 인지되면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간을 바꾸세요.

  • 9. 기억의속성
    '24.9.16 4:35 PM (180.69.xxx.63) - 삭제된댓글

    강렬하고 인상적인 기억은 전두엽이 아닌 해마에 저정된다고 해요.
    그 장면이나 그때 입었던 옷, 주변 집기까지 각인이 돼서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고 또렷하게 남는다고 해요.
    일반적인 기억은 전두엽에 저장되고 이틀이 지나면 20%, 일주일이 지나면 80% 소실된대요.
    이 기억을 연장하려면 매일 그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리면 된다고 해요.
    비슷한 상황을 만나 기억이 저절로 떠오를 수 있지만, 소상히 복기하는 것은 잃고 싶은 기억을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아서 저장 기간을 연장하는 것과 같아요.
    기억을 떠올리는 자신이 인지되면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간을 바꾸세요.

  • 10. ㅇㅇ
    '24.9.16 8:25 PM (1.234.xxx.148)

    와... 한 편의 공포영화를 본 것 같아요.
    물잔 보고 놀랐을때
    배경음악까지 들리는 듯.
    손절하신 거 잘하셨어요.

  • 11. 기억의 속성님
    '24.9.16 8:47 PM (118.220.xxx.220)

    조언 글 너무 감사드려요
    자주 읽어볼게요
    공간을 바꾸고 환기시키는 작업. 꼭 해야겠어요
    떠오르면 왜그랬을까 생각하니 계속 각인이 되었나봐요
    요즘 같았음 쏘패나 나르라고 생각이라도 했을텐데
    ㅇㅇ님도 댓글 감사드려요
    좀 더 빨리 손절했어야했는데...

  • 12. 저도
    '24.9.16 11:17 PM (39.116.xxx.130) - 삭제된댓글

    저도 그런 경험 잇어요
    예를 들면
    대학생 때였는데 저는 공부를 좋아해
    아침 일찍 새벽에 도서관 자리 잡는거 좋아햇어요
    시험 기간에만 저랑 급친하게 하여
    도서관 자리 잡아달라고 하고 공책 노트필기 빌리고~
    시험 끝나면 나랑 멀어지고..
    그 때의 나는, 순수하게 내가 잘하는 무엇인가를 도와주자.~
    이런 마음 이였거든요
    시험 끝나면 그 아이들은 또다른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움직이더군요 .. 더 많은 돈을 갖은 동기, 더 많은 권력을 갖은 동기~ 더 많은 인맥을 갖은 동기에게로….
    이젠 가족 말구는 안 믿어요

  • 13. 저도
    '24.9.16 11:19 PM (39.116.xxx.130)

    저도 그런 경험 잇어요
    예를 들면
    대학생 때였는데 저는 공부를 좋아해
    아침 일찍 새벽에 도서관 자리 잡는거 좋아햇어요
    시험 기간에만 저랑 급친하게 하여
    도서관 자리 잡아달라고 하고 공책 노트필기 빌리고~
    시험 끝나면 나랑 멀어지고..
    그 때의 나는, 순수하게 내가 잘하는 무엇인가를 도와주자.~
    이런 마음 이였거든요
    시험 끝나면 그 아이들은 또다른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움직이더군요 .. 더 많은 돈을 갖은 동기, 더 많은 권력을 갖은 동기~ 더 많은 인맥을 갖은 동기에게로….
    이젠 가족 말구는 안 믿어요

    근데 가끔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
    그 때 기억이 떠울라요 트라우마처럼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25613 희철리즘 보는사람 없나요? 15 혹시 2024/09/16 3,671
1625612 햇뱐으로 명란솥밥 해도 될까요? 3 ... 2024/09/16 1,067
1625611 시모랑 밥먹었는데 기분 잡쳤네요 34 팔말라 2024/09/16 10,051
1625610 우지원 막장 오브 막장 얘긴뭔가요? 24 우지원 2024/09/16 21,814
1625609 혼자 음식 준비하는건 매한가진데... 3 2024/09/16 1,752
1625608 시댁 마을회관에서 쉬고있습니다 3 ㆍㆍㆍ 2024/09/16 4,153
1625607 자퇴나 유급후 재입학 하는게 나을까요?? 3 재입학 2024/09/16 1,476
1625606 가난하면 사랑 못한다는거 뻥이예요. 18 그냥 2024/09/16 5,185
1625605 뮤지컬 취소표나 양도표는 어디에 올라오나요? 8 ........ 2024/09/16 1,150
1625604 물 한 잔으로 생긴 트라우마 (일부 펑합니다) 8 ㆍㆍ 2024/09/16 2,196
1625603 레드스패로 3 2024/09/16 564
1625602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28 허허허 2024/09/16 6,129
1625601 카페 알바는 외모 보나요? 16 외모 2024/09/16 3,793
1625600 애들 데리고 광명에 왔는데… 6 친척 2024/09/16 2,391
1625599 La갈비에 곁들일 반찬 뭐가 좋을까요? 10 추석 2024/09/16 1,763
1625598 인천공항 은행 환전소애서 2 ... 2024/09/16 994
1625597 올해 의대 쓴 학생들은 왜 쓴 거예요? 22 희한하네 2024/09/16 6,017
1625596 나에게 PT는 5 헬스 2024/09/16 1,771
1625595 만50세 어지럼증, 구토? 6 .. 2024/09/16 1,908
1625594 삼색 데친 나물 샀는데 그냥 볶으면 되나요? 6 .. 2024/09/16 991
1625593 날이 일케 더운데 갈비찜 기름은... 7 알려주세요 2024/09/16 2,388
1625592 비빔밥에 시금치 대신 청경채를 넣었더니.. 7 에구 2024/09/16 3,770
1625591 폰들고 대기) 살려주세요 녹두전이 짜요 18 ㅜㅜ 2024/09/16 1,778
1625590 게으른데 바닥 닦기 힘드신분들. 9 ㅎㅎ 2024/09/16 4,168
1625589 말라 비틀어진 고구마는 일반쓰레기?음쓰? 1 .. . 2024/09/16 1,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