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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우리 남편이 변했어요

앗싸 조회수 : 6,540
작성일 : 2024-08-24 02:10:14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요. 제 남편은 쥐뿔도 없으면서 이상한 자존심 고집이 있는 남자예요.

무슨 얘기냐면요. 물욕을 보인다거나 실속을 따진다거나 그런 걸 극혐해요. 세일한다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걸 보면, 저 같으면 뭘 그렇게 싸게 팔길래 궁금해서라도 한 번 들여다 볼텐데, 남편은 (그깟거 얼마나 한다고) 그런 말 속으로 하는 것 같이 멀리 돌아서 가요. 편의점에서 음료수 1+1이라고 알려줘도 난 하나면 됐다고 대차게 거절하는 이상한 인간. 

 

연애할 때 길에 지폐가 한 장 떨어져 있었는데 제가 그냥 가자고 했었어요. 무슨 몰카 찍는 것처럼 가로등 불빛아래 뙇하고 있는데 왠지 집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 모습에 반했대요. 신혼 여행가서도 욕실에 비치된 샤워용품 (엄청 좋은 거였는데) 제가 싸가지고 오는지 안 오는지 감시하더라고요. 그런 궁상떠는 우리네 어머니상이 너무 싫다나 뭐라나. 하지만 살다 보면 고상한 저도 생활의 땟물이 묻지 않을수 있냐고요. 

 

어느날 대형마트에서 십 만원도 넘게 장보고 와서 힘들어 쓰러지려고 하는데 영수증을 보니 작은 냄비 하나 산 게 계산에 빠져 있었어요. 다시 가기도 너무 귀찮고 그냥 선물이라고 치자, 하긴 그 마트에서 그동안 내가 팔아준게 얼마냐 요정도 보너스 하나 받아도 되지, 하는 순간 이글이글 남편의 분노. 우리가 거지냐, 고고하던 내 와이프 어디 갔냐고, 당장 가서 돌려주든지 돈을 내고 오라고, 그깟 라면 끓이는 냄비하나에 양심을 팔아먹다니, 정말 울것 같더라고요. 여태껏 살면서 냄비 하나 사준적 없는 인간이. 저도 눈물을 흘리면서 마트에 가서 냄비 걍 돌려주고 왔었죠.

 

근데 한 십년쯤 지났나요. 그간 남편은 명퇴 당하고 제가 외벌이로 벌고 남편은 가사일을 더 돕게 되고 빠듯한데 애 키우면서 나름 산전수전 겪었네요. 엊그제 월급 들어온 김에 20년도 더 된 프라이팬 이제 진짜 버리고 새거 하나 산다고 결심하고 갔다가 두 개를 집어 들게 되었어요. 큰 거 살까 작은 거 살까하다 둘다 너무 낡았는데, 그래 지르자. 근데 보니까 작은 것만 가격표가 붙었고 큰건 안 붙었어요. 점원이 둘이 한 세트라서 그런 거래요. 그럴리가 없는데, 나름 비싼 메이커인데 두 개 2만원? 말이 안 된다고 다시 물어봐도 세트가 맞다고. 그래서 둘다 집에 갖고 왔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역시, 두 개 6만원은 줘야 했던 거더라고요. 어휴 또 가야되나, 더운데, 그랬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우리 그냥 쓰자, 왠떡이야! 그러면서 활짝 웃네요. 

 

여보,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요. 조선시대 선비 양반 샌님 아니면 구한말 지식인같던 남편이 어쩌다 얻어가진 프라이팬 하나에 그렇게 기뻐하다니. 지금 이 글 쓰면서도 그 표정이 생각나 눈물이 나요. 어디가서 얘기하기도 뭐해서 일기같이 올려봅니다만, 자본주의에 팔린 건 나 하나로 족한데 진심 지못미네요 ㅠㅠ  

IP : 74.75.xxx.126
2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하하하
    '24.8.24 2:22 AM (223.38.xxx.27) - 삭제된댓글

    글이 재미있어서 잘 읽었어요.

    글쎄요, 이제 겨우 세상의 쓴맛을 조금 알게 되신 걸까요.
    저라면 길에 떨어진 돈은 안 줍고 프라이팬 값은 정확히 계산하고(내 것 아닌 건 갖지 말자)
    세일하는 곳은 잘 뚫고 들어가서 득템 잘 하고
    원플원도 잘 챙겼을 것 같은데…
    즉 내 것 아닌 걸 갖자는 남편이면 좀 실망이긴 한데요. 워낙 결벽이던 분이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세상이 얼마나 쓴맛이었던 걸까
    마음이 먼저 아파지네요.

    그건 그렇고
    그 프라이팬은 세일 중이었을 거예요. 가끔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붙일 때가 있잖아요.
    직원 말을 믿어 주세요.

  • 2. 잎싹
    '24.8.24 2:25 AM (59.28.xxx.50) - 삭제된댓글

    일기는 님 노트에~~~

  • 3. 하하하
    '24.8.24 2:26 AM (223.38.xxx.27)

    글이 재미있어서 잘 읽었어요.

    글쎄요,
    예전의 그 분 기준은 좀 이상한 편이긴 한데요…

    저라면 길에 떨어진 돈은 안 줍고 프라이팬 값은 정확히 계산하고(내 것 아닌 건 갖지 말자)
    세일하는 곳은 잘 뚫고 들어가서 득템 잘 하고
    원플원도 잘 챙겼을 것 같거든요…(이건 정당한 대가를 내는 거니까)

    그러니 내 것 아닌 걸 갖자는 남편이 돼 버렸다, 이러면
    좀 실망이긴 한데요. 워낙 결벽이던 분이 그러신다니
    그 분에게 세상이 얼마나 쓴맛이었던 걸까
    마음이 먼저 아파지네요.
    얼굴도 모르는 분!
    원래의 결벽에도 장점이 있었어요. 돌아와 주세요~.

    그건 그렇고 원글님 ㅋㅋ
    그 프라이팬은 세일 중이었을 거예요. 가끔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붙일 때가 있잖아요.
    직원 말을 믿어 주세요!

  • 4. 어머
    '24.8.24 2:27 AM (223.38.xxx.27)

    첫 댓글은 왜 저런다냐,
    이런 일상글이 많은 것이 바로 82의 독특한 개성이고 장점이었는데!

  • 5. ...
    '24.8.24 2:29 AM (108.20.xxx.186)

    원글님 저는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또 지못미라고 말씀하시는 마음도 알겠어요.
    두 분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지내세요!

  • 6. 그래서
    '24.8.24 2:32 AM (218.54.xxx.75)

    떡으로 여기고 쓰시나요, 갖다 주나요?
    계산 잘못되면 이런 찜찜함이 유발...
    맘 편하게 쓰려면 남편 말 들으시던지요.

  • 7. ㅋㅋㅋㅋ
    '24.8.24 4:48 AM (151.177.xxx.53)

    옛날 롯데 영등포에서 일제 차기세트를 만오천원에 판다는거에요.
    넘 멀쩡한 티팟과 찻잔 여섯개가 만오천원. 물론30년전 이지만 너무 싼거잖아요.
    말도안되는 가격으로 나올때가 있어요.
    인터넷으로는 8만원짜리 스티머 들어있는 쓰리피스 냄비세트가 마트에서는 4만원에 팔아서 얼른 줒어온적도 있고요.

  • 8. ㅋㅋㅋㅋ
    '24.8.24 4:51 AM (151.177.xxx.53)

    남편분 착하네요. 집안일도 안도와주고 무위도식하거나 부인에게 강짜부리고 그런 남자들이 거의 다 인데요. 원글님 남편분처럼 저렇게 우직하고 곧은 사람이 또 부인 도와주기도 잘하고 집안일도 알아서 잘해요. 남편이 오랜 힘듬에 변한게 아니라 원글님과 성격과 사상이 절반씩 섞여서 그럴거에요.

  • 9. 달콤한 수필
    '24.8.24 6:05 AM (118.235.xxx.162)

    원글님 한편의 수필처럼 너무 즐거운 글입니다.
    유쾌한 원글님 .

  • 10. ㅇㅇ
    '24.8.24 6:06 AM (59.17.xxx.179)

    잼납니다~~~~~~~~~~~

  • 11. ㅋㅋ
    '24.8.24 6:57 AM (1.229.xxx.73)

    에구 현실에 타협

  • 12. ㅇㅂㅇ
    '24.8.24 7:02 AM (182.215.xxx.32)

    어머 라면냄비에 같이 울고싶은 마음이었는데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래요!!!
    기막히고 희한하네요!!

  • 13. ㅇㅂㅇ
    '24.8.24 7:06 AM (182.215.xxx.32)

    점원이 한세트라고 몇번얘기했을정도면 걍 쓰심되죠

  • 14. ㅎㅎ
    '24.8.24 7:29 AM (118.235.xxx.247)

    세트 맞을거에요. 저 얼마전 인터넷에서 3개 3만얼마에 싰어요 ㅌ ㅍ 브랜드요

  • 15. 그게
    '24.8.24 7:48 AM (74.75.xxx.126)

    찾아보니까 작은 팬은 이 만원 맞고 큰 건 4만원 가까이 하더라고요. 포장을 세트로 묶어 놓은 것도 아니고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전 또 매장 아가씨가 계산 잘못했다고 일당에서 까는 거 아닌지 걱정이 돼서요. 그 와중에 살림 좀 해 본 남편은 프라이팬의 소중함을 알아서는 하나도 안 눌어 붙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아침부터 볶음밥 볶고 있네요. 그냥 선비 캐릭터만 해도 되는데 ㅠㅠ

  • 16. ㅇㅂㅇ
    '24.8.24 7:53 AM (182.215.xxx.32)

    ㄴ너무웃겨요 ㅋㅋㅋㅋ

  • 17. 테*도
    '24.8.24 7:56 AM (183.97.xxx.120)

    중국산은 싸고
    프랑스산은 비싸요
    인터넷 쇼핑몰 세일할 때 잘찾아보면 생산지가 나오는데
    프랑스산은 처음에 크게 써있고
    중국산은 한참 찾으면 작은 글씨로 써있어요

  • 18. ...
    '24.8.24 7:59 AM (106.101.xxx.14) - 삭제된댓글

    글 술술 읽히게 잘쓰신데다 내용이 재밌네요 ㅎㅎ
    남편분 갱년기신가봐요

  • 19. 하하하
    '24.8.24 8:35 AM (118.33.xxx.228)

    아내가 이렇게 재밌는 분이라
    남편도 유연해지셨나봅니다 그리고 현실에 타협ㅋ
    계산원에게 확인까지 한걸 아니라 우길 필요는 없겠죠
    그런데 저도 갈등하고 있을 인간유형이긴 해요ㅋㅋ

  • 20. ..
    '24.8.24 9:29 AM (182.220.xxx.5)

    남편분 그래도 살림 잘하셔서 다행이네요.

  • 21. 점원한테
    '24.8.24 9:33 AM (220.71.xxx.61)

    두번이나 확인했으면 그 가격이 맞는거구
    남편분 변한거, 현실과의 타협은 아닌듯
    사람쉽게 변하나요
    혹시 그가격으로 파는거였어도 그건 그직원이 책임져야할일

  • 22. 몬스터
    '24.8.24 10:33 AM (125.176.xxx.131)

    남편분도 이제 경제활동을 못하게 되시니...
    심적 변화도 있으신거 아닐까요? ㅎ
    그리고 주부의 입장이 되어봐야, 그 알량한 자존심보다
    알뜰살뜰 원플러스원의 맛을 알게 되잖아요.
    저도 결혼초엔 원글님 남편분 같은 성격이었는데...
    살림 20년해보니 저절로 변하더군요 ㅎㅎ

  • 23. 가끔
    '24.8.24 11:09 AM (39.124.xxx.196)

    제가 예전에 2마트에서 비닐랩 제일 큰 거를 천원에 샀는데,
    아무리봐도 이상한 거예요.
    근데 가격표에 천원이라고 명시가 되어서 희안하다고 하면서 샀어요.

    약 한달 후에 다시 가보니까
    6,880원인거 있죠.
    그래서 그 때 생각했죠.
    물량 밀어내기 라는 게 있다는 데
    그런건가 싶었어요.
    가끔 그런 일이 있더라구요.

  • 24. 희한하다
    '24.8.24 3:35 PM (90.186.xxx.141)

    희한.


    원글님 글이 넘 재밌어요 ㅋㅋ
    자주 글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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