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 5개 야구장 시구자
잠실: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 배우 양준모
고척: 독립유공자 후손 민영백 옹
대전: 도산 안창호 선생 외손자 필립 안 커디
창원: 독립유공자 최경학 님 손자녀, 강종완 님 자녀
대구: 홍준표 대구시장
8.15 광복절 5개 야구장 시구자
잠실: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 배우 양준모
고척: 독립유공자 후손 민영백 옹
대전: 도산 안창호 선생 외손자 필립 안 커디
창원: 독립유공자 최경학 님 손자녀, 강종완 님 자녀
대구: 홍준표 대구시장
8.15 광복절 5개 야구장 시구자
저장할게요.
잠실, 고척, 대전, 창원 구단주님들 고맙습니다.
시구자님들 잊지 않을게요.
대구 ㅠㅠㅠㅠ
대구, 제가 좋아하는 도시인데요.
대구시장, 투표 성향 이상하긴 하지만,
소수의 멋진 대구시민 있어요.
이 분들은 일당백입니다. ㅠㅠ
116.121 / 죄송하게도 이제는 그 말도 못 믿겠어요
박정희 광장이 소리소문없이 생긴걸 보니 나원참..-.-
그 분들 너무 존경스럽고 멋지죠
오늘도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박정희 동상 보고싶지 않아서라도 살고싶지않은 지역입니다
대구 사람들아 니들은 그냥 버러지야
일부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겠지만 내 뇌리에는 니들은 민족 반역자
대한민국 역사의 모퉁이 마다 똥물을 끼얹은 버러지들이다
바뀌지 마라!! 그냥 버러지로 살아
너무하다 생각하지 말고 오늘은 그냥 욕 먹는 거 감수해
이 정도도 못참으면 니들이 한 짓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는거야
https://www.youtube.com/live/Wr5o0SQiXn4?si=GxBTjUYzubo93pSU
깨어있는 대구시민들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죠
오늘도 박정희 광장 반대 기자회견도 했어요
분노와 함께 이 분들도 잊지 않고 기억해주셨음 좋겠어요 정말 열심히들 하세요 그 누구들보다도
박정희 광장 반대 집회도 하시고 촛불집회도 하시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무조건 국힘당 찍어주는 나팔국인건 사실이죠.
이제 대구 트렌드마크가 독재자 방정희가 된 것도 사실이고
박근혜와 윤석열이 매번 찾아가는 곳도 서문시장이고요
전국에서 최저임금 이하로 주는 곳도 대구고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비난하는 지역이 대구인 이유가 다 있지요.
맞아요. ㅠㅠㅠ
제 절친이 대구 살아요. ㅠ
대구 싸잡아서 비난 하는 거 힘들어요. ㅠ
대구 깨어있는 분들 힘내세요!
박정희는 왜 미워하는지 이유 좀 알수 있나요?
이분 아니었으면 이만큼 못살았어요..
동남아처럼 돼서 다른나라로 매매혼 하고있을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구미에서 난 대통령이라서 싫어하는건가요?
윤은 욕먹을만한데...박정희는 왜
박정희는 전두환처럼 절대악! 으로 말할 수 없는 정치인이죠.
윗님 말이 맞아요.
박정희는 공과가 분명히 있어요.
이건 진보적인 학자들도 인정하는 거 같아요.
맞아요 기타좀 치고 젊으면 빨리 출세 할수도 있을텐데 말이지요
그분 못생긴 여자 병풍 뒤에 서 노래 부르라고 했는데
동남아 애들 취급 보다는 좋은거지요
님은 앞인가요 뒤인가요??
구미는 더 엄해요? 님은 무조건 뒤임!!!!
박정희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너무 많이 죽였죠.
지금 예술계에서 칼을 갈고 박정희 시대를 증언하는 영화들이 나오고 있죠.
박정희 유신선포 다음날 야당의원들 고문폭행
방송에서 박정희는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와 국회 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그리고 헌법 개정 등을 선언했다.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 정지라고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아무런 근거조항이 없는 국회 해산조치였다. 대통령의 국회 해산은 초헌법적 헌정파괴로 사실상 내란이었다. 국회를 해산한 뒤 정권 측은 야당 국회의원 중 눈엣가시 같은 인물들을 잡아들였다. 박정희가 이른바 특별선언을 발표한 10월17일은 국회가 한창 국정감사 활동을 벌이던 중이었다.
박정희가 국회 해산을 발표한 1972년 10월17일 당일 밤, 서울 외곽지역에 자리한 아무런 간판도 장식도 없는 삭막한 콘세트 건물.
군 정보기관 소속의 한 소령이 연행돼 온 남자에게 협조해 줄 것을 나름대로 정중하게 당부한다.
"옷을 다 벗으시지요."
그는 겉옷을 모두 벗고 속내의만 남겼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4명의 점퍼 차림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속내의까지 홀랑 다 벗겼다. 점퍼들은 알몸이 된 남자의 팔과 다리를 교차하여 묶더니 그 사이에 큰 막대기를 끼워서는 두 개의 책상 사이에 걸어 놓았다. 이른바 '통닭구이'고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일본 고등경찰이 우리 독립운동가를 붙잡으면 조직을 캐기 위해 동원했다는 비인간적 고문수법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하수인들이 유신쿠데타 상황에서 야당 인사들에게 그대로 자행했다.
취조 4인조는 '통닭 남자'의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는 주전자로 물을 붓기 시작했다. 숨을 못 쉬고 거의 질식 상태인 그에게 또 사정없이 각목 구타가 가해졌다. 고문에 못 이겨 그는 풀어주면 말하겠다고 했다. 점퍼들은 3,4차례나 다짐을 받고는 그를 풀어 땅에 꿇어 앉혔다.
그때 갑자기 그의 입에서 "우드득, 딱"하는 소리가 났다. 자결하려고 혀를 깨물었으나 의치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취조하던 점퍼들은 놀라면서 그를 제지했다.
비슷한 시각, 남산 중앙정보부의 조사실이 있는 안가.
한 50대 민간인이 연행돼 들어왔다. 옷을 벗기고 군 작업복으로 갈아입힌다. 이어 의사가 건강상태를 점검했다. 의사는 책임자에게 "혈압이 높으니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중앙정보부에 끌려왔으니 누구라도 호흡이 가빠지고 혈압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병이 있을 경우 목숨을 잃는 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담당수사관은 "사실대로만 얘기하면 곧 나갈 수 있어요"라며 점잖게 취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년전 잡혀왔을 때도 심문하던 수사관으로 기억이 되살아났다.
조사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진전되지 않았다.
수사관이 바뀌더니 2인조 고문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주먹질과 각목 구타가 이어졌다. 고문자들은 기가 빠진 그를 지하실로 끌고 들어갔다.
의자에 앉혀 손발을 묶고 고개를 뒤로 젖혀 얼굴에 물을 부었다.
그래도 묻는 말에 원하는 대답이 안 나오자 고문자들은 그를 어떤 작은 방에 집어 넣었다. 진공실 고문이었다. 조금 있으니 얼굴과 가슴이 바깥으로 찢어지는 것 같고 몸뚱이 전체가 공중에 둥둥 뜨는 듯했다. 비명을 지르려 해도 목소리가 안 나오고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았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5075
부울경 못말려요. 저도 그중 하나 출신이지만ㅠㅠ 지인 암울한 역사는 피하고 싶다는 발언 당당하게..
박정희를 단지 비판했다는 이유로 너무나 많은 정치인, 학생, 일반일들이 죽어나갔지요.
박정희를 신으로 모시는 저희 엄마 표현에 의하면
불가피하게 그랬다는데,
불가피하게 살인을 해도 되는 이유가 뭔지요?
125.185님
경제학자들 논문 읽어보니,
당시 박정희가 아니었어도
자본주의 경제 부흥기라 한국이 더 잘 살 수도 있었다고 하네요.
성공한 쿠테타로 잡은 정권
지역감정조장
나라를 동서로 나누고 경제발전도 동서로 나눴죠
본인 권력 영구집권을위해 헌법개정도 마다않고 민주화는 저뒤로가고
수단과방법 가리지않고 정적제거
결국 총으로 생마감
설립자인 김지태가 재산해외도피 혐의 등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두 달 정도 구금생활을 하다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쓴 며칠 뒤 공소취하로 풀려났고, 부산MBC+서울MBC+부산일보+일부의 토지들을 모태로 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는 ‘5.16장학재단’을 만들고 여기에 박정희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을 내서 자금을 눈덩이처럼 불렸다. 이로 인해 처음에는 김지태가 내놓은 장학재단 자금이 10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김지태가 내놓은 MBC 및 부산일보 지분은 15%에 불과하고 85%가 새로 불어난 기부금이 차지한다. 이후 10.26 사건 후 언론통폐합에 의해 (주)문화방송-경향신문 지분 70%를 국가에 넘기고 1982년에 명칭이 정수장학회로 바뀌었다. 박정희의 '정', 육영수의 '수'에서 따온 이름이다.
https://namu.wiki/w/%EC%A0%95%EC%88%98%EC%9E%A5%ED%95%99%ED%9A%8C
박정희 전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호인이었던 안동일 변호사(65)가 최근 발간한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라는 책에서 소문으로 떠돌던 박전대통령의 여자관계를 폭로했다.
안변호사에 따르면 김재규는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1980년 2월19일 접견에서 박전대통령의 여성편력에 대해 말했다.
김재규가 “궁정동 안가에서 박전대통령을 거쳐 간 여성이 200명쯤 됐고 이 때문에 박선호(당시 중정부장 의전과장, 사형집행)가 무척 고생했다”고 털어놓았다는 것. 또 웬만한 일류 연예인은 박전대통령에게 다 불려갔으며 당시 항간에 나돌던 간호장교 이야기, 인기 연예인 모녀 이야기 등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다.
안변호사는 “옮기기 부적절한 더 심한 얘기도 있지만 독자 상상에 맡기겠다”고 덧붙였다. 이 책은 박전대통령과 가족들의 사생활도 공개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0510252217371
대구 경북은 깨어있는 시민분들은 한줌이고 일그러진 이념만 가진 사람들만 있죠...
얼마전 경북 지인분이 무슨 이야기 중 "이재명은 지난번 칼 찔렸을 때 뒈졌어야해... 아깠웠어..." 하는데 그 사람이 사람으로 안보였어요...
세월호 때도 "죽은 애들로 어지간들 한다고... 지겹다고...." 했는데 그때는 같이 있던 사람이 "당신 아들이 죽었어도 그런 얘기 나오겠냐고...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고" 무안을 줬었거든요
그냥 대구 경북 분들은 사람으로 안보여요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이 동석하여 저녁식사를 막 끝낸 식당에서였습니다. 부산 사태는 체제 저항과 정책 불신 및 물가고에 대한 반발에 조세저항까지 겹친 민란이라는 것과 전국 5대 도시로 확산될 것이라는 것, 따라서 정부로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는 것 등 본인이 직접 시찰하고 판단한 대로 솔직하게 보고를 드렸음은 물론입니다. 그랬더니 박 대통령은 버럭 화를 내시더니 “앞으로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 자유당 (4·19) 때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해 사형을 당했지만 내가 직접 명령을 하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하겠느냐”고 역정을 내셨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차 실장은 이 말 끝에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00만∼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을 함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어 김재규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압니다. 그는 절대로 말(言)만에 그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박 대통령은 군인 출신이고 절대로 물러설 줄을 모르는 분입니다. 더구나 10월 유신 이후 집권욕이 애국심보다 훨씬 강하여져서 국가 안보조차도 집권욕 아래에 두고 있던 분입니다. (제가 속으로) 이승만 대통령과 여러모로 비교도 하여 보았지만 박 대통령은 이 박사와는 달라서 물러설 줄을 모르고 어떠한 저항이 있더라도 기필코 방어해내고 말 분입니다. 4·19와 같은 사태가 오면 국민과 정부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질 것은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희생될 것인지 상상하기에 어렵지 아니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4·19와 같은 사태는 눈앞에 다가왔고 아니 부산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부마민중항쟁이 진행되는 동안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하에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는 강경론이 우세했다는 증언이 있다. 1978년 말부터 79년 10·26 전까지 박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한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회고록(‘하나님의 은혜’·2013년)에서 밝힌 내용이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130828/57265472/1
박정희 새마을운동만들어 잘살게되었디고 배웠는데
알고보니 만든이는 다른사람였죠
가난으로 벗어나게 해준 대통령 ㅡ
박정희아니었어도 우리나라는 충분히 발전할수 있었어요
월남전에 우리 국민들 파병시키고, 미국에서 보내온 국민들의 목숨값을 중간에서 갈취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병력이 충분하니 월남전에 한국군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대요.
근데 박정희가 밀어 붙여서 보냈습니다.
국민들을 전쟁터에 보내놓고는 생명수당을 갈취한겁니다.
미국 프레이저보고서에 나온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강간왕
https://m.ppomppu.co.kr/new/bbs_view.php?id=issue&no=320727
일본 천황 에세 충성서약한 일본놈 아니던가여
박 정희
일본 천황 에게 충성서약한 일본놈 아니던가요
박 정희
박정희 일가와 육영수 일가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와 부를 소유하고 있는지..
그들이 과연 박정희가 없었다면 소유할 수 있었을까요.
박정희의 공과가 있다는 말은 인정하지만,
공이 있다고 과가 묻힐 순 없죠.
독립군 때려잡던 친일매국노 박정희이자 군사구테타 독재자를 왜 미워하냐니..거기다 국민들 학살하려다 부하에게 총맞아 죽은 독재자를
와..저짝 사람들은 저러고 사나봐요? 브레인워시가 진짜 무섭네요.
질문 했으면 댓글 보셨겠죠?
왜왜
'24.8.16 2:22 AM (125.185.xxx.27)
박정희는 왜 미워하는지 이유 좀 알수 있나요?
이분 아니었으면 이만큼 못살았어요..
동남아처럼 돼서 다른나라로 매매혼 하고있을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구미에서 난 대통령이라서 싫어하는건가요?
윤은 욕먹을만한데...박정희는 왜
국민을 학살하려 했다고요? 박정희가?
찾아봐야겠네요
뭘 찾아봐요.ㅋㅋㅋㅋ
왜 김재규가 총으로 싸죽였는지 그 이유를 지금까지 몰랐어요?
125.185.님???
이왕 찾아보는거 부마항쟁부터 찾아보시구랴.
그 가수 유툽서 자기 아니라면서 웃던데
“앞으로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 자유당 (4·19) 때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해 사형을 당했지만 내가 직접 명령을 하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하겠느냐”고 역정을 내셨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차 실장은 이 말 끝에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00만∼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을 함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차 실장은 박정희의 최측근 차지철..
부산마산 시민들 학살하려고 하는걸 김재규 장군께서 총으로 싸죽여 못하게 막은거임. 안죽였음 북한꼴 나는거였죠. 박정희가 수십년 독재 해먹었을테니까.
박정희가 대통령 돼 했던 독재와 그것을 지키기 위한 극악한 일들과
일본 왕에게 견마지로 즉, 개와 말처럼 일하겠다
충성 편지 썼던 독립군 때려잡던 일본군 장교였다는 내용 봐도
설마 그럴리가
좌파들이 만들어낸 내용이겠지.
이러고 말겠죠.
진짜 세뇌가 무서운 겁니다.
나이 들어 바뀌지 않는 사람은 패스하세요.
몸에서 사리 나옵니다.
썩은물 고여있는 연못에 암만 깨시민 한바가지 부어봐야
썩은물이 정화될까.,
어우..이제는 징그러운 대구...
징그러운 쪽바리 국짐새끼들...
거기는 우리나라 아니에요.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어요.
노인들만 그러냐구요?
아뇨!! 젊은애들도 똑같아요.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것 같은 이상한 동네임.
그래놓고 지역차별 하지 말라니..
유난떠는 사람집합소.
별나요
출세를 위해서라면 공산당도 될 수 있었고 일황에 혈서도 쓸 수 있었던 기회주의자
박정희덕분에 잘살게 되었다며 자랑하던 경제발전 5개년 계획도 사실상 제2공화국 장면정부의 것이었죠. 그말인 즉, 박정희 쿠데타로 장면정부가 엎어지지 않았어도 진행되었을 경제발전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