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입니다.
저도 어김없이 늙어가고있지만, 약국에서 일 하다보면 고령사회가 오면 얼마나 갑갑하고 활력없는 사회가 될까 걱정스러워요.
사화 전반까지 가지 않더라도 제가 일하는 일터에서만 봐도 그래요.
근처에 내과가 없어서 노인 환자가 좀 적은 편인데도
업무 흐름을 마비시키는 노인 환자가 하루 몇 명씩 꼭 있어요. 귀도 안 들린다 눈도 어두워서 글씨 써줘도 안 보인다면서 절대 보청기는 안 끼고 다니는 분, 아무리 설명해도 안들려~안 보여~ 소리만 하시니 진이 다 빠져요(병원 진료는 어떻게 받으셨는지 궁금). 그러고는 약값 백원단위는 깎아달라고, 오실 때마다 ;;;; 혼자 환자 20인분치 시간과 기운을 뺏어가는 분이 말이죠.
의약분업 된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병원 갔다오기 귀찮으니 전문의약품 그냥 달라고, 돈 주면 안 되는 게 어딨냐고 그러는 분은 워낙 자주 있고.
받은지 한 달 돼가는 처방전 들고 와서, 이거는 못 해드린다, 병원 가서 이래저래 해달라고 물어봐라 해도 들은척도 않고, 내가 여기 십년 단골인데 나한테 서운케 한다며 역정내는 분,
뒤에 약 받을 사람들 줄 서 있는데 투약구에서 가방 다 쏟아서 정리하고 있는 분들은 워낙 자주 있어서 이젠 덤덤해질만도 한데 볼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요.
연세가 많아지니 남들이 나를 속이려한다는 의심이 생기는지, 계속 의심하는 말로 꼬투리 잡는 분
문의 전화해서 궁금한 것만 딱 물어보시면 좋을텐데 30년 전 아팠던 썰부터 푸시는 분(결국 질문의 요지는 안약을 몇 번 넣느냐는 거였어요. 안약통에 라벨 붙여서 여러번 설명해드린 것).
다른 손님에게 설명중인데 옆에서 갑자기 끼어들어 화장실 어디냐, 비닐봉지 달라, 아까 내 약 몇번 먹는다고 했느냐 하는 분들은 99% 노인분들이네요.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몸 동작이 느려지고 설명 들어도 잊어버리고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주위 상황 전혀 살피지 않고 극도로 이기적이 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될까봐 겁이 덜컥 나요.
물론 온화하고 사려깊은 노인분들도 많으시지만 진상부리는 한 분이 거의 일당백 하시니.
고령사회가 되면 이런 분들의 비중이 계속 늘어난다는 얘긴데, 얼마나 사회적으로 답답하고 활력이 사라지고 짜증스러운 상황이 증가될지...
어제도 요양원의 90대 부모님 약을 타러 오시는 70대 노인을 보며, 이삼십년 후 내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나마 당신 힘으로 걸어서 병원 다니는 분들이면 정신 신체 건강이 좋은 편에 드는 분들인데도 저렇다면, 상황이 더 안 좋은 분들은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까 싶기도 하고요.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날들입니다. 일단은 나 스스로 사는 동안 정신줄 꽉 붙들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