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시트콤찍은 이삿날

.... 조회수 : 1,626
작성일 : 2024-07-10 14:19:38

지난 주말 아파트 단지에 이사 차가 들어온 걸 보니 몇 년전 제가 이사한 날 에피소드가 생각나 적어봅니다. 묵은 짐들은 다 버리고 옷가지와 책, 그릇 정도만 있는 단촐한 이사라 사람도 많이 부르지 않았고, 일하시는 분들도 무난해서 이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어요. 문제는 짐이 거의 다빠지고 집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아줌마가 마지막 점검을 하러 들렀을 때부터 시작되었어요.

그 집에는 입주 초기부터, 그러니까 대략 15년 정도된 오래된 블라인드가 곳곳에 있었고, 집주인이 한 거라 당연히 그대로 두고 나가려 했는데,  집주인 할머니도 아닌 부동산 아줌마가 저보고 블라인드며 커튼봉이며 다 철거를 해달라는 거에요.  제것이 아니고 원래 여기 있던 거다 했더니, 그건 아는데 사람 쓰는 김에 저것도 같이 시키라는 거에요. 이미 이사센터 아저씨들은 아래로 짐을 다 내려가 있고 남은 건 뒷정리 뿐이었는데, 제 것도 아닌 일 때문에 다시 불러들여 일 시키는 건 말이 안된다 싶어 거절했어요. 그건 알아서 하시라고. 그랬더니 아줌마가 그거 하나를 못해주냐는 식으로 따지고 드는 거에요. 거절과 우기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엔 집주인 할머니가 비데 문제를 들고 따지기 시작해요. 원래 설치되어 있던 비데는 누렇고 오래되 더러워져 제 돈으로 신형 비데를 사서 2-3년 사용하다 그건 두고 가려고 그대로 뒀는데, 할머니가 그걸 예전 걸로 바꿔달라고 하는 겁니다.

남편이 그거 넘 낡은거고 이게 몇 년 안쓴 거라 더 나을 거라고 해도 할머니가 꼭 예전 거로 돌려놓고 가래요. 다행히도 혹시 몰라 버리지 않고 창고에 보관해 둔 썩어가는 비데를 다시 설치해드렸는데, 이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던 뒷정리 하던 직원 아주머니가 한 말씀을 하세요.

"할머니, 거 적당히 하이소."

"당신 뭐꼬?"

아주머니가 던진 그 한 마디를 시작으로 제 눈 앞에서는 할머니와 직원 아주머니가 엉겨붙은 육탄전이 펼쳐지고 맙니다. 남편과 부동산 아줌마가 뜯어 말리는 장면이 슬로우 비디오로 연출되면서, 이거 꿈 아니고 실화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ㅎ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하시라구요!!!!" 라고 고함을 쳤고,  마치 시트콤에서 보는 것처럼 둘이 놀라 저를 쳐다보며 소동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더욱 놀랐던 건 다 정리하고 마지막 부동산에 모여 계약을 마무리 지을 때 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아줌마의 너무도 평온한 태도였습니다. 그 난리가 있었는데도 언제 그랬냐는듯 차분한 목소리로 저한테 차 마시고 가라고 (심장이 아직도 벌렁벌렁한데요?) 심지어는 가서 잘 살라고 (네? 진심이세요?) 하는 덕담까지 해주는데, 이거 몰카야? 라는 생각마져 들더군요.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 이삿날 우당탕 시트콤을 찍고 났더니 그날은 무슨 정신으로 이사를 마쳤는지 모르겠더라구요. 

 

 

 

IP : 58.226.xxx.130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4.7.10 2:32 PM (117.111.xxx.250) - 삭제된댓글

    시트콤이 아니라 봉준호 영화의 한 장면 같네요.ㅋㅋㅋ
    저도 몇 번 남의 집 살이하다가 이사를 다녔는데
    다행히 꼬장 피우는 주인은 없었어요.
    근데도 이사하는 당일까지 보증금은 받을 수 있을까
    콩닥대며 비위 맞추려고 에휴…

  • 2.
    '24.7.10 3:04 PM (211.109.xxx.17)

    ㅎㅎㅎㅎ 진짜 이건 영화인데요.
    너무 웃겨요. 그 난리를 피워놓고
    잘 살라고 덕담이라뉘~

  • 3. eHD
    '24.7.10 4:07 PM (211.234.xxx.253)

    ㅎㅎㅎ 이거 몰카야?
    빵터졌어요

  • 4. 김영하의 이사
    '24.7.10 4:17 PM (210.99.xxx.89)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 중에 이사 라고 있어요. 여유 시간 되면 너튜부 검색하세요. 책 읽어주는 너튜버가 아주 재미나게 전해줍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20723 신체 컴플렉스 9 ** 2024/08/16 1,421
1620722 레몬수 토마토 등 8 ㅇㅇ 2024/08/16 1,287
1620721 실외기만 구입해보신분 계셔요? 1 11 2024/08/16 652
1620720 미국주식 얘기가 나와서 6 ,,,, 2024/08/16 2,132
1620719 요양보호사 없어지나요? 10 ... 2024/08/16 4,774
1620718 스벅에서 유창하게 영어통화하던 40대후반 추정 여성 연봉이..... 36 .... 2024/08/16 20,809
1620717 김대호 아나운서의 mbc노조 유튜브채널 홍보영상 18 ㅇㅇ 2024/08/16 4,683
1620716 91세 아버지 6 샬롯 2024/08/16 3,908
1620715 완전 싼차인데 자차 뺄까요? 6 ㅇㅇ 2024/08/16 1,592
1620714 잇몸이 많이 부어있대요~~ 13 수지야 2024/08/16 2,242
1620713 저 일시작하고 쉬는날 침대에서 일어니질 못해요 병인가 2024/08/16 705
1620712 엄마 경계선 지능장애라고 말하는 아들 33 자식 2024/08/16 5,586
1620711 고구마순 김치 시켜 볼까요? 18 고뇌 2024/08/16 2,107
1620710 유리물병 뚜껑의 검정색 때는 어떻게 제거하나요? 4 흑흑 2024/08/16 626
1620709 어제 광복절 기념으로 태극기 들고 다녔네요 2 ..... 2024/08/16 408
1620708 새 독립기념관장: 세금5억 횡령했고 샘물교회 집사 출신 6 2024/08/16 1,604
1620707 예비시댁이 넘 맘에 안들어요 27 애플 2024/08/16 8,221
1620706 어제 박해진을 티비로 보고 23 123 2024/08/16 6,501
1620705 습도가 관건이였어요 5 ooo 2024/08/16 3,498
1620704 하나하나 다 물어보는 상사 1 eeee 2024/08/16 918
1620703 잘게 잘라진(찢어진) 황태채 파나요? 8 주니 2024/08/16 892
1620702 전국 대학교 연도별로 입결 볼 수 있는 곳? 2 2024/08/16 789
1620701 세척 쉬운 에어프라이어 좀 알려주세요 6 .... 2024/08/16 754
1620700 곧 작은 평수로 이사 계획있어요 8 알려주세요 2024/08/16 2,131
1620699 어제 밤부터 공기청정기가 미친듯이 돌아가요 .. 2024/08/16 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