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시트콤찍은 이삿날

.... 조회수 : 1,651
작성일 : 2024-07-10 14:19:38

지난 주말 아파트 단지에 이사 차가 들어온 걸 보니 몇 년전 제가 이사한 날 에피소드가 생각나 적어봅니다. 묵은 짐들은 다 버리고 옷가지와 책, 그릇 정도만 있는 단촐한 이사라 사람도 많이 부르지 않았고, 일하시는 분들도 무난해서 이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어요. 문제는 짐이 거의 다빠지고 집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아줌마가 마지막 점검을 하러 들렀을 때부터 시작되었어요.

그 집에는 입주 초기부터, 그러니까 대략 15년 정도된 오래된 블라인드가 곳곳에 있었고, 집주인이 한 거라 당연히 그대로 두고 나가려 했는데,  집주인 할머니도 아닌 부동산 아줌마가 저보고 블라인드며 커튼봉이며 다 철거를 해달라는 거에요.  제것이 아니고 원래 여기 있던 거다 했더니, 그건 아는데 사람 쓰는 김에 저것도 같이 시키라는 거에요. 이미 이사센터 아저씨들은 아래로 짐을 다 내려가 있고 남은 건 뒷정리 뿐이었는데, 제 것도 아닌 일 때문에 다시 불러들여 일 시키는 건 말이 안된다 싶어 거절했어요. 그건 알아서 하시라고. 그랬더니 아줌마가 그거 하나를 못해주냐는 식으로 따지고 드는 거에요. 거절과 우기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엔 집주인 할머니가 비데 문제를 들고 따지기 시작해요. 원래 설치되어 있던 비데는 누렇고 오래되 더러워져 제 돈으로 신형 비데를 사서 2-3년 사용하다 그건 두고 가려고 그대로 뒀는데, 할머니가 그걸 예전 걸로 바꿔달라고 하는 겁니다.

남편이 그거 넘 낡은거고 이게 몇 년 안쓴 거라 더 나을 거라고 해도 할머니가 꼭 예전 거로 돌려놓고 가래요. 다행히도 혹시 몰라 버리지 않고 창고에 보관해 둔 썩어가는 비데를 다시 설치해드렸는데, 이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던 뒷정리 하던 직원 아주머니가 한 말씀을 하세요.

"할머니, 거 적당히 하이소."

"당신 뭐꼬?"

아주머니가 던진 그 한 마디를 시작으로 제 눈 앞에서는 할머니와 직원 아주머니가 엉겨붙은 육탄전이 펼쳐지고 맙니다. 남편과 부동산 아줌마가 뜯어 말리는 장면이 슬로우 비디오로 연출되면서, 이거 꿈 아니고 실화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ㅎ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하시라구요!!!!" 라고 고함을 쳤고,  마치 시트콤에서 보는 것처럼 둘이 놀라 저를 쳐다보며 소동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더욱 놀랐던 건 다 정리하고 마지막 부동산에 모여 계약을 마무리 지을 때 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아줌마의 너무도 평온한 태도였습니다. 그 난리가 있었는데도 언제 그랬냐는듯 차분한 목소리로 저한테 차 마시고 가라고 (심장이 아직도 벌렁벌렁한데요?) 심지어는 가서 잘 살라고 (네? 진심이세요?) 하는 덕담까지 해주는데, 이거 몰카야? 라는 생각마져 들더군요.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 이삿날 우당탕 시트콤을 찍고 났더니 그날은 무슨 정신으로 이사를 마쳤는지 모르겠더라구요. 

 

 

 

IP : 58.226.xxx.130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4.7.10 2:32 PM (117.111.xxx.250) - 삭제된댓글

    시트콤이 아니라 봉준호 영화의 한 장면 같네요.ㅋㅋㅋ
    저도 몇 번 남의 집 살이하다가 이사를 다녔는데
    다행히 꼬장 피우는 주인은 없었어요.
    근데도 이사하는 당일까지 보증금은 받을 수 있을까
    콩닥대며 비위 맞추려고 에휴…

  • 2.
    '24.7.10 3:04 PM (211.109.xxx.17)

    ㅎㅎㅎㅎ 진짜 이건 영화인데요.
    너무 웃겨요. 그 난리를 피워놓고
    잘 살라고 덕담이라뉘~

  • 3. eHD
    '24.7.10 4:07 PM (211.234.xxx.253)

    ㅎㅎㅎ 이거 몰카야?
    빵터졌어요

  • 4. 김영하의 이사
    '24.7.10 4:17 PM (210.99.xxx.89)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 중에 이사 라고 있어요. 여유 시간 되면 너튜부 검색하세요. 책 읽어주는 너튜버가 아주 재미나게 전해줍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23064 짜증나거나 감기들면... 항상 먹고 싶은게 스낵면.... 끊어야.. 4 ... 2024/08/24 2,065
1623063 방탄 슈가보면 하이브 대단하네요 23 ........ 2024/08/24 5,827
1623062 30년간 매달 300만원 받기 vs 30년간 165에 50 몸매.. 34 어느쪽 2024/08/24 6,452
1623061 오이피클 설탕안넣고 하면 맛이 없나요 3 .... 2024/08/24 1,370
1623060 경주 한우맛집 4 블루커피 2024/08/24 1,290
1623059 디에치방배 청약 하시나요? 7 ,,, 2024/08/24 2,349
1623058 훈제오리 할인 오리꽥꽥 2024/08/24 649
1623057 마음이라는 게 결국 비어져 나오더라고요 6 ..... 2024/08/24 3,601
1623056 눈치없는 홈플러스 /펌 18 2024/08/24 7,452
1623055 티비 유튜브 쇼츠화면에서 홈화면 전환방법 2 유튜브 2024/08/24 609
1623054 50후반 친구들과 뮤지컬 보고싶어요 12 뮤지컬 2024/08/24 2,875
1623053 오늘 황석영 작가 보면서 장길산 7 그책 2024/08/24 2,893
1623052 유리 플라스틱 스텐이 혼합된 양념통 버리기 2 ... 2024/08/24 927
1623051 노각을 소금에 절였는데 3 2024/08/24 2,091
1623050 황석영 작가님 대단하시네요 3 손석희의 질.. 2024/08/24 4,619
1623049 띠어리 데님이나 스커트 입어보신 분...사이즈 조언 부탁드려요... 4 직구 2024/08/24 1,231
1623048 식탁청소 어찌할까요 15 ㅡㅡㅡ 2024/08/24 3,006
1623047 꿈은 여행사진작가 인데 8 ㅇㄴㄹ 2024/08/24 1,040
1623046 후라이드 맛집 어디라고 보세요? 21 ㅇㅇ 2024/08/24 4,340
1623045 사춘기발광 언제까지인가요? 15 아오 2024/08/24 3,128
1623044 프랑스 1개월 머물예정인데 영어할까요 불어 할까요? 15 질문 2024/08/24 2,827
1623043 백설공주 어디서 하나요? 3 저기 2024/08/24 1,716
1623042 부산시 ‘위안부’ 사료, 둘 데가 없네 8 !!!!! 2024/08/24 1,268
1623041 빨리 안 먹을 치아바타를 냉동실에 넣는게 좋을까요? 10 .. 2024/08/24 1,665
1623040 자수전에 이어서, 이번에는 어디로 가볼까요 17 ... 2024/08/24 2,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