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시트콤찍은 이삿날

.... 조회수 : 1,649
작성일 : 2024-07-10 14:19:38

지난 주말 아파트 단지에 이사 차가 들어온 걸 보니 몇 년전 제가 이사한 날 에피소드가 생각나 적어봅니다. 묵은 짐들은 다 버리고 옷가지와 책, 그릇 정도만 있는 단촐한 이사라 사람도 많이 부르지 않았고, 일하시는 분들도 무난해서 이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어요. 문제는 짐이 거의 다빠지고 집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아줌마가 마지막 점검을 하러 들렀을 때부터 시작되었어요.

그 집에는 입주 초기부터, 그러니까 대략 15년 정도된 오래된 블라인드가 곳곳에 있었고, 집주인이 한 거라 당연히 그대로 두고 나가려 했는데,  집주인 할머니도 아닌 부동산 아줌마가 저보고 블라인드며 커튼봉이며 다 철거를 해달라는 거에요.  제것이 아니고 원래 여기 있던 거다 했더니, 그건 아는데 사람 쓰는 김에 저것도 같이 시키라는 거에요. 이미 이사센터 아저씨들은 아래로 짐을 다 내려가 있고 남은 건 뒷정리 뿐이었는데, 제 것도 아닌 일 때문에 다시 불러들여 일 시키는 건 말이 안된다 싶어 거절했어요. 그건 알아서 하시라고. 그랬더니 아줌마가 그거 하나를 못해주냐는 식으로 따지고 드는 거에요. 거절과 우기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엔 집주인 할머니가 비데 문제를 들고 따지기 시작해요. 원래 설치되어 있던 비데는 누렇고 오래되 더러워져 제 돈으로 신형 비데를 사서 2-3년 사용하다 그건 두고 가려고 그대로 뒀는데, 할머니가 그걸 예전 걸로 바꿔달라고 하는 겁니다.

남편이 그거 넘 낡은거고 이게 몇 년 안쓴 거라 더 나을 거라고 해도 할머니가 꼭 예전 거로 돌려놓고 가래요. 다행히도 혹시 몰라 버리지 않고 창고에 보관해 둔 썩어가는 비데를 다시 설치해드렸는데, 이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던 뒷정리 하던 직원 아주머니가 한 말씀을 하세요.

"할머니, 거 적당히 하이소."

"당신 뭐꼬?"

아주머니가 던진 그 한 마디를 시작으로 제 눈 앞에서는 할머니와 직원 아주머니가 엉겨붙은 육탄전이 펼쳐지고 맙니다. 남편과 부동산 아줌마가 뜯어 말리는 장면이 슬로우 비디오로 연출되면서, 이거 꿈 아니고 실화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ㅎ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하시라구요!!!!" 라고 고함을 쳤고,  마치 시트콤에서 보는 것처럼 둘이 놀라 저를 쳐다보며 소동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더욱 놀랐던 건 다 정리하고 마지막 부동산에 모여 계약을 마무리 지을 때 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아줌마의 너무도 평온한 태도였습니다. 그 난리가 있었는데도 언제 그랬냐는듯 차분한 목소리로 저한테 차 마시고 가라고 (심장이 아직도 벌렁벌렁한데요?) 심지어는 가서 잘 살라고 (네? 진심이세요?) 하는 덕담까지 해주는데, 이거 몰카야? 라는 생각마져 들더군요.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 이삿날 우당탕 시트콤을 찍고 났더니 그날은 무슨 정신으로 이사를 마쳤는지 모르겠더라구요. 

 

 

 

IP : 58.226.xxx.130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4.7.10 2:32 PM (117.111.xxx.250) - 삭제된댓글

    시트콤이 아니라 봉준호 영화의 한 장면 같네요.ㅋㅋㅋ
    저도 몇 번 남의 집 살이하다가 이사를 다녔는데
    다행히 꼬장 피우는 주인은 없었어요.
    근데도 이사하는 당일까지 보증금은 받을 수 있을까
    콩닥대며 비위 맞추려고 에휴…

  • 2.
    '24.7.10 3:04 PM (211.109.xxx.17)

    ㅎㅎㅎㅎ 진짜 이건 영화인데요.
    너무 웃겨요. 그 난리를 피워놓고
    잘 살라고 덕담이라뉘~

  • 3. eHD
    '24.7.10 4:07 PM (211.234.xxx.253)

    ㅎㅎㅎ 이거 몰카야?
    빵터졌어요

  • 4. 김영하의 이사
    '24.7.10 4:17 PM (210.99.xxx.89)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 중에 이사 라고 있어요. 여유 시간 되면 너튜부 검색하세요. 책 읽어주는 너튜버가 아주 재미나게 전해줍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22913 독도조형물 홀로그램으로 쏴버리면 어떤가요 7 .. 2024/08/24 669
1622912 육천만원 이십년 동안 갚으란 독촉 안 해 갚으면 인연 끊는다는 .. 25 지움? 2024/08/24 6,862
1622911 급해요 제가 접촉사고를 일으켰는데요 14 급질!! 2024/08/24 3,658
1622910 커피 테이크 아웃 하는데 15 oo 2024/08/24 3,029
1622909 예지원 소개팅 겁나 웃기네요 16 .. 2024/08/24 6,058
1622908 오른팔혈압 137,왼쪽은 119네요 2 혈압 2024/08/24 1,220
1622907 가구나 인테리어 잘 아시는 82님들 11 ㅇㅇ 2024/08/24 1,250
1622906 암은 7년간의 몸과 마음 혹사의 결과다? 14 ㅇㅇ 2024/08/24 6,072
1622905 인도 여행 중 납치된 한국 유튜버…"차 태워준다더니 약.. 12 .. 2024/08/24 6,263
1622904 방송에서 우리나라 2024/08/24 302
1622903 최사라의 그멘트 6 굿와이프 2024/08/24 3,641
1622902 마약수사 청문회에 튀어나온 대통령장모 최은순 이름 8 ... 2024/08/24 1,724
1622901 남자는 왜 와이프를 누나라고 안부를까요? 12 ㅇㅇ 2024/08/24 4,000
1622900 천장 에어콘에서 물이 떨어져요 4 ㅁㅁㅁ 2024/08/24 1,430
1622899 진중하고 멋있는 남자 나오는 로맨스 드라마 없나요? 18 지나다 2024/08/24 1,735
1622898 현재 권력순이 대기업 오너보다 대통령이 더 강한가요?? 10 ㅇㅇㅇ 2024/08/24 1,247
1622897 화재원인이 에어컨이라는데 11 00 2024/08/24 5,590
1622896 아무도없는 숲속에서 봤어요 11 2024/08/24 4,537
1622895 오페라 나비부인 봤는데요 9 2024/08/24 2,299
1622894 8년차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쓴글 보니 한숨만 나네요. 17 dbstjr.. 2024/08/24 4,085
1622893 와 사모님 이거 보셨어요? 3 ... 2024/08/24 2,854
1622892 독도기 계양 좋네요 4 .. 2024/08/24 834
1622891 동물병원에서 치과 치료 잘 하나요? 5 소중 2024/08/24 465
1622890 쉬즈미스 씨이즈는 9 옷을 2024/08/24 2,522
1622889 롯데온 거실화 쌉니다 8 ㅇㅇ 2024/08/24 1,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