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저도 관심 갖고 찾아봤었는데, 정학수 이야기도 그때 알았고
반촌은 조선 건국할 때 안향이 노비 백여명을 하사해 유교를 처음 받아들인 과정에서 잘 몰랐던 제사를 운영하는데
일을 하였던 노비들이었고, 여진족 노비들이었다는 말이 있어요.
여진족들은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북한의 어느 마을에 집단촌이 형성돼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희 고등학교 때 할아버지 한문선생님이 특이한 성씨셨는데 본인이 여진족의 후손이라고 처음 소개하실 때 말씀하셨어요.
반촌은 그들끼리만 살아서 말투도 약간 개성사투리가 남아있었다고 하고요
제가 한참 혜화동을 들락거려서 더 관심이 있었는데
혜화에서 성균관대 가는 큰 길이 대명거리라고 나중에 이들이 그곳에 정육점을 차려 정육점 거리가 형성됐고
부를 많이 축적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의 혜화초등학교 전신인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교육했고요
지금의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대거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냥 재미있게 들으시는 분들 있을까 하여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