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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오래전 우리가 살았던 집

곰돌이 조회수 : 4,056
작성일 : 2021-11-24 15:47:39
2003년도에 10평짜리 작은 반지하 빌라를 시작으로,
7번의 이사를 거듭했군요.
전부 전세였어요.
전세값은 인플레이션이 크게 적용되는 품목이었는지
다음에 이사가려고 보면 그때를 대비해서 열심히 모았는데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 허탈하게 만들더라구요.

7번의 릴레이식 이사를 시작할때
처음 우리가 살아야 했던집.
비가 오는 눅눅한날,
트럭이 부려놓고 간 냉장고와 서랍장들을
배치하고 청소를 마쳐놓고 텔레비젼을 보고있는데
갑자기 벽위를 기어가는 갈색 바퀴벌레를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앞에
가난하고 젊은 우리 두부부는 얼굴이 흙빛이된채
서로의 얼굴만 마주보았던 그 첫날.

때마침 밖에 비는 내리고,
반지하라, 열린창문으로 사람들 다리만 보이고
어떤땐 집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마주치기도 하는 날이
더 많았어요.

밤낮으로 켜고 살던 형광등은 자주 바꾸느라 바빴고.
생후 9개월된 아이는 먼지알레르기비염이 생겨
자주 병원을 오가야 했고,
그와중에, 오갈데없는 쓸쓸한 빌라내의 이웃들이
우리집을 자주 놀러왔어요.

한번오면 가지않는 사람들.
어떤땐 샤워하고 있는데도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는
2층의 나이많은 할머니.
3층 두딸엄마.
4층의 교회다니는 아줌마.
5층옥탑방.

그 4년간의 생활동안, 전 너무 가난했고
반지하창문으론 한번도 햇볕이 들지않아 어두웠어요.
바퀴벌레들은 연막탄을 몇차례 터뜨려도 소탕되지않았어요.
가끔 난전에서 꽃을 사와도 그 꽃들은 어두운 책꽂이위에서
시들어갔어요.
청소를 잘해도 늘 다음날이면 거미가 나타났어요.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눅눅하고 어두운 공기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 있다면
부엌싱크대 한켠에 놓여진 작은 채반에서 말라가는 접시와 컵들.
2리터 주전자.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스텐주전자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 집의 겨울은, 창밖으로 황량한 바람이 불고
인적이 일찍 끊어졌습니다.
그 골목길에 위치한 그 작은 빌라를 15년이 지난 지금도
만납니다.
한동네니까요.
왜소하고, 물이 샌흔적으로 군데군데 검은 자국이 흥건한집.
불켜지지않은 검은 창문이 아직도 그 지난 겨울날의
추위를 떠올리게 하는집.
공허한 검은 어둠이 드리워진 저 창문이 저절로
아가리라는 말이 떠올리게 하는집.

우리집에 아무때나 이웃들이 예고없이 들이닥치고
아이가 열이 나서 입술이 하얗게 바랠때에도
잡담을 나누면서 가지않던 서로가 외로웠던 집안의 풍경들.

오늘은 먹을것이 없는데요.
벨이울리고, 현관문밖에 서있는 이웃들의 얼굴앞에
진심 난처한 젊은 날의 가난한 나.

그곳의 뼈저린 가난과, 또 추운 겨울날이
거기 여전히 이젠 빈집으로 남아있는것을 보면서
이런 시 늘 생각나네요.

가엾은 내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는
시.
정말 거기에 가엾은 내사랑은
없는데
그 컴컴한 (아가리)를 벌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저 빈집은, 볼때마다 송연해집니다. 뒷통수가요..




IP : 1.245.xxx.138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1.11.24 3:50 PM (125.190.xxx.212) - 삭제된댓글

    글을 참 그림같이 쓰셨네요........

  • 2.
    '21.11.24 3:54 PM (58.227.xxx.205)

    뭔가 무서워요. 그 컴컴한 반지하방이..

  • 3. 마키에
    '21.11.24 3:57 PM (175.210.xxx.89)

    소설처럼 잘 쓰셨어요
    스산했던 그 시절의 느낌을 글을 보는 제가 다 느껴질 정도로요
    지금은 이십년이 거의 다 지났는데 잘 살고 계신가요
    자주 찾아오는 이웃들이 짐이었는지 위안이었는지 모를 일이네요
    위안이었음 좋았을텐데...

  • 4. ......
    '21.11.24 4:00 PM (125.190.xxx.212)

    글을 그림같이 쓰셔서 머릿속으로 그대로 그려졌어요.
    지금은.. 바퀴도 없고 거미도 없는 밝고 따뜻한 집에 계신거죠?
    지금도 누군가는 그 집에 살고 있겠죠......

  • 5. ....
    '21.11.24 4:02 PM (222.97.xxx.194) - 삭제된댓글

    글 잘 쓰시네요
    언젠가도 비슷한 주제로 쓰셨었죠..
    거기가 어디일까요
    저도 가보고 싶네요..
    빈집이나 폐가를 보면 늘 궁금해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또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 6. 이글보니
    '21.11.24 4:04 PM (118.221.xxx.161)

    20년전 제가 살았던 재개발**구역 다세대 빌라가 생각나네요, 바퀴벌레도 그렇고 축축한 공기에 피부염을 앓던 아이하며, 참 흡사합니다
    그때 무서웠던 것이 내가 이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면 어떻하나,,하는 공포에 시달렸어요
    동네 전봇대마다 일수광고지가 붙어있었고, 몰레버린 쓰레기들이 쌓여있었어요, 천정에서 누수되던 물때문에 형광등도 깜빡깜빡할때 있었고
    다행히 거기를 벗어났고 제가살던 빌라는 싹 철거되어 지금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더군요, 엄청비싼;;;

  • 7. ㅇ.ㅇ
    '21.11.24 4:05 PM (119.192.xxx.240)

    자주찾아오는 이웃이 반갑지 않았던거같은데 왜 들어오게 하셨어요?
    저도 예전에 구파발. 서울의 시골동네. 현관문을열면 골목길. 여름에 더워서 문을열오놓으면 동네사람들이 기웃기웃들여다보고. 애기본다고 동네꼬마들들어오고. 교회다니라고 하고...90년후반 거긴 70년대 같던곳. 동네 몇안되는 양옥집. 대문없는 1층. 단칸방.

  • 8. ㅇㅇ
    '21.11.24 4:13 PM (211.196.xxx.185) - 삭제된댓글

    소설 연습하고 반응보는것 같은 글이네요

  • 9. ,
    '21.11.24 4:32 PM (124.54.xxx.115)

    80년대 소설식으로 쓰셨네요.

  • 10. 원글
    '21.11.24 4:39 PM (1.245.xxx.138)

    전 소설을 쓴게 아니고요^^
    이런 계절에 우리가 살았던 첫집에 대한 그 기억들이 지금도, 박제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쓴거에요.
    그 공포감은 어디에서 기인한것이었을까에 대해 지금도 그집을 보면서 알수가 없었는데
    어쩌면, 그 컴컴하고, 누수때문에 껌벅거렸던 형광등이나 욕실에서 울려퍼지던 그 물떨어지는 소리들
    말고도 정말 제글의 댓글속에서처럼 이집에서 벗어나지못하면 어떡하나 라는 공포였을까.
    저도 그집이 차라리 재개발되어 없어지면 좋겠는데, 여긴 재개발구역도 아니고,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빌라여서,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버린 그 창문을 보면 소환이 되어지죠.
    누수된 천장때문에 형광등이 껌벅거리고, 그 누수되는 범위가 넓어지는데도 주인아줌마가
    고치려고 들질않아 속썩었던것들에 대해서요.

  • 11. ㅇㅇ
    '21.11.24 4:43 PM (211.196.xxx.185) - 삭제된댓글

    지금은 싹~ 다 고쳐서 잘 살고 있을거에요 걱정마세요 자기연민은 건강에 안좋아요

  • 12. 원글
    '21.11.24 4:45 PM (1.245.xxx.138)

    지금도 고쳐지지않고, 그상태 그대로 있어요,,
    빈집으로..

  • 13. ㅇㅇ
    '21.11.24 5:05 PM (39.7.xxx.52) - 삭제된댓글

    저와비슷
    저는 5층짜리 작은아파트의 5층요
    옆집의 할머니가 자주 볠을눌렀지만
    저는 집안으로 안들였어요
    어린새댁이라도 은연중
    좀그런게 있었나봐요
    어리다고 앝보이지 말아야지 ..

  • 14. 어머
    '21.11.24 5:11 PM (1.242.xxx.189)

    작가님 아니신지?

  • 15. ?
    '21.11.24 8:16 PM (39.7.xxx.174) - 삭제된댓글

    2 3 4 5층 사람들이 죄다 원글님집으로 모여든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먹을것이 없어서 이웃을 못들인다는것은
    얻어먹는 이웃들이라는건가요?

  • 16. .....
    '21.11.24 8:39 PM (122.35.xxx.188)

    왜 말을 못해요, 말을...
    내 새끼가 열이 나서 입술 색이 변하면 이웃에게 가달라고 말을 하고 애에게 조치를 취해 주어야죠.
    이웃이 안 간다고 열나는 애 옆에 두고 그 사람 갈 때까지 기다리는 엄마도 있나요.....
    입두었다 무엇합니까...
    아무리 자식이지만, 사과해야죠. 지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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