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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 이야기

ㄴㄷ 조회수 : 3,529
작성일 : 2020-12-28 10:26:16
민들레국수집 이야기

저는 22살, 1976년에 천주교 수도원에 들어가서 25년을 살다가 환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늦게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러다보니 호칭이 곤란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수사'라고 부르면 저는 정색을 하고 '아닙니다. 저는 환속한 사람이라서 수사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라고 설명을 해야 합니다. 저는 사장도 아닙니다. 코딱지만한 민들레국수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수집 주인장'으로 불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대표라고도 하고요. 아무래도 주인장 나부랭이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신부는 제가 수사라고 불린다며 부당하다고 인천주보에 글을 싣기까지 했지요. 저는 절대로 수사가 아닙니다. 그냥 늙은이입니다.




저는 25년간 살던 수도원을 나와서 처음에는 출소자 형제들은 위한 "겨자씨의 집"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노숙하는 이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을 열게 되었습니다. 동인천역 앞에서 어떤 단체가 무료급식을 하는데 사람을 길게 줄 세워 놓고 또 긴 시간 설교하고 그런 다음에 밥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라면 배고픈 사람들을 어떻게 대접하실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밥보다 우선이 사람대접일 것 같아서 조그만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왜 민들레라고 이름지었나 하면요. 이름이 예뻐서입니다. 개나리, 채송화, 나팔꽃, 민들레... 민들레국수집. 이름이 참 예쁩니다.

민들레국수집 간판은 흰색 바탕에 노란 글씨...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간판이란 모름지기 잘 보이고 눈에 확 띄게 만드는 법인데. 자본주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익이 아니라 나누는 것. 나누고 섬기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등이 선착순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민들레국수집은 세상과 다르게 꼴찌가 선착순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은 꼴찌부터 들어간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식당은 좁고 손님은 터무니없이 많습니다. 줄을 서면 언제 밥 한 그릇 먹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꿨습니다. 제일 배고픈 분이 먼저 먹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서로 배려하고 고마워 하고 남을 먼저 생각합니다. 어느새 줄이 없어집니다. 모두가 배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몇 가지 터무니없는 원칙이 민들레국수집에 있습니다. 그것은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을 흉내낸 것입니다.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프로그램 공모를 하지 않는다.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부자들이 생색을 내면서 주면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임대를 하거나 무상임대를 해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또 겨자씨의 집과 민들레의 집과 민들레 꿈 공부방과 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운영했습니다. 건물주의 욕심이 끝이 없었습니다. 계속 월세를 올려달라는 것을 견디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슬픔인 것 같습니다. 무상 임대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현동에 있었던 민들레희망지원센터와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은 무상임대였습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도 생겼습니다. 사실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은 억울한 면도 있습니다. 인천교구와 상관이 없는 일인데도 가재는 게 편이라 다투기보다는 포기하는 것이 제일 합당한 방법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소유권 문제로 교구와 다투는 건 꼴사나운 일이지요. 그리고 덕분에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다시 하면 되니까 새옹지마입니다.

우리 노숙 손님들이 세탁과 샤워를 하고, 낮잠도 좀 잘 수 있는, 휴게실 겸 인터넷과 책도 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 있는 허름한 2층 단독 주택 하나를 2015년에 겨우 마련했습니다. 금융기관에 대출도 받았습니다. 참으로 선의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민들레희망센터"를 다시 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부가 찾아와서 건물 등기를 누구 명의로 했는지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식당을 열고 지금까지 숱한 고비가 있었습니다. 수사생활을 그만두고 환속한 것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후회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환속했기에 터무니없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고요. 무시와 천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가장 좋고 확실한 길은 가난이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에 있을 때도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다니면서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장기수 형제들을 도와 왔습니다. 지금도 매달 한번 이상 경북 청송에 있는 경북북부 교도소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틈이 나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가족과 인연이 있는 장기수 형제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또 매달 영치금도 조금씩 나누고요. 그리고 오갈데 없는 출소한 장기수였던 형제들과도 겨자씨의 집에서 몇 명이 함께 살기도 했습니다만 한 번 크게 실패하고 요즘은 조금 몸을 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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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에게 밥만 준다고 모든게 해결되느냐,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말씀들을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밥은 당연히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합니다. 그리고 혼자서 잘 살려면 지금처럼 노숙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고 일등만 살 수 있는 헬조선,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나보다 더 중요한 남이 있다는 것을 체험해야 노숙하는 분들은 스스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살려면 이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하지요. 민들레국수집 17년을 꾸려오면서 "사람이 희망"이라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노숙하시는 분에게 얻어 맞기도 하고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터무니 없는 말도 많이 들었지요. 심지어는 제가 청송교도소 출신의 조직 폭력배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또 출소자들도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는 일이 허다하지요. 머리 검은 짐승은 도와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또 지칠만도 합니다만 재미있기도 합니다. 가슴 뿌듯한 일도 많습니다.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민들레국수집 벽에는 이런 글이 적힌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예수살이 운동의 모토입니다. 또한 민들레국수집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서영남

ㅡㅡㅡㅡㅡㅡ
연말에 후원처찾으시는 글들이 좀 있어서 민들레국수집 추천하려
글올려요
저도 매번후원해야지. 그러다 잊어버렸는데
후원계좌뒤져 소액이라도 매달후원하려구요~
IP : 175.214.xxx.205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897
    '20.12.28 10:38 AM (43.230.xxx.79)

    저도 오래전부터 자동이체로 후원 하는 곳이에요! 기업이나 단체에는 기부를 안하려고 찾다가 이곳에 후원합니다. 얼마전부터는 코로나땜에 노숙자를 위한 길에서 음식 서비스 하는 여러곳이 운영을 못해서 한끼도 제대로 못드시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 2. ㅇㅇ
    '20.12.28 10:41 AM (180.230.xxx.96)

    세상엔 참 이렇게 오롯이 희생 봉사만을 하는사람들이 분명 있네요
    근데 천주교 신자이지만 따지는 신부님이나 교구의 가재는 게편이란
    글에는 씁쓸하네요

  • 3. ㅡㅡ
    '20.12.28 10:44 AM (122.36.xxx.85)

    민들레 국수집 블로그에요.
    https://m.blog.naver.com/syepeter
    유투브에 영상들도 제법 있더라구요.

  • 4. ..
    '20.12.28 11:07 AM (116.39.xxx.71)

    예전에는 새비누, 새치약 이런것도 보내면
    오시는 분들께 나눠드린다고 했던거 같은데
    지금도 받아주실까요?

  • 5. 원글님
    '20.12.28 11:29 AM (180.68.xxx.100)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6. 00
    '20.12.28 11:52 AM (211.196.xxx.185)

    좋은일 하시는데 왜 교구나 신부님들께 원망이 많으실까요.. 좀 실망이네요 교구에서 할만한 말들 했구만 좋은일 한다는 자의식이 너무 강하신듯 합니다

  • 7. 인간극장
    '20.12.28 11:59 AM (125.189.xxx.41)

    민들레국수 얘기 있어요..
    제목이 기억안나는데
    안보신 분들 함 봐보셔요..
    멋지신 분...

  • 8. 오늘
    '20.12.28 12:37 PM (211.177.xxx.223)

    저도 몇년 전에 1주일에 한번씩 설거지 봉사 일년 다녔습니다. 인천교구의 모 신부가 엄청 괴롭혔습니다.
    아무소리도 안하시다가 겨우 이제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분은 제 생각에는 환생하신 예수 아니면 부처라고 전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입니다,

  • 9. 오늘
    '20.12.28 12:44 PM (211.177.xxx.223)

    절대로 좋은 일 한다는 의식이 있거나 그런 분 아납니다. 하도 우리가 위선자들에게 뒤통수를 많이 맞아서 일단 정말? 하고 보는 그런 것은 있지요.

  • 10. 저도
    '20.12.28 12:49 PM (125.139.xxx.241)

    후원하는 곳입니다
    그냥 자동이체로 후원만 했지 인천교구의 어떤 신부님이 태클을 거는지는 잘 몰랐군요
    왜 민들레국수집에 찾아가서 자꾸 딴지를 거실까요? 거참..
    인간극장에서 처음 뵈었고 그 분의 선한 영향력에 감동 받아 바로 후원 결정한지가 어언 10년이 되었네요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곳이죠 더 많은 분들이 후원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11. --
    '20.12.28 2:20 PM (122.36.xxx.85)

    자의식 좀 가져도 될만하다 싶게, 좋은일 하고 계시는데요.
    내요을 잠깐 들여다봐도, 참 어떤 마음이면 같은 사람으로서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싶어요. 정말 존경합니다.

  • 12. ㅇㅇㅇㅇ
    '20.12.28 2:58 PM (202.190.xxx.0)

    잃을게 없으면 두려울것이 없고 그냥 포기도 됩니다. 명분다툼 하고 싶음 하고 안 하고 싶은 안 해도 되고요. 안 하는 쪽을 택하셨나 보네요. 그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시간에 다시 열어서 어떤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요. 명분다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안하는것도 지지합니다.
    운영자분? 사장님? 건강하셨으면 좋겠네요.

  • 13.
    '20.12.28 8:14 PM (1.250.xxx.169)

    민들레국수집 후원계좌알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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