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밥한번 먹자,
라는 말이 들으나 마나 한 인사말이 되어버렸잖아요.
저란 사람이 너무도 고지식한 사람이다보니,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말을 진심으로 알아듣고
그날 우연찮게 만났던 상황과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각인이 되어 진심으로 기다리고 연락도 해봤는데
열에 여덟은 기약없던 찰나에 지나지않던 해프닝이어서
이미 기억속에서 지워져가고 있던 중이었더라구요.
그러다가 어느날,
늦은밤 심야 토크쇼에서
한 개그맨이
언제 밥한번 먹자라는
말은 책임감없는 먼지같이 가벼운 인사니까
맘에 둘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는거에요.
가끔, 그 누구도 해주지않는 말을
우연찮게 책에서 혹은 텔레비젼에서
만나게 되요.
그리고 예상치못했던 그 일들은,
꽤 오랫동안 또 맘속에 또렷하게 남아 잊혀지지않아요.
생각해보면, 늘 저는 쓸쓸하고 한가한 사람이었어요.
폭력적이고 알콜중독자로 평생을 살았던 아빠와,
늘 히스테릭했던 엄마의 기분은 팔색조처럼 변화무쌍하고
자식이 장대비를 맞고 돌아오든말든, 내일의 준비물을
걱정하느라 잠을 못이루거나, 학교에서 왕따처럼 홀로
지내고 있는 외로움에 대해선 전혀 헤아릴 아량을 갖추질 못했어요.
유년시절의 저는 지독히 가난하고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부모에게서든, 선생님에게서든, 급우들에게서든,괄시받고 미움받으며 지냈고
가장 예뻤을 20대에는, 객지의 회사를 다니거나 혹은 퇴사하거나
30대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혹은 봄비가 세차게 오는 늦은밤,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달려가기도 하고
좁은 반지하방에서 분유를 사가지고 올 남편을 기다리기도 하고.
그런 남편이 점점 화를 내고, 제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으면서
아무도 몰래 눈물이 고일때,
빨래가 말라가듯이 그렇게 제 감정도 데면데면해지고
더 이상 남편에게 소소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지내요.
제가 제일 부러운 건,
아내에게 잘해주는 남편이 부러워요.
슬픔이 다가오면 나는 뒤로 한발,
기쁨이 다가오면 나는 앞으로 한발,
이렇게 조율하며 살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어릴때부터의 저는 부모님에게조차 괄시만 받고 지냈어요.
1년동안 지냈던 친척집에서도 저는 귀찮은 짐덩어리였어요,
주머니에 먼지밖에 없던 제 20대는 가난했고요,
기차를 타고 멀리 벚꽃도 보러갔지만 그 핑크빛 세상에서 가난한
제 방으로 돌아오는 날들이었어요.
30대는 사랑만으로도 충분할것 같은 결혼이
가난함과 기타 여러 여건으로 인해 제게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퇴색한 사랑의 민낯을 보게 되었고요.
40대는 이제 사람을 믿지않아서 그 어느 솔직한 말도 내놓을수없는
친구한명 만들어놓지않은 사람이에요.
그러기까지 밥한번 먹자라는 말을 진심 기다렸던 때를 여러번 놓치고
실망하고 난뒤의 일들이죠.
그 유년시절처럼 저는 외롭고 한가한 날들이에요.
그러나 제게는 절 바라보는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는 쓸쓸한 저를 이해하더라구요.
가만히 다가와 제 등에 기대고 앉은 아이의 작은 체온이 많은 위안이
되거든요.
분명 뭔지는 모르지만, 제게도 좋은 날 올거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