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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님 페이스북.-1

공감 조회수 : 2,184
작성일 : 2020-04-16 17:26:34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언론매체들이 정치학자나 정치 평론가들의 전문적 평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들 경청할 만한 이야기지만,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향후의 ‘역사적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개요를 담기에도 터무니없이 짧지만 SNS에 올리기에는 긴 글을 몇 꼭지로 나눠 올릴까 합니다. 물론 순전히 제 개인 의견일 뿐이라서 한국 역사학계 전체에서는 ‘특이 소견’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 이후로는 당분간(아마도 꽤 오랫동안) 정치 관련 글은 쓰지 않으려 합니다.

1. 중도층과 밭갈기

저는 프로야구에 관심을 끊은 지 꽤 오래 됐습니다. 류현진, 추신수 말고 아는 선수 이름도 없고, 작년에 어느 팀이 우승했는지도 모릅니다. 야구 경기장에 안 가는 것은 물론, TV 중계도 안 봅니다. 당연히 누가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고 물으면 “관심 없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담아둔 팀은 있습니다. 40년 전 프로야구 개막 때부터 몇 년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를 응원했었고, 그 관성 때문에 지금도 누가 집요하게 물으면 두산이라고 답합니다. 당시 OB 베어스를 응원한 이유는 고향 연고팀이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다섯 살 때 떠난 고향이지만 지역 연고의식은 이렇게나 강력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현재 50대 이상 서울 사람들 태반은 자기가 ‘서울 사람’이자 ‘고향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역적 이중 정체성’은 1960년대 급속한 도시화가 낳은 산물입니다.

프로야구팀 응원보다 더 강력한 정체성 구성 요소가 정당 지지입니다. 일단 어떤 정당과 자기 사이에 주관적 ‘연계’를 맺은 사람은 거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아무리 못해도, 홧김에 경기를 안 볼지언정 라이벌팀 응원으로 돌아서지는 않는 게 사람 심리입니다. 정당 지지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른바 ‘중도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마음속에 지지 정당이 있으나 누가 물으면 “관심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예 투표장에 안 가고, 속마음을 숨기는 ‘중도층’은 상황에 따라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합니다. 이른바 ‘중도층’ 중 상당수는 ‘속마음을 숨기는 소극적 지지자’라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그래서 선거의 승패는 어느 정당에 ‘적극적 지지자’가 많으냐보다는 어느 정당이 ‘소극적 지지자’들을 투표장에 더 많이 끌어오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상황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꾸는 이른바 ‘스윙 보터’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겁니다.

물론 ‘더 강한 연고’에 이끌려 지지 정당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지 정당도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대다수 가정에서는 자식이 아버지 말도 안 듣고, 어머니가 자식 말도 안 듣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지난 4년 간 총선, 대선, 지선, 총선에서 민주당이 연거푸 승리했습니다. 현 정권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비교해 모든 면에서 ‘총체적 우위’를 입증한 것도 주요 이유지만, 민주 시민들이 자기 돈과 시간과 열정을 기울여 타인의 ‘정체성’을 바꾸려고 노력한 것이 더 큰 이유일 겁니다. 30년 전 ‘3당 합당’ 당시에는 요원한 일이라고 여겼던 일이, 불과 한 세대만에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런 일상적인 노력이, 한국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힘의 원천입니다.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 ‘밭갈이’한 시민들의 승리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한국민으로 하여금 ‘후진국민’이라는 자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시민들의 ‘밭갈이’가 계속되는 한, 한국 정치도 ‘선진국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IP : 14.42.xxx.85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출처
    '20.4.16 5:27 PM (14.42.xxx.85)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3716357481769847&id=10000186896182...

  • 2. 와우
    '20.4.16 5:40 PM (223.33.xxx.208)

    짝짝짝 좋은 글 기쁜 마음 감사합니다

  • 3. 야구는모르지만
    '20.4.16 6:37 PM (175.211.xxx.106)

    항상 공감하며 읽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몇없는 분중의 한사람.

  • 4.
    '20.4.16 10:05 PM (218.236.xxx.162)

    글 고맙게 잘 읽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정치관련 글도 써주시면 좋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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