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규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데.
▲ 김재규는 나름대로 정의를 신봉한 사람이다. 그 주변을 취재해 봐도 돈이나 사생활은 비교적 깨끗했다. 결이 어긋나면 못 참는 인생을 살았다. 김재규 최후 진술을 보면 유신 체제에 대해 많은 반감을 갖고 있었다. 1979년 10.26 상황을 보면 한미 관계는 그 전부터 어긋나고 있었다. 박정희가 3선 개헌을 하고 유신체제까지 하면서 미국이 등을 돌리는 가운데 1976년 8대 정보부장이 된 김재규는 미국 대사와 언론 등을 통해 그런 상황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두 번째는 야당이 투쟁에 역학적인 가속도를 얻고 있었다. 국민도 장기 독재와 긴급조치에 염증을 느꼈다.
즉, 유신체제를 종식해야 한다는 미국의 압력 속에 야당의 투쟁이 힘을 받고,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커지는 가운데 박정희는 차지철 같은 사람을 통해 흔들리는 민심을 장악하려고 했다. 미국과 야당과 민중의 소리를 모두 듣던 김재규는 결국 "대국적으로 정치를 해 달라"고 호소하게 된다.
이는 저널리스트로서 재판에 관여한 변호인들, 당시 정치 상황을 봤던 김종필 등에게 끊임없이 '왜 총을 쏘았는가?' 질문한 결과에 대한 그분들의 결론이지, 나의 가설은 아니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10.26 사건은 우발적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계획적이고,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우발적이라고 적혀있다. (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