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
40대 중반으로 나이도 적지 않은데 너무너무 소심해서 정말 미칠 것 같아요.
원래 겁도 많고 간이 작은 성격이긴 한데
특히 내가 잘 모르는 걸 해야할때, 아주 사소하더라도 거짓말을 해야할 때 내장이 전부 쪼그라드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런거요.
집을 이사하는 과정에서 일이 좀 꼬인 상태에서 실사를 받을 때가 있었거든요.
실제로는 2월부터 그 집에 들어갈거지만 1월부터 들어가는 것으로 계약서를 써놓고 은행인지 어디서 실사를 받아야 해서 그 집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 양해를 얻어 제가 몇 시간 혼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런 경우는 저희가 살지도 않는 집에 한달 치 대출이자를 내는 거기 때문에 저희가 손해라 딱히 누구한테 피해주는거 아니고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 그냥 살고 있다고 확인만 해주면 된다는데
저는 그 일 때문에 전날 잠을 못 잤어요. 걸릴까봐...걸리지 않기 위해 혼자 온갖 시나리오를 쓰고...
초등학교 6학년때 주판을 처음 배웠는데 제가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 모르겠는거예요.
숨이 턱 막히면서 잠이 안오고 너무 싫고 무서워서 울었어요. 결국 못하겠다고 손을 들었어요.
대학교 4학년때 취업을 했는데 저한테 미국으로 이메일을 보내래요.
내용은 그쪽에서 써줬기 때문에 붙여서 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복사해서 이메일 보내는 그 간단한 걸 못했어요.
하필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아니라 넷스케이프라는 걸 쓰는 바람에 익숙지 않기도 했고 이메일을 보내본 적이 없었던거예요.
혼자 끙끙 앓고 울다가 결국 텅 빈 화면을 보냈어요.
가르쳐준 사람이 분명히 오려두기나 복사하기를 한 다음에 붙이라고 했거든요.
둘 중 뭐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오려두기를 했더니 내용이 날아간거죠.
그땐 두개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몰랐어요.
그 사람은 왜 오려두기를 해도 된다고 가르쳐준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일을 시작으로 별것도 아닌 문제로 잠이 안 오고 밥이 안 먹혀서 한 달간 5키로가 빠지고...결국 7개월만에 그만뒀어요.
이런 식이에요.
모른다고 책망받고 무시당하는 상황을 죽도록 못 견디고
그럼 배워야 하는데 내가 뭘 모른다는 것 자체가 그냥 무서워요.
결국 도피하는 식으로 항상 쉬운 일만 찾아왔던 거예요.
심지어 파국적인 사고도 심해서 하지 않아도 될 온갖 불행한 고민으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죠.
특히 어려워하는것이 숫자, 기계, IT 쪽인데 그냥 좀 모르는 수준이 아니라 할머니들 수준으로 모르고 무서워해요.
내가 돌고래보다도 머리가 나쁜가 싶을 정도로 이쪽으로는 설명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요.
누구나 알아듣는데 혼자 못 알아듣는 일이 반복되니 더 위축되고.
요즘 제가 평생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정말 등떠밀려, 상황에 떠밀려 하게 됐는데
어리다고 용서되는 나이도 아니니 잘해야 하거든요.
낯설지만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닌데 모든 낯선 단계를 만날 때마다 죽을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그 낯선 단계라는게 수준이 뭐냐하면 엄청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는게 아니라
화면 캡처를 못하는데 어떡하지, 인터넷에 설명은 잘 나와있지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저 과정에서 더하기 빼기를 나는 왜 이해를 못하지 ....이런 수준이에요.
ㅎㅎㅎㅎ
창피한 걸 무릅쓰고 별 사소한 질문을 해가며 겨우 설명도 듣고 왔는데
집에 와서 남편이 이거 이거 이거는 왜 체크 안했어?라고 물어보니
왜 나는 그것도 몰랐나, 왜 멍청이처럼 앉아있었나, 나는 진짜 바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초딩때부터의 온갖 방법으로 어려움을 피해왔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나는 정말 구제불능인가 막막해지더라고요.
결국 펑펑 울었더니 남편이 진짜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을까 진지하게 생각이 드는데
성정이 유약하고 남에게 비난받는 걸 못 견디고
나는 똑똑한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걸 들키는 상황이 죽도록 무섭고
배우고 노력하는 의지와 끈기가 거의 없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내 선택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남한테 물어봐야 한다.
내가 뭘 했을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번엔 실수했군 하고 툭 터는게 안되는데
이것 역시 아주 사소한 일, 양파를 채썰까 깍둑썰까 이 정도 수준부터 시작이라는거.
제가 이런 사람인것 같습니다.
심리상담이나 행동교정 상담을 받아볼까요?
그냥 하면 된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좀 창피하면 어떠냐 어차피 남들은 나한테 관심없다
지금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할 기회가 없으니 그냥 해야한다.
다 알거든요.
남의 일이라면 저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근데 머리로는 아무리 다짐해도 뭔가 불편한 상황이 되면 위장에서 신호가 오면서 속이 너무 아프고 몸이 괴로워집니다.
20대에 층층시하 선배들 가득한 사무실 들어가서 엄청 깨져가며 일을 배웠다면 달라졌을까요.
첫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나와서 20년 동안 거의 혼자 하는 일로 먹고 살았어요.
쪽팔려서 펑할지도 몰라요.
이런 성격이 상담 받으면 좀 나아질까 싶어 썼습니다.
혼자 극복해야 한다는 건 압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