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동안, 7번의 이사를 다녔어요,
7번의 집을 만나고, 7번의 전세를 산거지요,
그렇게 전세기한이 끝날때마다 이사를 다니다보니,
나중에는 그런 피곤한 일도 중독처럼 물들어서는
기어코 그 힘들게 짐을 싸매고 풀며 살았어요,
젊은날의 이사가는 일은
마치 길떠나는 여행과도 같아서
그리 잘나지도 않은 짐들 실은 트럭을 따라가는 동안
앞으로 새집에서 살게될 그 행보가 은근 기대되기도 해요,
반지하를 벗어난, 가난한 우리들에게 늘 나타났던 집은
늘 비슷한 형태의 투룸과 조잡한 싱크대가 화장실과 마주보고 있는
그런 작은 집이었어요,
그런데도, 아이들을 키우고, 신발을 빨아널며 손님을 맞이하고
잘 지냈어요,
좁은 집에서의 세간살이도 간소해서 우리들도 간소한 규격으로
사는듯했어요,
그러다가 난생처음 살게된 28평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까지 올라가는 기분은 황송했고
난간아래로 11층이하의 창문들이 파도치듯 보였어요,
1991년도에 지어져서 한번도 수리를 해보지않았다는 집의 연식만큼이나
욕실의 거울은 부식된채 덜렁대고, 수도꼭지도 헐거웠고,
낡은 싱크대문짝엔 회색 남자양말이 걸려있었어요,
스텐수세미 한다스를 구멍낸 일주일간의 청소는 그후로도 2년간의 전세가
끝나도록 네버엔딩.
그 지겨울벗한 네버엔딩이 한편 즐거운데에는
신발장밑이나, 싱크대받침밑을 쓸다보면, 뚜껑없는 연고도 나오고
1993년도 종이딱지도 나오고, 가끔 형편없는 점수를 맞은 수학시험지도 나오고
영어단어 쪽지시험지도 나왔어요,
조금 더 빗자루를 어두운 선반밑으로 내몰면, 그전에 살던 사람이
속옷장사를 했던듯한 거래내역서도 나오기도 했어요,
10년동안, 12번이나 사람이 바뀌었다는 말을 전해주던 앞집아줌마는
왜 이집은 이사가 잦는지 그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 질문엔 이미 이사오기전, 부동산 중개인에게 들었던 내용이 생각났어요.
다들 잘되어서 나갔으니 오래 있을 필요가 없다.
도배지가 워낙 오래되다보니, 아이들이 터닝메카드 그린 것도 있고 이름을
써놓은 것도 있고 작게 전화번호도 적힌 것도 있었던데 사실은 전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그전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을 보는것 같아 즐거웠어요,
다음엔 또 뭐가 나올까 기대심까지 생겼던 지난 2년간은 지저분한 도배와
구멍난 장판지에서도 한가했던 날들이었어요.
그래도 제겐 처음으로 4인용 식탁과 의자를 들여놓게 해주고,낡고 오래된
집이었지만 제가 처음 전세생활하면서 제일 큰 평수로 만난 28평 아파트였어요,
쓸고 닦고 하면서 무척 정들고 따듯한 집. 햇빛이 잘들고
윗층에서 체크무늬 담요한장 널어두면 흘러가는 구름아래로 바람따라 살풋이
펄럭이는 그림자로 고요한 정적이 머물던 앞베란다도 정겨웠거든요.
그래서 비만오면, 베란다바닥이 물이 흥건히 고여도 기쁘게 치워낸뒤,
푸른 비취색깔로 빛나던 그 앞베란다도 사랑했어요,
장점보단 흠도 많고 더러웠지만, 그래도 사랑할수밖에 없던 그 낡은집.
늘 매번 떠나갈때마다, 뒤를 돌아보게끔 했던 많은 집들중,
허리펴고 당당히 걷게 해주고, 11층이나 올라가게 해준 기쁨을 준
그 집, 가끔 지나가다가 올려다보면, 누가 사는지 불이 노랗습니다.
그 뚜껑없는 연고들,
도배지의 터닝메카드,
정육점 전화번호가 적힌 거실벽,
오래된 형광등이 달려있던 그 집,
그렇게 7번만에 만났던 그 집은 럭키세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