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어제 꾼 꿈 생각으로 맴돌다 안 되겠다 싶어 오늘 저녁엔 좀 많이 걸어야겠다 했어요.
올해 마지막같은 가을, 아직은 냉기가 덜 하니 이럴 때 많이 걸어줘야겠다 같은 거.
오래 살아온 동네를 언젠가부터 늘 조심스레 걷는 것 같은 이유는
헤어진 그 사람과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거의 토박이같은 동네인데...혹시 마주칠까 싶어 뭔가 움츠려들고 참 조심스러워졌어요.
억울하게도 내가 누구보다도 훨씬 더 오래오래 열심히 살아준 동네인데 말이죠..^^
작년 헤어진지 그렇게 안 되었을 때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을때
그 사람이 저를 보고 눈이 이만큼 커져서는 저에게 반가운 듯 다가왔었어요.
마치 어?!안녕하세요, 하듯이.
모르는 척 지나쳐버린 건 저였어요. 저는 너무나 당황했고 황당했으며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리가 무너질 것 같아서
그리고 어쩌면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다가올 수 있나 싶어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 하면서 싹 지나쳐 버렸어요.
저 유치한 거는 아마 그 사람도 잘 알고 있어서 ...알겠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서로 지나쳤어요.
그 날밤 정말 많이 울면서 어떻게 이러지 ..믿어지지가 않아서 밤새 전화기를 꼬박 바라보면서 긴긴 밤을 보냈던 기억이 나네요.
오늘은 그 사람이 저를 먼저 스쳐 지나쳐갔어요.
동네에 있는 도심천을 오랜만에 길게길게 걸었는데 누군가 내 앞을 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정말 빠르게 스쳐지나가더군요.
바람처럼 휙 그렇게.
뒷 모습을 보고 덜컥 했어요. 아무리 운동복 차림이고 어두운 밤이었지만
그 사람의 뒷모습은 보기만 해도 알아요. 제가 참 좋아했던 모습이거든요. 저를 데려다 줄 때 혹은 거리에서 헤어질 때
저는 그 뒷모습도 그냥 아프고 좋아서 오래오래 바라봤기 때문에 알수 있었어요.
거의 또 1년만이네요.
어 하면서..나를 알아봤구나 싶었어요.
그 빠른 걸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어요.
저도 그 사람이 어떤 의외의 상황이나 돌발적인 일들에 무척 약하고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우린 참.. 똑같네요. 서로가 못난 모습 보일 때 그 사람이 저에게 해 준 말이 기억났어요.
그래도 결국 신호등 앞에서 다시 마주쳤는데
저는 이어폰을 꼽고 폰을 보는 척..그 사람은 굉장히 당황하고 괴로운 옆모습으로
서로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그렇게 서로가 갈 길을 갔습니다.
며칠 전,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화장품을 정리하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게시판에 글을 남겼었어요.
소중한 댓글들 주셔서 정말 많이 따뜻했고 힘이 됐고요....
요즘 다시 생각이 정말 많이 났었는데...
그래서인지 어제 꿈에서 뭔가 곤란한 듯한 얼굴로 저를 보던 그 사람 꿈을 꿨나 했는데...
또 이렇게 마주치고 ..아니 다시 그저 스쳐가고 말았네요.
그런데 오늘은 저 되게 괜찮아요.
저라는 사람은 시간이 지난다고 그리움이 작아지는 사람은 아니기에
이 담담함이 시간의 흐름 때문 같진 않아요.
뭐랄까 아직은 정리되지 않는 기분이지만...그냥 뭔가 알 수 있는 기분이 들어요.
안녕. 만나서 반가웠는데...인사하지 못했네요.
여전히 우리는 참 똑같네요.
서로가 그 길에서 마주친.. 언젠가 알았던 사람, 정말 연인이 맞았나 싶은 사람들이지만
.. 만나서 참 반가웠어요. 이제는 그렇게 괴롭지 않아요.
1년 후 다시 우연이 존재해준다면...그 땐 조금은 웃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 신경쓰이는 건...내가 많이 불행해 보이진 않았었으면 하는 거....
하지만 1년마다 차곡차곡 늙어가는 모습 보여주고 싶진 않으니까..우연이라면 그만 우연이여도 좋겠습니다.라는.
그래도 저 다시...열심히 길을 걸을 거예요. 조금은 더 씩씩하게, 그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