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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오동 전투'

... 조회수 : 1,820
작성일 : 2019-08-08 11:30:09
전 일제 강점기 역사와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 소설, 다큐 등등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서예요.

전 공교육을 충실히 받고 그럭저럭 웬만하게 학교를 나와 여성직업으로 꽤나 선호되는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저희 집안은 옛날부터 상인으로 유명했던 지역 출신이고, 역시 상인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기준으로 보면 집안 내력도 중인, 현재 제 직업도 조선시대라면 중인들이 가졌던 직업입니다.
양반가 애기씨는 아니었을 겁니다.

일제 강점기에 내가 태어났다면, 그때, 내가 우리 집안에 지금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하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중인 집안이었고 중인이 가질 수 있었던 직업을 가졌다면, 거부가 아니어도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고, 직업상 비교적 새로운 정보에 빨랐고 시대나 세상을 보는 눈이 기존의 양반들과는 좀 다른 시각이었겠죠.
양반과는 다른, 새로운 기회에 보다 적극적이고 보다 전복적인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었지 싶습니다.
다만, 그 '전복'적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서는 기회주의적일 수도 있고, 발전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겠죠
그건 시대가 어쩔 수 없이 만든 상황이지만, 그 상황에서 나의 선택은 어땠을까?

만약 내가 1910년 이후에 태어나 1919년 삼일 운동을 5-7세쯤 겪고 자라나 1940년대 초반 쯤, 30대에 접어드는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생각과 자세를 가진 인간이었을까?
태어났을 때부터 평생을 일제 통치하에서 일반 교육을 받고 살았던 무난한 인간이었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진 조선인이 되었을까?
다른 건 다 접어두고 나는 '창씨 개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나는 독립운동은 못했겠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친일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큰 저항 하지 않는 소극적 친일은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가진 것도 기득권이라고 나는 아마도 비겁하게 변명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을까?
그나마 독립군에 남몰래 약간의 군자금 정도, 그것도 큰돈은 못하고 월급에서 조금 떼어 보조하는 정도나 했다면 그게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결론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참 비겁한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시기의 영화들은 나의 비겁함을 자꾸 일깨워주어서 볼 때마다 전 마음 한구석을 찔려서 아픕니다.
가장 나를 아프게 했던 영화는 '항거 - 유관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유관순을 비롯한 여성 운동가들이 한 건 별거 없습니다.
그런데 일제는 그 아무것도 아닌 별거 아닌 그 행위에 쇼크처럼 발작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래서 돌아온 잔인한 응징.
아무 힘도 없는 학당 여학생, 수원권번 최고 인기 기생을 비롯해 딱히 뭔가를 할 수 있는 힘도 없는 여인들이 겨우 소리나 지르는 일 뿐인데, 나는 저 자리에 있었을 때, 같이 소리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예스라는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어제 개봉한 '봉오동 전투' 역시 제게는 나의 비겁함을 다시 일깨워주는 아픈 영화입니다.
이 시기의 영화는 한국인이라면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을 겁니다.
한국사람이 나치 영화를 보는 느낌과 독립군 영화를 보는 건 같은 감정일 수 없습니다. 단지 전쟁영화라는 동일 선상에서 놓을 수 없는 편파적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영화적'으로 보자면 영화 '봉오동 전투'는 아쉬운 점이 다소 있긴 합니다.
편집을 좀 컴팩트하게 해서 좀 더 밀도있게 전개되었으면 어땠을까? 음악이 좀 더 현대적으로 세련되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본질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항거 - 유관순 이야기'보다 더 나를 책망합니다.
아니, 영화는 책망하지 않아서 나를 더 부끄럽게 합니다.
이게 먹물 조금 먹은 비겁한 자의 낯부끄러움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이 시기의 영화들을 열심히 의무적으로 보고 느끼려고 합니다.
나의 비겁함을 잊지 않으려고, 그리고 비겁함을 합리화하지 않으려고...
그런 의미에서 '봉오동 전투'는 나를 각성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전투 장면은 참으로 기가 찹니다.
아무리 게릴라라도 이렇게 엉성하고 허접한 게릴라 부대 수준인 독립군에게 일본군이 퍼붓는 장비, 인원의 수준은 어마어마합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 삼간, 아니, 대궐을 불태우려는 수준으로 쏟아붓습니다.
일제는 왜 이리 과도하게 반응할까?
치유될 수 없는 열등감은 거꾸로 과도한 우월감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오늘의 일본 정부의 태도까지 생각하면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과도한 폭력은 뿌리깊은 열등감의 반영은 아닐까?
그래서 아마도 우리가 그렇게 당하고도 견디고 살아남는 이유도 dna에 각인된 자신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그걸 눈앞에서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눈물나는 짠내나는 승리라는게 가슴아프고요...



PS 1. 서 있기만해도 부들부들할 아찔한 험한 산에서 뛰어다니면서 실제 독립군처럼 영화를 만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영화 속에서 당신들은 2019년을 사는 배우, 스태프가 아니라 제 눈에는 진짜 독립군처럼 보였습니다. 아마도 당신들이 그렇게 임했기 때문에 제게 전달되었겠지요?

PS 2. 이 영화에 출연한 일본인 배우들의 우정에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일은 일이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개인의견을 냈다고는 하나, 표출하지 못하는 당신의 마음에는 한국, 한국 역사에 대한 우정이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엄중한 시기에 개봉하는 영화라, 본국에서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국에도 태극기 부대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일본에도 당신들과 같이 한국과의 우정을 놓고 싶지 않은, 우리와 같은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IP : 125.128.xxx.132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9.8.8 11:33 AM (211.245.xxx.178)

    그분이지유?
    참 원글님 감상문보면 영화보고싶어져요. ㅎ
    이건 원래 볼 생각이었지만서두. . ㅎㅎ

  • 2. 고마워요
    '19.8.8 11:35 AM (112.152.xxx.131)

    좋은 글,,,,감정이입해서 읽었네요. 저도 ,,그랬을 듯. 이 영화도 꼭 봐야지요,

  • 3. 모닝 봉오동
    '19.8.8 11:47 AM (221.150.xxx.99)

    아침일찍 두아이랑 보고 왔어요. 배우들과 스텝들의 땀방울이 스크린 밖에까지 전해지는듯했어요. 그날의 벅참을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해 엄청 고생했을 이 분들을 응원하는 방법은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는거겠죠. 전투라서 잔인한 장면은 어떨수 없어 종종 눈가리고 볼수밖에 없었지만, 보고 나오면서 봉오동전투처럼 지금 일본과 하는 이 경제전쟁도 꼭 이겨야 겠다고 다짐하게 되더군요

  • 4. 상암 메가박스
    '19.8.8 11:58 AM (106.102.xxx.77) - 삭제된댓글

    저녁 두명 예매했으요

  • 5. ...
    '19.8.8 12:33 PM (210.100.xxx.228)

    영화보고나서 이 글 다시 읽을께요.
    지금과 그때의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6. 여름이구나
    '19.8.8 12:44 PM (180.71.xxx.26)

    저두 일본인 배우들이 대단한 용기를 내었다고 생각하며 봤어요.
    앞으로도 그들 자국에서의 태클이 보통이 아닐텐데, 큰 용기구나... 하면서..

  • 7. sstt
    '19.8.8 1:03 PM (182.210.xxx.191)

    영화 넘 좋았어요. 영화로도 저 고생인데 실제로는 정말 뼈만 남은채 싸웠을것 같아요. 넘 가슴아팠고 불매운동이라도 열심히 해야겠어요

  • 8. 어제
    '19.8.8 1:16 PM (1.216.xxx.10)

    저녁에 애들이랑 보고왔어요
    너무 가슴아프고
    어떻게 지킨 나라인데 싶어 애들에게
    우리가 지금 할수있는건 불매운동이라고
    얘기했어요~
    영화끝나고 누군가 박수치기 시작해서 따라치고
    뭉클한 맘으로왔어요
    꼭보세요

  • 9. 그렇죠
    '19.8.8 1:20 PM (125.141.xxx.175)

    나라면 그 시대애 어땠을까?
    옛선인들의 일을 보면 저도 원글님과 같은 생각으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 10. 아...
    '19.8.8 1:27 PM (110.70.xxx.143)

    정말..... 너무, 가슴 뭉클하고 저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을까......내내 먹먹 했습니다. 저는 주말에 온 가족 데리고 가서 또 볼려고요! 투명 총대 저도 멨습니다.

  • 11.
    '19.8.8 3:13 PM (183.83.xxx.62)

    정말 글 잘 쓰시네요
    님의 다른 글들도 읽고 싶어집니다

  • 12. ㅇㅇ
    '19.8.8 6:52 PM (175.223.xxx.55)

    제가 투명 총대 멘것 같다고 후기 올렸었는데요.어제^^님이 느끼신 것 그대로 느꼈는데 그때의 나는 어땠을까부터. 말로 글로 표현이 안되고 느낌만 주르륵. 이렇게 활자로 유려하게 표현해줘서 속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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