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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초등교사인데 방학숙제 카톡으로 확인받는다고 말 나온 당사자입니다...

펌) 조회수 : 2,146
작성일 : 2019-08-01 15:41:55
스크랩) 초등교사인데 방학숙제 카톡으로 확인받는다고 말 나온 당사자입니다...


야갤까지 갔더라고요...

찬반 리플을 보니 뭔가 답답해서 해명을 하고 싶은데 ㅋㅋㅋㅋ

그래서 글을 써보게 됐습니다


저는 파워리프팅갤 엠팍 클리앙에 상주하는 아재선생입니다.

1,2학년 담임으로 가면 애들이 우는 외모를 가진 사람입니다..

6학년만 10년 이상 했습니다.

제자들이 이미 사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인데 그닥 여유있지 않은 동네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습니다.

첫해때는 6학년임에도 한글 맞춤법을 다 틀리고

그 전 해에 담임선생님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아이가 저희 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임이라 어떤 식으로 아이들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 몰라서,

그냥 수업끝나고 야구장 가고 볼링장 가고 그러고 놀았는데

사고를 많이 칠걸로 예상되었던 애들이 신기하게 사고를 안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학년이 선생님들 속을 많이 썩인 학년이어서 다 기피하시고 전입교사들이 꽂힌 경우였습니다.


처음시작했을 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친형들한테 맞고 방치되거나

엄마가 집을 나갔거나

부모님이 아이를 신경쓸 수 없는 상태인

그냥 눈에 밟히는 아이들이 있었기도 했네요.


그래서 별도로 집에서 케어해줄 수 없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기중에 남겨서 공부시키고 방학동안 숙제를 내고 그걸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꽤 많습니다. 매년 20% 정도는 만나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와서 보면

아이들의 인생에 0.0001% 라도 기여했다고 느껴지는게

이 직업의 재미입니다.


최근의 학교는 여러가지 구조적 문제가 터지고 있어서

보람이 없으면 일하기가 너무 괴롭습니다.

이 직업의 재미를 제가 그런데서 찾은거지요...


제가 케어 안 해도 이미 잘하는 애들도 있고

아예 공부 말고 다른 걸 해야할 애들도 물론 보입니다.


그런데 딱 선에 걸쳐 있는 애들이 있습니다.

머리도 나쁘지 않고, 하면 되는데..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고

그냥 집에서 핸드폰만 합니다.


자유주제발표 시키면

배틀그라운드 브롤스타즈가지고

파워포인트 스무장 만듭니다.

센스도 있고 눈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신경써줄 상황이 아닌 경우...

어떤 어른이라도 안 잡아주면

계속 뒤쳐진 끝에 무너지는게 시작됩니다. 진짜 빨라요...

이미 공부에 대한 패배감으로 가득해서

안된다는 의식을 바꾸기는 진짜 어렵습니다.



사실 그깟 수학, 분수의 나눗셈.. 원기둥의 겉넓이.. 몰라도 세상사는데 지장 없습니다.

그대신 저렇게 지도한 단원의 수행평가(단원평가) 는 쉽게 냅니다.


앉아서 풀다 말고,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공부하니까 풀리는구나.

나도 못하는 게 아니구나..

이런걸 느끼게 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요..



저렇게 관리해서 확 치고 올라가는 애들이 가끔 있습니다.

물론 제 영향만은 아니겠지만..

대학가고 나서 찾아옵니다.



아이들은 정말 착하게도

피자나 아이스크림이면 행복해합니다.

라면파티 시켜주면 자기네 선생이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식때문에 남아서 공부하는 애들은 요즘도 있습니다.


점차 교사의 이런 재량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있습니다.

맘만 먹으면 예산을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서울희망교실이라는 제도에 신청해 당첨되어 아이들 문제집을 사주었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좋은 부작용이라면

반 애들이 사고를 덜칩니다.

학폭 한번 터지면 교실 마비되는데...

일단 아이들과의 교감이 좀더 생겨나는 덕분인 것 같습니다.


물론 문제가 있습니다.

민원도 받습니다.

집에서 학부모들이 교사 욕하면

그거 아이들이 와서 전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숙제를 내라 / 내지 말아라

급식을 검사해라 / 검사하지 말아라

이런 주장들 사이에서 싸우다 보면

교사는 힘이 빠져서 결국 아무것도 안하게 됩니다.

저는 그러거나 말거나 학기초부터 안내하긴 합니다.



교사의 교육철학에 대해 신뢰를 보내줘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뭔가 된다고 이야기하고 시작합니다.

좀 어처구니없는 건 무시할만큼 멘탈이 강해졌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저처럼 오버하지 않으시는 건

다양한 관계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가기

너무 힘든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투로 글 쓰는 거 사죄합니다.

셀털 비슷하게 되버려서.

어쩔 수 없이 각잡았습니다.

악플은 미리 감사합니다.
IP : 110.70.xxx.119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19.8.1 3:46 PM (116.42.xxx.32)

    좋은 글 가져와서 감사드려요
    선생님에 대한 생각.다시하게 되네요

  • 2. ...
    '19.8.1 3:55 PM (218.17.xxx.229)

    좋은 선생님이시네요. 전 방관하고 개입하려 하지 않는 선생님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바른 생활태도를 위해 강요하는 선생님이 더 좋아요. 학샹들에 대한 애정도 더 있어보이구요.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자란 아이와 그러지 못한 아이들이 차이가 있듯이 담임 쌤의 태도에 따라 학급 분위기도 달라지더라구요.

  • 3. 부럽
    '19.8.1 3:57 PM (211.177.xxx.144)

    이런선생님 만나는 애들은 진짜 행운이네요 정말 좋은 선생님^^

  • 4. ..
    '19.8.1 4:29 PM (39.7.xxx.20)

    저런교사는 50명 중 1명이죠.
    현실에서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특히 중고교에선 더 그렇구요.
    중고등학교땐 잘나가는 아이들의 말이 진리고 착한거지.
    교사의 말은 신경도 안써요.
    교사들 대부분이 가해자, 방관자입니다.
    본인들이 인정을 안해서 그렇지. 솔직히 떳떳하다고 말할자신 있어요?

  • 5. ...
    '19.8.1 5:03 PM (180.230.xxx.161)

    그 전 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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