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수상은 막강 경쟁자에게 돌아가고 노장의 혼을 불사른 연기는 여전히 또 아쉬운채로 수상은 비켜갔습니다.
그런데 제게 이 영화는 노장 글렌 클로즈의 혼신의 연기 이외에는 아무 감흥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글렌 클로즈의, 글렌 클로즈에 의한, 글렌 클로즈를 위한 영화'라는 감상 밖에는 없었습니다.
여성 작가가 성공은 커녕 문단에서 살아남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학생이 자신의 재능과 꿈을 남편을 통해 대리만족하며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최근 비슷한 소재, 아니 거의 똑같은 소재의 영화 '콜레트'가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까지 살았던 프랑스의 여성 작가 '가브리엘 콜레트'라는 실존인물에 대한 영화입니다.주인공은 영국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맡았습니다
프랑스 시골뜨기였던 가브리엘 콜레트는 유능하지만, 재능은 없는 남편이 차린 글공장의 숨겨진 작가가 되어 클로딘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시리즈 소설로 공전의 히트를 칩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영감받은 소설이라고 홍보했기에 클로딘은 콜레트의 페르소나로 당대의 소녀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되고, 그래서 콜레트는 대단한 명사로 사교계에 등극했죠.
이 영화를 보고 난 제 감상은 '재미있지만 흥미롭지 않다'였습니다.
워낙 비슷한 종류의 많은 영화와 소설, 드라마들이 있어왔으니까요.
두 영화 다 자체로는 제게는 큰 감흥은 없었으나, 시대 차이를 두고 비슷한 영화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보니 오히려 다른 지점에서 흥미로운 구석이 보였습니다.
19세기에 태어난 콜레트는 남편에게 본인의 자립을 주장했으나 남편은 반대와 방해를 했고, 그런 남편을 벗어나 스스로 본인의 이름으로 새 소설을 발표했고 소송을 통해 남편이 팔아버린 클로딘 시리즈의 저작권도 되찾아 옵니다.
반면 '더 와이프'는...
100년도 훨씬 넘은 옛날옛적에도 꿋꿋하게 버텨서 쟁취해낸 콜레트의 시도가 왜 1992년을 배경으로한 '더 와이프'의 시대에서는 후퇴하였나? 그보다도 21세기 한국에서는 글렌 클로즈에게 감정이입하는 여인이 많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우연치 않게 근처 도서관 관장님과 한참 토론하게 되었는데요.
아직도 '더 와이프'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쉽게는 제자의 논문을 절취하는 교수, 문하생의 작품을 도용하는 유명작가, 알게 모르게 많다고...
페미니즘이니 뭐니를 떠나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특히나 남자 여자의 성적 대립 구조에서는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유불리가 갈리는 이런 일들이 세상이 그다지 변하지 않는 권력관계에서 고착된건가, 그 와중에 여성들의 의지는 오히려 퇴보한 것인가,
저도 열심히 먹고 사느라 세상에, 역사에 딱히 뭔가 대단한 일은 없지만, 혹시나 평상시에 나는 누군가의 뒤에 숨어서 대충 흘러간 건 아닌가, 그래서 그런 슬픈 역행의 흐름에 일조한 것은 아닌가 반성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