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들은 원래 기록을 잘하는 민족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금속활자외에도 조선왕조실록같은 유물도 남아있는거고,
그 유전자로 인해서 카카오스토리라던지, 페이스북이라던지 블로그들을 섬세하고 재미있게
자세히 사람들이 남기잖아요.
제 취미는 일기쓰기에요.
스무살때부터 35세까지 거의 매일 써왔던 일기가 커다란 트렁크로 한가득있었는데 어느날,
디지털카메라를 찾던 남편이 우연히 꽁꽁 숨겨져있던 제 일기장무더기들을 보게되었어요.
남편은 눈이 벌게지도록, 제가 없는 빈집에서 일기장을 신나게 읽어내려가면서 낄낄거렸대요.
그런데 더 황당한건, 그 일기장을 읽고도 한참 몇달이 흐른뒤에 제게 그 이야기를 한거에요.
그럼 저 트렁크속의 일기장들을 다 읽어놓고, 저렇게 평상시와 똑같은 표정으로 ??
날 보면서 산거였구나?
밥을 차리고 빨래하고, 이불을 끌어안고 귤을 까먹거나 과자를 오도독 먹으면서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유리창 닦는 모습을 보면서 깔깔대는 내 모습을 보았던거야?
그후로, 그 많은 일기장들 다 처분하고,
대신 농협에서 무료로 주는 가계부나, 신협,새마을금고, 우먼센스잡지에서 주는
가계부들을 잘 활용했어요.
그날그날, 하루도 돈을 쓰지않는 날이 없는 날들이라는것, 가계부를 직접 써보면
알게된답니다. 어떤땐 눈뜨자마자, 오늘도 돈을 쓰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해요.
그리고 작은 메모란이 어떤 가계부든 다 있는데 그곳에 그날그날의 하루들을 메모했어요.
그런 가계부가, 벌써 2005년부터 쌓이더니 2019년까지 책꽂이에 꽂혔어요.
어느날, 또 남편이 지금까지 써온 가계부 다 봤다고 하는거에요.
수입,지출란은 관심이없고, 메모란이 너무 작아서 깨알같이 쓴 제 일기들을 다 봤다는거에요.
그러면서 그곳에 자기욕도 써놓았다고, 불평을 하길래
허락도 없이 본사람이 잘못이라고 했더니 더이상 말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도 가끔 책꽂이의 책들을 둘러보다가 다 낡고 바랜 가계부들을 펼쳐볼때가 있는데
아, 그랬었지 하고 그때 생각도 나고, 콧등이 시큰해져서 괜히 심호흡을 해보기도해요.
아이 분유값을 충당하러 제 금반지들고 금은방가던날, 돈 오만원받고 돌아오던 일도 써있던
지난날들의 그 편린들.
지난날, 내 편지를 숱하게 받던 내 친구들은 다 뭐하고 있나, 문득 궁금해지고
제 인생의 무대에서 주연을 맡고있는 남편의 머리칼이 점점 적어집니다.그래도
보잘것업는 나를 만나 이만큼 와준 사람이라고..
말주변도 별로 없고, 게다가 욱하기를 잘하는 남편,
어느날 그런 단점을 메모란이 모자라도록 썼는데 도리깨질 당한 가슴팍이 퍽이나 아팠을텐데도
내색않고 살아왔고 또 그 젊었고 가난하던 날보다는 많이 사람이 되고 나아졌으니,
일기장을 행여 들키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