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같은 동네 살아서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다가 중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 진학해 두어번 같은 반이 되면서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베프가 된 친구가 있었어요.
고등학교 땐 몰랐는데 대학에 들어가니 얘가 저를 함부로 대하는 게 느껴지더라구요. 영화 보거나 밥 먹으러 갈 때도 자기 취향이 우선이고 밥값도 비싼 거 먹을 때는 내가 내고, 좀 못한 거 먹을 때는 자기가 내고 그랬었네요. 얘가 남친 사귈 때 잘 안되면 나를 감정의 쓰레받기로 사용했던 것 같아요. 딱히 소울메이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릴 때 동네 친구니까 계속 친구로 포용했던 나에 비해, 걔는 나를 이용하기 만만한 상대로 봤던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은 훨씬 나중에 든 생각이었죠.
암튼 그러다 신도시로 서로 이사를 가서 사는 거리도 멀어지고, 자연스레 만날 횟수도 줄어들었어요.
자기 결혼식 할 때는 제가 어렵게 시간 내서 축의금도 냈는데 제 결혼식 때는 당연히 이 핑계 저 핑계로 안 왔죠. 그렇게 잊고 살았는데 어느날 연락이 왔네요.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는데 마침 연락 기다리는 전화가 있어 냉큼 받았더니 그 친구인 거예요. 오랜 만에 만난 동창 통해 연락처를 알았다며 반갑다고 호들갑을 떠는 겁니다.
그런데 얘는 꼭 만나자고 그러는데 저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아요. 예전에도 불편하긴 했지만 얘가 남의 흉 보거나 투덜대면 그럭저럭 맞장구도 쳐줬는데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통화할 때 보니 그 말투는 여전하더라구요. 직장 생활 할 때도 내 월급은 물어보면서 자기 월급은 안 밝히고, 내가 사귀는 남친들 학교, 전공은 필수로 물어보고, 자기 남친은 공개도 않고 뭔가 계속 뒷통수 맞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만나면 또 그런 태도일 거예요.
이젠 남편 월급 얼마냐, 아파트 몇평이냐, 애들 성적은 어떻게 되냐 등등 아휴, 제가 남 만나서 가능하면 안 물어보는 질문들을 할 게 눈 앞에 선합니다.
얘는 내가 왜 자기를 멀리 했는지 전혀 감도 못 잡을 거예요. 나를 그렇게 만나고 싶었다면 지난 세월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었을 텐데 별안간 왜 호들갑 떨면서 만나자는지. 상황 보아하니 보험 팔거나, 아쉬운 소리 하자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예전의 그 이기적인 심뽀 그대로 자기가 보고 싶으니까 좀 만나자 이런 정도인 것 같아요. 그렇게 반갑다고 난리 쳐 대는 전화기 너머로 쌩하게 아니, 너 안 만날 거야, 이런 소리 하기도 그렇고....
일단 애들 학원 문제 땜에 골치가 아파서 만나는 것을 미뤄 놨지만 가능하면 안 만나고 싶은데 이거 현명하게 해결하신 분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