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능날, 고등자녀가 있지만 선배님들 시험치느라 휴교한 덕에
저도 같이 느지막하게 일어났습니다.
저는 선지원후시험제도 마지막 학력고사 본 사람인데 저 시험치던 날 기억이 떠올라 써봅니다.
지원한 학교는 자가용으로 20분 정도 거리의 가까운 편이었어요.
아침에 넉넉히 출발하여 아빠가 데려다 주시는데 중간 쯤에서 정말 꽉 막혀서 도로가 주차장이 되었어요.
저 지원한 학교 가는 길에 다른 대학이 두 곳이나 있었는데 제가 집안에서 첫 입시다 보니 그걸 간과했던 것 같아요.
아빠는 초조해 하시며 차에서 내려 이리저리 방안을 강구해 보셨지만 그땐 삐삐조차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앞 뒤 좌우로 끝도 없이 꽉 메운 자동차들, 저 같은 수험생도 간간이 보였지만 모두 뾰족한 수가 없었죠.
뛰어가기에는 택도 없는 거리였고...
그러다 어떻게 해서 지나던 교통경찰 오토바이를 발견해서 부탁드렸어요, 아빠가.
무릎까지 오는 부츠신는 분들 있잖아요, 대통령이나 외국 귀빈들 오시면 호위하시는 분들.
그리고 오토바이도 으리으리한 거.
흔쾌히, 당연히 수락하셔서 가방메고, 도시락 가방 팔에 걸고 그 아저씨 뒤에 타서 허리 꼭 끌어안고
싸이렌 요란하게 울리며 요리조리 차 사이를 비집고 달려 5분만에 도착해 입실시간 5분 채 남겨두지 않고
들어가 시험 봤습니다.
그 경찰분께 사례한다고 아빠가 명함을 전달했지만 그후 이야기는 듣지 못했고
그래도 내가 무사히 시간 내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전달받으셨는지
시험치고 나오니까 엄마, 아빠가 마중나오셨더라구요...
근데요, 그날 아침, 그 북새통에서 제 심경이 어땠는지 아세요?
그 시절 대부분 그랬듯이 대학원서 접수를 제가 아니라 엄마랑 아빠랑 하러 가셨어요.
지역 내라서 우편접수 아니고 직접 접수하러 가셔서 하고 오셨어요.
제가 지원한 학교는
저나 주변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학교였고
그에 대한 핑계를 대자면
후년에 입시제도가 대대로 바뀌는 지라
재수불가라며 고등학교에서도 후려치기 즉 하향안전지원 압박이 심했고
저 또한 재수불사하고 소신지원하겠다는 패기도 없이
또 제 밑으로 줄줄이 사탕 입시를 앞둔 동생들이 여럿 있고 해서 등등
그 학교에 지원하게 된 터였는데
시험 전 예비소집 날에서야 비로소 그 대학교를 처음 가 보게 되었던 거죠.
너무너무 실망스러운 거예요.
모름지기 대학이라하면 서울대 정문의 그 문양, 연세대의 쭉 뻗은 백양로, 고려대의 석조 건물 등의 이미지만
담고 있었는데 제가 지원한 그 학교의 엿붙일자리도 없어보이는 작은 교문과 낡은 건물들을 보니 정말 너무나너무나
초라해보여서 아, 원서접수할 때 내가 왔더라면 이 학교 안썼을텐데 하는 후회가 마구 밀려들었어요.
전날 그 충격의 여파가 너무 심해
당일 아침 도로에서 아빠가 급박하게 뛰어다니시는데도 저는 차 안에 앉아
그냥 이대로 시간이 흘러 차라리 시험을 못보게 되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경찰아저씨 등뒤에 매달려 가면서도 도움을 받지 못해 미친듯 뛰어가는 다른 수험생들이 눈에 띄면서
저들에게 양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험봤구요, 합격은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다녀서 졸업도 했구요, 이제는 우리 아이 내년 입시에 제 후배 만드는 게 아주 커다란 욕심이 되어버린
그런 그런 상황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