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어정쩡해서 제가 보고싶은 영화는 못보고 뜬금없는 영화만 보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심심할 때 영화나 볼까 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1.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워낙 유명한 영화고 이번이 재개봉입니다.
모 영화관에서 '웨스 앤더슨 특별전'을 해왔었는데요.
굳이 다 볼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5편 다 봤습니다.
이미 초개봉때도 한번 봤고, 이번에 다시 보는데, 상영관에 화재 소동이 나서 종료 20분을 남기고 상영중단하고 난리를 쳐서 다시 본지라 어쩌다 보니 거의 3번이나 본 셈이 되었죠.
아시다시피 감독인 웨스 앤더슨의 반전 의식과 우아한 인간애에 대한 풍자를 동화적이고 만화적인 방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의식이고 생각이고 다 필요없이 애니메이션 한편 본다 생각하고 봐도 무리없이 신나고 재미있습니다.
아마도 웨스 앤더슨이 아니고는 만들어낼 수 없는 오바 연기, 동화적 애니메이션적 색감,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웨스 앤더슨 영화의 특징이 어마어마한 대배우들이 까메오급 조연으로 대거 등장한다는 겁니다.
이 영화만해도 틸다 스윈튼, 주드로, 에드워드 노튼, 윌렘 데포, 애드리안 브로디, 레아 세이두, 시얼샤 로넌 등등이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제일 재미있는 것이 대 배우들이 조연으로 몇장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웨스 앤더슨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문 라이즈 킹덤'에도 브루스 윌리스, 에드워드 노튼, 틸다 스윈튼, 빌 머레이, 하비 키이텔, 프랜시스 맥도맨드 등등 대 배우들이 떼로 조연으로 나오거든요.
이 배우들에게 이 감독의 영화는 어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일까 하는 굴금증이 잔뜩 묻어나는 영화입니다.
2. 창궐
전 좀비 영화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게다가 팬 여러분들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제게 장동건과 현빈은 믿고 거르는 배우들이라서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조연 군단이 너무나 화려했더랍니다.
김의성, 조우진, 조달환, 강만식...
한명만 있어서 화끈한 씬 스틸러가 될만한 배우들이 떼로 등장하다니, 게다가 여기에 장동건, 현빈 조합은 뭔가 싶어서 오로지 그 호기심 하나로 본 영화입니다.
공짜표가 있다면 한번 봐도 아깝지는 않을 영화, 심심하면 그냥 시간 때우기용으로는 뭐 그닥 나쁘지 않은 정도였습니다
호기심 천국인 저는 저의 호기심에 집중하여 봤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장동건, 현빈은 딱 그정도였습니다.
50을 목전에 둔 장동건에게 뭔가 더이상 바라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그정도에 머물러 있는 그의 연기가 안타깝긴 했습니다. 영화 후반에 더이상 대사하지 않고 액션만 하는데, 차라리 그게 나을 정도입니다.
감독 입장에서 왜 이렇게 많은 명품 조연이 필요했을까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두 주연배우 자리에 딱 떠오르는 다른 배우가 정확히 있었습니다만, 그 배우들이 이 영화를 선택하기에는 시나리오가 매력이 많이 떨어져 보여서 그 아쉬움도 납득했습니다.
제가 생각보다 흥미로웠던 건 현빈이라는 배우였습니다.
현빈은 군 제대후에 정말 열심히 영화에 쉼없이 출연했습니다.
본인의 길을 '배우'로 잡았구나 해서 매우 기특했습니다만, 그의 안목과 연기는 늘 아쉽기만 했습니다.
잘생긴 인물로 일찌감치 톱스타가 된 배우의 숙명같은 시기를 겪고 있구나 하면서도 아직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가 안스러우면서도 아쉽기만 합니다.
30대를 보내고 40대 중견배우가 되었을 때, 현빈은 어떤 배우가 되어있으려나?
이정재 테크를 탈 것인가? 장동건의 길을 갈 것인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주지훈이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는데 최근 점점 두각을 나타내면서 빛나고 있는 걸 느끼는데, 과연 현빈은?
아마도 이번 영화가 그에게 아슬아슬한 기로가 될 것도 같은 느낌?
여태까지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번 영화로 이렇게 노력하는 배우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게 될런지 좀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다른 배우와 경쟁하지 않고, 주연에만 집착하지 말고, 계속 잘 자라주길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그치만, 현빈아... 작품 보는 눈은 좀 키우자...
3. 크레이지 리치 아시아
이 영화는 지난 여름 '서치'가 주목받을 때, 같이 거론되던 영화랍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동양인이 주인공인 영화면서도 작품이 좋은 영화여서 관심이 많았다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남자친구가 싱가폴 대부호의 상속자인 줄 모르고 평범한 연애를 하던 중국계 미국인 아가씨의 호된 예비 시댁 상견기쯤 되려나요?
우리나라 막장 아침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고 동양인이라면 너무나 잘 상상할 수 있는 바로 그 스토리면서 그 스토리에서 그다지 많이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새드 엔딩이거나 해피 엔딩이거나 한국 사람이면 다 알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는 맞습니다
이렇게 신선하지도 않은 뻔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키크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도 멋있지만, 꽃뱀 취급을 당하고도 너희들이 원하는대로 반응해주지 않겠다는 여자주인공의 기개가 매력적입니다.
동양인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익숙한 잔인함이 21세기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씁쓸합니다만, 여주인공의 씩씩한 태도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더불어 싱가폴 관광청이 풀 스폰서했다고 굳게 믿을 수 있을만큼 화려한 싱가폴의 면면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싱가폴 부동산 재벌가가 나오는만큼 수백벌의 명품 드레스가 등장해서 눈호사도 충분합니다.
최근 본 영화 가운데 제일 유쾌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