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세계평화/인간생명존중/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최고의 국가로 우뚝 세울 방안이 있는데!
월남전!
2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동서냉전의 두 축으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의 세계분할흉계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지고, 그 사이를 비집고 왜의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굴종밀약이 엉뚱하게도 한반도의 분할을 가져와 100년에 가까운 국토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6.25)을 치른 우리겨레의 뼈저린 아픔만큼이나 월남인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전쟁일 것이다.
하지만 월남은 세계최강 미국을 주축으로 한 한국을 포함 8개(?) 연합군을 상대로 25년을 싸워 당당히 승전국이 되어 2차 대전 후 지구상 분단국가 중에서 최초로 통일을 이루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통일이 1억 배달겨레의 꿈에도 소원일 뿐이다.
아-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언제 이려는지?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이 월남에서 자행한 만행에 대하여 월남 어디인가(퐁니 퐁넷?)에 한국군의 만행을 성토하는 비가 세워졌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6.25전쟁의 아픔 중에도 미군에 의한 한국군의 학살현장인 <노근리>가 우리에게는 상처의 큰 흉터이듯이, 월남인들에게는 미군에 의한 <밀라이 촌>과 한국군에 의한 <퐁니퐁넷마을>이 수 만년의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영원한 흉터일 것이다.
우리와 왜가 아무리 선린관계라고 떠들어도 왜의 위안부/강제징용/문화재약탈 등 왜의 만행에 대한 진솔한 사과가 없이는 것 껍데기의 선린관계이듯이, 월남인의 가슴속에 서려있는 퐁니퐁넷마을의 상처를 가해자의 입장으로서 한국이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한국과 월남간의 관계도 한국과 왜와의 관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찌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대통령 시절에도 월남에 대해 한국군이 월남통일을 방해한 일을 사과하는 방안을 월남과 협의하였으나 승전국인 월남의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자존심이 이를 사양(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자만 그건 승자이자 피해자인 월남의 입장이고, 가해자이자 패자인 한국으로서는 어떤 수모와 대가를 치르더라도 진솔하게 사죄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그 방법은 월남정부에게 비공개로라도 진솔한 사과를 한 다음에, 지금 7~80대가 되었을 월남전 참전 노병들로 민간차원의 사죄단을 꾸려 퐁니퐁넷 마을을 찾아 빌리브란트 전 서독총리가 유태인 학살현장인 아우슈비츠를 찾아 사죄를 했듯이 진솔한 사죄를 하고, 한국이 저지른 만행에 대하여 월남에서 세운 한국군 만행을 규탄하는 비석 옆에 한국군이 저지른 죄를 이실직고하고 반성과 사죄를 하는 탑이나 비석을 세우도록 한다.
이렇게만 한다면 빌리브란트 서독총리의 아우슈비츠 사과를 넘어서는 세계인의 가슴에 격하고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국이 그리만 한다면 월남전의 촉발자인 프랑스와 그 하청국인 미국이 세계여론에 밀려서라도 한국의 뒤를 따르는 흉내라도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월남전과 관련된 필자의 회상>
필자 자신도 1948년생(호적에는 47년으로 한 살 더 먹었음>으로 집안이 하도 가난해서 돈 즘 모아 보려고 월남전에라도 가려고 했으나, 당시(1968~71)는 월남전이 비교적 소강상태였던 때라 덜 위험해서 너도나도 월남에 가려고 해서 그것조차도 소위 <빽>이란 것이 없어 가지를 못 했다.
필자가 근무한 부대가 현재 부산에서 제일 높은 장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육군병기학교>였다. - 현재는 아파트 단지가 되어있음.
당시 필자의 과장(육군대위)은 전형적인 등짐장사였다.
그 당시 월남에서 귀국하는 장병들이 귀국해서 다른 부대로 배치 받을 때 까지 머문 곳이 동백섬 옆에 지은 임시막사인 <9보충대?>였고, 그들이 귀국할 때 갖고 온 물품을 저장하는 천막이 수영비행장 옆 수영만 바닷가 모래사장에 있었다.
과장(대위)는 월남 장병이 귀국하는 날(무슨 요일인지는 기억나지 않음)은 반드시 찦차를 몰고 심부름꾼으로 필자를 대동하고 수영만 모래사장을 찾아 갔다.
모래사장에 산더미 같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그 귀국 장병들이 부대배치 까지 머물면서 용돈을 쓰기 위해 월남에서 생명과 바꾸다 시피 한 물건을 헐값에 팔고 있었고, 그것을 사들여 떼돈을 버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그들이 갖고 오는 물품은 졸병들은 대개가 탄피를 더블 백으로 하나 정도에 더블 백의 여유 공간에는 C-레이숀을 채워서 갖고 들어오고, 장교나 하사관은 TV(컬러인지 흑백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음)를 갖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 중에는 의대에 재학하다 월남에서 귀국하는 장병들 중에는 인골(해골)을 갖고 오는 군인도 더러 있었다.
그게 누구의 해골이겠는가?
왜 죽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미군이나 한국군에 의해 죽은 월남인이거나 베트콩의 해골이 아니겠는가?
이게 월남전의 참상이 어떠했는가를 묵언으로 증언하는 증거물이 아니겠는가?
초등학교 선생으로 나와 같이 병기학교에서 근무하다 월남에서 1년간 참전하고 돌아온 동기생은 귀국할 때 착실히 봉급만 모아 당시 돈으로 250불을 갖고 귀국했다. 그게 지금 돈으로는 얼마만한 돈인지는 잘 모르겠다.
불쌍한 우리선대들의 유골이 지금도 미국의 어느 의사의 사무실에 박제가 되어 걸려있지 않다고 누가 단언하겠는가?
하여튼 간 어떤 전쟁이건 전쟁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한국이 위와 같이만 한다면 지구상에서 전쟁을 사라지게 하는 시발점이 되지는 않을지?
이게 국가차원에서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다면, 당시 월남참전 군인들 중에서 뜻있는 노인들이 뜻을 모아 민간 차원에서라도 한 번 해 볼만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