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소설가의 책은 쉽고 간결해서 참 쉽게 읽혀요.
박범신 소설가도 김주영 소설가만큼이나 제가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 두분의 소설은 정말 재미있고 한번 책을 펴들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그 책속의 세계에 빠지게 하는 마법이 있는데
박범신 소설은 서정적이면서도 가슴에 번지는 아련한 슬픔같은 맛이 그나마 따스한 온기라도 남게 해주거든요.
그런데 김주영소설가는 읽어내려가는 내내, 속으로 씨근덕거리게 만들고 잠시 잊은줄 알았던 제 기억속 유년시절
어느 한부분을 뜨거운 햇살이 가리키는 어느 한 지점을 돋보기로 확대해서 기어이 그 상처의 화인을 들여다보게끔 하는
뜨거운 아픔이 있어요.
분노가 치밀고 한번씩은 들쑤셔진 감정을 갈무리해야 해서 숨도 가다듬어야해요.
주로 유년시절의 성장과정과 현재 어른이 된 상황을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데 이미 그전에 깔린 복선에서도
제 심장이 먼저 분노로 두근거려요.
어린시절이야기중에 늘 등장하는 김주영작가가 서술하는 어머니는
늘 자식을 홀대하고 괄시하는데에 이골이 났어요. 이기적이기까지도 해요.
어머니는 다만 이름으로나 존재할 뿐 나와는 딴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식을 돌보고 먹이고 키우는 세속에 편입되어 있는 어머니로써의 보편적 일상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라는식으로 어머니에 대해 담담히 써놓은 대목에서 갑자기 가슴이 콱 막혀오고.
어머니조차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어떤 아이들과 어울리며 쏘다니고 있는지
마을의 어느곳을 들쑤시고 있는지
냇가에 가서 멱을 감는지
산등성이를 타고 다니는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나란 인간은!
술취한 건달이 선술집에서 입으로 물어뜯어 땅바닥에 내뱉는 소주병 뚜껑처럼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라는 대목에서 또 속이 싸르르해지고..
글속의 주인공처럼 저도 외로웠고 외톨이였지요.
언제나 혼자라는 고립감이 멍울처럼 맺혀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않았다라는 그 대목처럼
제 유년을 시퍼렇게 멍들게 했던 그 가난은 몹쓸 전염병인것처럼
길고 긴 정규교육과정을 마쳐야 했던 저를 늘 쓸쓸하게 혼자 겉돌게 했지요.
그런 여파때문에 저는 직장생활을 해서도 좀처럼 사람들틈에 끼어들지 못하고 늘 머뭇거렸어요.
잠자리에 들면 오줌을 지리는 야뇨증이 있던 김주영 소설에 잘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어린시절의 저도
그렇게 한겨울에 오줌을 잘 싸서 한때 더부살이하던 친척집에서도 미움을 많이 받았었지요.
그이유를
그처럼 기이하고 굴욕적인 병증을 지녔던 것은 언제나 지기펴고 살지못하고 겁에 질려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김주영 소설가는 얼른 적어놓았네요.
담담하게 굴비꿰듯이 잘 이어진 문장들앞에서 저는
그렇게 힘들었던 어린시절들이 마구 떠오르고
아빠의 노름으로 식당도 접고 살림살이마다 빨간딱지 붙여지고 얼마지나지않아
저는 고모네집에 얹혀살았어요.
여섯살때 여름날, 꾸깃꾸깃한 흰 원피스차림으로 그집 대문을 들어서고 잠을 자고.
새벽다섯시에 고모부가 잿빛양말신은채 제옆구리를 차면서 일어나라고 깨웠어요
"야!야! 일어나!:
청소, 엄청했습니다.
수수빗자루로 안방에서부터 거실,부엌, 신발현관, 마당, 오동나무대문밖까지. 청소했습니다.
ㄱ자처럼 구부러져 수수빗자루를 들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쓸었어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쓸면서 수수팥이 뒤에 남는것은 나중에 무릎꿇고 광내가며 닦고
수돗가옆 개*도 치웠어요.
덕분에, 저 청소 엄청 잘합니다.
미닫이창이든, 간유리창이든, 무늬있는 부엌창이든 닥치지않고 뽀득뽀득 닦아내던 그 어린시절.
1년을 지내오면서 고모부가 늘 흰자위만 보이면서 귀신처럼 노려볼때 얼마나 심쿵!하면서 놀랐는지.
그집을 떠나와 엄마와 아빠와 두동생들과 모여살때에도 저를 향한 괄시와 무시는 또 당연하게 온전히 제몫이었구요.
왜냐면 제가 두동생보다 나이가 두살,혹은 네살 많았으니까요.
기를 펴지못하고 눈치만 보는 제게 엄마는
고모부가 "**누나, 미워,미워..너무 미워,안오는게좋아"
라고 하면서 그집 4살된 손자가 보고싶다고 울때마다 그렇게 가슴에 끌어안고 엄마앞에서 달래더래요.
그러면서 저보고 밉다고, 나가버리라고. 그 현란한 욕을 퍼레이드로 떠들던 엄마,그리고 술꾼이던 아빠.
늘 엄마머리채 붙들고 때리며 살던 인색한 아빠.
그 어린시절들이 활자위로 오버랩되면서
현재 저와 함께 살고있는 우리엄마에게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분노가 올라옵니다.
남편복없으면 자식복도 없다던데~
하면서 땅이꺼지게 한탄을 늘어놓으면서 우리들이 한밤중 추운 겨울밤 망치를 들고 벌써 광기로 눈이 번들거리는
아빠한테 맨발로 쫒겨날때에도 나는 몰라, 하면서 그냥 앉아있던 엄마.
지금은, 8년전에 앓았던 자궁경부암은 오년이 지나서 완치판정은 받은 경력과 함께
위염, 관절염, 신경통,혈압,심근경색,고지혈증, 빈혈, 두통,등등의 병과함께 지금은 완전히 청력상실된채 잘 못듣고
눈도 거의 멀어서 빛만 감지할줄 아는 엄마와 살고 있어요.
그런 엄마에게 잊은줄 알았던 이 감정.
그때는 왜 그말 못했을까.
고모부 그 흰자위 본적있냐고.
나만 욕실에 딸린 수세식 변기 못쓰고 마당 끝에 있는 재래식 변소 썼다고.
아침 다섯시면 늘 내 옆구리 양말신은 발로 걷은것 모르냐고.
그집에서 1년동안 지내면서 3번이나 아빠 찾아 돌려준다고 학교도 못가고 고모손에 잡혀서 동네 떠돌아다녔다고.
김주영 소설가는 늘 언제나 이런 유년기의 어두운 소설을 주로 많이 쓰는걸까요.
이제 김숨 소설가도 한동안 자신의 성장배경인듯한 자전적인 소설의 범주에서 좀 맴도는 듯했는데
이젠 이한열의 이야기라던지, 위안부할머니를 다룬 소설도 쓰기 시작하던데..
아, 너무 뻐근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그냥 이 소설가도 어려운 유년을 지냈겠지라고 위안합니다.
그럼 덜 아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