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까운 인접도시에 한적한 계곡을 검색해서 찾아갔습니다
띨띨한 네비 여사가 엉뚱한 곳으로 알려줘서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도 넘게 걸려서 돌아돌아 겨우 찾아갔습니다
가방에 책한권, 아이폰 플레이리스트에 꾹꾹 눌러담은 음악, 아이스 커피 한잔, 새우깡 한봉지 넣고 털래털래...
평일이라 그런지 더워서인지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이 조용하더군요
주차할 마땅한 장소도 그늘아래 있고 더 좋은 건 주차한 곳에서 30초 거리에 제 마음에 딱 맞는 계곡 자리가 있더라는 것.
겨우 탁족이나할만한 조그만 계곡이어서 아이들 물놀이도 못하는 곳이라 조용하고, 계곡전체가 나무그늘이 드리워져서 해도 안들고, 둘레길 바로 옆이라 가끔씩 인기척이 있어서 무섭지도 않고...
등산방석 깔고 앉아 무릎까지 계곡물에 담그고 책을 읽자니 얼마나 술술 잘 읽히던지...
아랫쪽으로 한커플이 자리잡고 윗쪽으로 접이식 야전침대를 들고 나타난 아저씨 한분, 더 윗칸에 탁족 나오신 어르신 부부 한쌍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서로 조용조용히 계곡의 시원함을 즐겼어요
자리잡자마자 핸드폰으로 전국에 폭염경고를 알리는 긴급 재난문자가 날아들었지만, 이 계곡엔 더위라곤 한점도 느낄 수 없었어요
바위에 앉아 책을 읽다가 트렁크에서 잠자던 캠핑의자와 돗자리까지 꺼내와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폈어요
계곡물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자니, 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책이고 뭐고 슬슬 잠이 오더라구요
한바퀴 둘러보니 야전침대 아저씨는 이미 꿈나라, 아래쪽 커플은 너럭바위에 자리잡고 길게 누워있고, 맨 윗칸 어르신들만 조용히 탁족 중
나도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이게 진정 피서구나 싶더이다.
내려가기 아쉬웠지만, 주섬주섬 챙겨 내려와서 점심과 저녁 사이의 애매모호한 냉면을 먹으러 갔어요
이 동네에 전국구로 유명한 평양냉면집이 있어서요
역시 시내로 내려오니 폭염경보의 위력이 제대로 느껴지네요
냉면은 여전히 시원하고 맛있지만 폭염경보 수준의 더위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긴 하네요
집으로 들어가려다 집앞 카페에서 3천원어치 에어컨 바람이나 좀 누리다 가려고 들어왔네요
근래에 가본 여행 중에 제일 흡족했던 코스였지 않나...
내일은 미술관만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오늘 갔던 그 계곡에 또 갈까 갈등 중...
조용한 피서를 원하면 유명하지 않은 집근처 계곡도 썩 괜찮은 선택 같아요